[스페셜1]
중년이 된 그녀들이 아직도 던지는 질문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나요?
2010-06-15
글 : 이주현
아시아 개봉을 앞두고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섹스 앤 더 시티2> 기자회견 현장

13년 동안 캐리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혹은 사만다로, 미란다로, 샬롯으로. “캐리라는 또 하나의 인생을 살았다”는 사라 제시카 파커의 말이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을까. <섹스 앤 더 시티2>의 아시아 개봉을 앞두고 4명의 배우와 감독이 일본을 찾았다. 500명이 넘는 아시아의 기자들이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 사만다(킴 캐트럴), 미란다(신시아 닉슨),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을 보러 프로모션 행사장에 몰렸다. “곤니치와”라는 간단한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 시종일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흔들 때 그녀들은 진심으로 이국의 땅에 첫발을 내디딘 캐리의 얼굴, 샬롯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중동의 아부다비에서 신세계를 경험한 4명의 뉴요커의 모습이 겹쳐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알렉산더 매퀸 재킷을 걸치고, 에트로 드레스를 입고,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네 배우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결혼 후 캐리의 삶이 궁금해

기자회견 내내 사만다처럼 시원시원하게 말을 이어갔던 킴 캐트럴은 호기롭게 말했다.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지금 이 순간이다. 물론 지난 13년이 다 행복이었다.” 마이클 패트릭 킹 감독은 덧붙였다. “오늘같이 여배우들이 어떤 옷을 입고 나올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행복이다.” 한두번 하는 인터뷰도 아닐 텐데 감독과 배우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서로를 배려해주는 모습에선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단한 팀워크가 아니라면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배우 한명 교체되지 않고 말이다. 1998년 첫 방송된 TV시리즈 <섹스 & 시티>는 6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굿바이를 했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움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이 정도면 됐어’라는 마음에. “시간이 갈수록 놀라운 건 우리는 보여줄 만큼 보여줬고 관객도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다.”(신시아 닉슨) 마이클 패트릭 킹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남았던 모양이다. 2008년, TV시리즈 <섹스 & 시티>는 영화 <섹스 앤 더 시티>로 만들어졌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는 미스터 빅과 결혼을 한다. 2년이라는 시간이 또 흐르고 <섹스 앤 더 시티2>에서 캐리는 결혼생활 2년째를 맞이한다. 마이클 패트릭 킹은 “경제적인 안정을 찾은 뒤 그녀들의 삶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라는 궁금증에서 이야기를 풀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전편의 엔딩은 너무 로맨틱했다”고 고백한다. 해피엔딩에 물음표를 던지며 마이클 패트릭 킹은 다시 2편을 만들었다.

샤넬을 입고 중동의 사막을 걷는다

<섹스 앤 더 시티2>에서 캐리는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던 빅과의 결혼생활에 물음표를 던진다. 자신보다 TV를 더 사랑하는 것만 같은 빅에게 일주일에 이틀을 떨어져 지내자고 말한 건 분명 캐리였지만, 앞으로도 쭉 일주일에 이틀은 떨어져 지내자고 말하는 빅 때문에 캐리는 감정이 상한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샬롯은 완벽하게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화가 나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젊은 보모에게 질투를 느낀다. 사만다는 수십개의 알약을 삼키며 젊어지려 하고, 미란다는 직장 상사의 불공평한 처사에 크게 불만을 품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지면 모든 것이 행복할 줄 알았던 그녀들은 또 다른 고민 앞에서 흔들린다. 하나의 언덕을 겨우 넘었는데 또 다른 산이 그 앞에 버티고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섹스 앤 더 시티2>는 언제나처럼 얘기한다.

“마이클 패트릭 킹이 풍경화 같은 초상화를 그렸다.” <섹스 앤 더 시티2>의 제작자로도 나선 사라 제시카 파커의 이 말에는 <섹스 앤 더 시티2>가 단순히 겉만 번지르르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섹스 앤 더 시티2>를 보고 ‘초상화가 될 뻔한 풍경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2>가 TV시리즈와 다른 점, 전편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사라 제시카 파커가 또 말했다. “이 영화는 진짜 시끌벅적하다. 야단스럽고 규모도 크다. 훨씬 영화적이고 화려해졌다.” 사만다의 제안으로 네명의 뉴요커는 중동의 아부다비로 떠난다. 그녀들은 “샤넬을 입고 사막을 걷는다”. 이국적이고 호화로운 중동의 모습은 화려한 뉴요커의 모습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실제 촬영은 아부다비가 아닌 마라케시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매일 아침 차로 40분 정도를 달려 촬영장에 갔다. 보이는 건 온통 모래와 사막뿐이었다. 놀라웠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촬영한 곳이기도 한데, 그곳에 가 있으면 진짜 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들었다.”(신시아 닉슨) 패트리샤 필드 의상감독이 이슬람 전통 의상과 디자이너 제품을 조합해 만들어낸 패션도 흥미롭다. 사라 제시카 파커는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의상 중 하나가 아부다비의 시장에서 입었던 옷이라고 말했다. “디오르 셔츠와 마놀로 블라닉 슈즈에,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치마를 입었다. 빈티지와 명품이 조화된 패션이다.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패션은 캐리의 캐릭터를 잘 대변하는 것 같다.” 영화의 초반 스탠포드와 안소니의 ‘게이 결혼식’도 화려하다. “그들의 결혼식은 마치 옛날 뮤지컬영화 같아 보인다.” 블랙 앤드 화이트 톤의 식장과 대규모 남성합창단 그리고 백조까지. 마이클 패트릭 킹의 설명처럼 결혼식 장면은 마치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나왔던 <톱 햇> 같은 흑백영화”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배우들은 그게 다 마이클 패트릭 킹의 “결혼에 대한 로망”이 담겨서라고 했다.

TV시리즈는 현실을 영화에서는 환상을

<섹스 앤 더 시티2>가 볼거리에 많은 것을 할애한 것은 맞지만 언제나 <섹스 앤 더 시티>의 재미는 캐릭터들의 변화에서 찾아온다. “관객의 삶이 4명의 주인공들의 삶 어딘가에는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이만큼 장수하며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크리스틴 데이비스도 말했다. “사람에 따라 네명의 캐릭터 중 좋아하는 캐릭터가 다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난 예전엔 샬롯이었지만 지금은 사만다야.’ 그런 여성들의 반응을 보는 게 재밌다.” 무엇보다 그녀들은 “절대 쓰러지지 않을 뉴요커다”. 그녀들이라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겠냐마는 결국에 그녀들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고 일어선다. <섹스 앤 더 시티2>에서도 마찬가지다. <섹스 앤 더 시티2>의 해피엔딩은 예정된 결말이다.

TV시리즈는 여성들의 로망과 환상을 좀더 현실적인 그릇으로 담아냈고, 영화는 환상을 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섹스 앤 더 시티2>의 허세가 아니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섹스 앤 더 시티2>의 이런 대목에 눈길을 주는 건 어떨까. 캐리가 새로 쓴 책 제목은 < I DO, DO I? >다. I와 DO 그리고 쉼표와 물음표. 두개의 단어와 두개의 문장부호로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나’이고, 또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살면서 ‘쉼표’를 찍어야 할 때가 찾아오겠지만 ‘물음표’ 달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마이클 패트릭 킹이 정리했다. “극중 캐리는 끊임없이 친구들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결국 질문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라고 묻고 그래 넌 잘하고 있어, 라는 대답을 듣기 위해 우리는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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