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은 신작을 만들면 최종편집 전에 늘 영화계 지인들을 편집실에 불러 미니 시사회를 연다. 모니터를 한다는 명분이지만 그에게 직언할 만한 영화인들은 많지 않다. 강우석 자신이 먼저 자기 작품에 자긍을 표할 때 그에게 비판적인 말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끼>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다. 잡지계를 떠나 대학교수가 된 뒤에 이 비밀 시사회의 초대명단에 오른 나도 <이끼>를 먼저 보게 됐다. 가기 전에 마음이 불편했다. 혹 직언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발언 수위 조절에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촬영 당시 현장에 갔다가 시나리오를 읽고 비판했는데 그에게 원망을 들었다. <한반도> 개봉 직후에 그를 만나 또다시 비판하자 그의 반응에 날이 서 있는 것을 느꼈다. <한반도>에 대한 내 비판이 균형잡힌 것이었음을 그가 인정하기까지는 개봉 몇주가 지나야 했다.
<이끼>의 가편집본을 본 몇달 전, 나는 이 영화가 강우석의 이때까지의 작품 중 최고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신반의했다. “뭔가? 또 뒤통수치려고?” “영화 속 모든 인물의 캐릭터가 살아 있습니다.”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근데 흥행은 될 것 같아?” “잘되겠죠. 확언할 순 없지만.”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뒤 공식시사회가 있던 날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그와 마주쳤다. “어때? 문제없지?” “문제없습니다. 후반부에 확 치고 올라가는데요.” 그는 승자의 웃음을 짓고 사라졌다. 그는 한때 그의 영화를 냉소했던 내게 무언의 승리감을 표하고 있었다.
<이끼>는 <공공의 적>과 함께 강우석 영화의 이정표가 될 만한 작품이다. <투캅스>로 부동의 흥행감독이 되기 전부터 강우석 영화는 늘 경쾌한 풍자의 세계였다. 얕게 찌르고 관망하는 코미디를 통해 그는 대중과 접촉했다. 이어지는 <투캅스> 연작과 <마누라 죽이기>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등에서 그는 좀더 깊게 찌르는 대신 풍자의 밑천을 소재에 의존하며 퇴행했다. <공공의 적>은 강우석의 코미디 감각이 일종의 블랙유머적 아이러니로 확장하면서 그의 작품세계의 지평을 바꿔놓았다. 풍자의 무게와 마찬가지로 극적으로 강렬한 파토스가 인물에 스며들어 직선적인 그의 영화에 낯선 여백과 틈과 아이러니를 생성시켰다. 이는 <실미도>의 감상주의에 부분적으로 스며 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끼>를 통해 더 큰 진폭으로 넓어졌다. 원작 만화의 양식화된 누아르 감성 대신 그는 각 캐릭터에 고르게 에너지를 분산하고 권력시스템 내에서의 리더와 집단의 관계에 대해 복합적인 성찰을 새겨놓았다. 이는 강우석의 직설화법에서 지금까지 가장 멀리 나아간 성취일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 윤태호의 만화 <이끼>를 강우석이 영화 <이끼>로 만드는 그림은 뜻밖이었다.
= 사실 <강철중: 공공의 적1-1>을 찍고 나서 고민이 있었다. 이 시리즈를 당장 또 이어가는 건 식상했다. 감독으로선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제작자로선 <김씨표류기> <주유소 습격사건2> <용서는 없다> <백야행>을 스타트시켰다. 이 영화 4편에 회사의 운명을 맡길 상황인데, 그 영화들이 안됐을 때 대비할 만한 게 뭐가 있을지 갑자기 불안했다. 시네마서비스 건물을 팔고 어려울 때였다. 막연히 또 다른 흥행영화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던 참에 <이끼> 기획이 들어온 거다. 렛츠필림의 김순호 대표가 제안한 아이템인데 그가 예전에 내 제작부를 했던 인연이라 읽어보고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순간적으로 확 끌렸다. 김순호 대표를 불러 어떻게 만들 거냐고 물었더니, 마을 하나를 잘 헌팅해서 15억원 정도 예산으로 찍겠다는 거다. 감독은 누구냐고 했더니, 몇몇 감독을 후보에 올려놓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일이 진행됐는데 내가 후보에 오른 감독들을 다 거절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가 연출하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닐까 싶더라. 김순호한테 내가 연출하면 어떠냐고 했더니, 자기는 발을 빼고 나한테 다 맡기겠다고 했다. 오케이, 그럼 기획비 지불하고 이익금 일부는 나랑 나누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후회하는 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웃음)
- 원작만화가 연재 중일 때 결정한 건가.
= 3분의 1쯤 전개됐을 때다. 왜 그렇게 성급했나 싶더라고. 나중에 원작이 잘 못 나오면 어떻게 하냐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도 초반에 이 정도의 드라마로 시작했다면 좋은 엔딩이 있을 것 같다고 믿었다. 원작이 좋은 결말을 못 찾으면 내가 찾으려고 했다. 정지우 감독이 각본을 쓴 초고는 원작이 엔딩을 내기 전에 나왔다. 그 뒤에도 죽 고쳤고. 지금 완성된 버전에서 볼 수 있는 엔딩은 촬영 들어간 뒤에도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로 나온 거다.
- 원작의 드라마를 영화로 옮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뭐였나.
= 그림을 보면 말이 되지만, 영화에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지 않나. 영지란 여자 캐릭터만 해도 원작에서는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면이 있다. 특히 창고에서 4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인, 성교를 암시하는 장면을 그대로 가져오면 영화에선 불편한 이미지가 될 것 같았다. 또, 만화에서는 현재에서 과거로 바로 넘어가는 게 큰 문제가 없지만, 영화는 아무 때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플래시백이 드라마 호흡을 짜는 데는 상당히 거추장스러우니까. 그런 구성을 다시 짜는 게 어려웠다.
- 원작의 분위기는 상당히 누아르적이다. 그 스타일을 버리는 게 이 영화에 좋았던 것 같다. 좀더 캐릭터 중심으로 갔고 그게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 누아르로 만들려 했다면 못했을 거다. 난 그렇게 찍을 방법이 없다. 이 영화가 처음부터 누아르로 갔다면 시각적으로 상당히 피곤했을 거다. 감정적으로도 보는 내내 답답했을 테고.
영화 <이끼>는 원작에 비해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린다.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려고 하는 신의 대리자를 자임하는 자와 속세의 소권력자를 자임하는 자의 대결은 원작과 같다. 그렇지만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비중은 원작보다 훨씬 커져 있다. 영화는 그들의 반응을 원심적으로 그려내면서 권력자들의 대결구도에 그치지 않는 결론을 예비해둔다. 권력은 필연적으로 악한 것이라는 속설 외에 권력자들의 대립과 소멸 이후에 누군가에 의해 권력은 계속 추구되는 삶의 꼴이 그려지며 좋은 권력과 나쁜 권력이 아니라 권력으로 뭘 소용될 수 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아니,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걸 개별적인 인간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더 큰 잔영으로 남는다. 영화 속 모든 인물이 보여주는 선악의 밀도는 각자 차이가 있지만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이 더해지면서 똬리를 튼 뱀처럼 사적인 악과 공적인 선, 또는 그 역의 문제가 인간의 개별성 차원에서 복합적인 차원으로 묘사된다.
- 영화에 담긴 권력에 대한 관점이 흥미로웠다. 천용덕 이장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꾸리려고 했던 류목형에게 “넌 신이 되려고 했냐? 난 인간이 되려고 했다”라고 말한다. 이상과 현실 차이에서 오는 결핍이나 좌절감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은유로 볼 수도 있겠더라.
= 사람 사는 게 그런 것 아닌가. 류목형이란 영화 속 인간은, 베트남전의 후유증이라고 하지만, 결국 신처럼 뭔가를 해보려 했던 거다. 그런데 결국 그가 만들려는 파라다이스는 엉뚱한 인간이 만든다. 이런 부분을 정치적으로 대입해도 크게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관객이 영화를 복기할 때 어떤 결론이든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보다는 긴장감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봐주면 좋겠다.
- 강우석 감독의 영화는 2000년대 이후로 변했다. <공공의 적> 1편에서 놀란 부분은 이전에 없던 강렬한 파토스가 들어와 있다는 거였다. <실미도>도 신파로 변형된 부분이 있지만 그런 파토스가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사라졌고, <이끼>에서 다시 돌아왔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볼 때는 놀라운 게 있다.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비약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말이다. <이끼>는 그 농도가 더 센 것 같다. 인물 각자의 존재 이유를 다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파멸의 스토리다. 그런데 또 뒤에서 큰 그림을 보면 권력승계의 드라마가 이어지는 엔딩이다.
= 사실 나는 <공공의 적2>도 사람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일 줄 알았다. 나에게 그 영화는 검사라면 이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나중에 <강철중: 공공의 적1-1>을 찍었을 때 지인들이 근데 2편은 왜 그랬느냐고 하더라. 나는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사회가 굴러간다고 조금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건데 말이다. <한반도>도 <실미도>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못 만든 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저렇게 그리면 안된다는 반발들이 있었던 거지. 그래서 <이끼>에서는 좀더 내 속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하려 했다. 내가 어떻게 영화를 찍고 싶은지, 캐릭터를 어떻게 움직이고 반전을 어떻게 줄지 여기서 한번 다 녹여보려 했다.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을 때 헛발질은 아닌 것 같다.
- <한반도>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 선악이 분명하고 히어로가 있고 판타지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영화에선 통하지 않는 직설적인 판타지다.
= 내가 제작한 <신기전> 때 그런 걸 느꼈다. 이 영화를 두고도 민족주의다 뭐다 하는데, 정말 무섭더라. 우리가 발명한 신기전이란 미사일에 대한 근거와 고증이 있는데도 말이다. 전투장면에서 적들을 너무 쉽게 물리쳐서 그럴까. 갑자기 20대들한테 민족주의 영화로 몰리더라. 그러면 TV에서 <주몽>을 보고 난리친 건 뭔가? 아무튼 한때는 <한반도> 때 욕했던 사람들을 미워했는데, 그 이후로 미워하지 않았다. (웃음)
- <이끼>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네티즌의 반발이 있었던 것도 전작의 그런 모습 때문이었을 것 같다. = 왜 하필 강우석이냐, 감독 바꾸라고 했다. 내가 제작자인데, 내가 나를 왜 바꾸나. (웃음) 박찬욱이나 봉준호 같은 특정 감독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끼>의 장르적 특성상, 이 엄숙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왜 당신 같은 감독이 어쭙잖은 유머로 만들려고 하냐는 의견들일 거다. 사실 내가 그런 댓글을 잘 안 보는데, 이번에는 안 본 댓글이 없다. 도대체 사람들이 원작의 어떤 부분에 열광하는지 궁금했다. 그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는 강박관념 때문에 촬영 중반 넘어갈 때는 우울증까지 생겼다. 방에만 들어가면 고민인 거지. 내일 찍는 게 그리 대단한 장면도 아닌데, 다시 시나리오 보고, 만화도 봤다.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더라니까. 결국 그때마다 술 마시다가 취기로 잠들었다. 그러다 아침에 눈뜨면 모르겠다, 일단 찍어보자는 심정으로 나가고. 그런데 현장에서 찍다보면 또 오후에는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잘 찍은 기분이 있어. 말하자면 변태 비슷한 거지. (일동 웃음)
<이끼>에서 가장 잘된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등장인물들 모두 한 장면 이상씩의 명장면들이 있다. 천용덕 이장 역의 정재영은 느물거리는 면과 사악한 면의 경계 사이에서 인간적인 욕망의 구체적인 덩어리를 보여준다. 이렇게 선이 굵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쉬운 방책인, 이른바 열연한다는 것의 방증으로서 정재영은 일상적이며 심지어 근친관계를 느끼게 하는 악의 화신을 보여주었다. 박해일은 그런 정재영을 상대해 눈을 똑바로 뜨고 꼿꼿하게 걷는 것의 표면적인 연기의 힘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원작에 비해 가장 진폭이 큰 것은 이장의 충복인 김덕천 역의 유해진의 연기인데 권력에 의탁한 자 내면의 두려움과 피로를 유머로 위장했다가 막판에 폭발시키는 굉장한 에너지를 보여준다. 박민욱 검사 역의 유준상은 거침없이 내지르는 연기의 간결함을 통해 꾸밈없는 듯 보이는 외형이 인물의 내면에 어떻게 가닿는지 증명하고 있다. 김상호와 김준배는 존재감을 축으로 한 타입 캐스팅의 위력을 드러낸다. 또, 영화가 끝나고 나면 유선이 연기하는 영지 역이 가장 뇌리에 남는다. 드라마의 감정선에 충실한 연출자, 쉽게 말해 전형적인 방식의 연출자인 강우석이 이들 배우에게서 각자의 인장을 남기게 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강우석은 대화장면에서 텔레비전 스타일의 나눠찍기 연출을 마다지 않는 감독이지만, 수식이 별로 없는데도 상투적이지 않은 것은 클로즈업이나 기타 고정 화면으로 잡힌 앵글 속에서 배우들이 각자의 존재감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맥스 장면을 비롯해 이 영화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 정통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리듬과 템포로 보여주는 증표다.
-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태도가 원작과 다르다. 원작은 선악구도가 비교적 명확한데, 영화는 그렇지 않다. 인물 각자의 존재구도가 다 있다. 그게 매력적이기도 하고. 정재영이 연기하는 마을 이장, 절대적 권력자인 천용덕 같은 인물만 봐도 냉혹한 인간이지만 과자와 콜라를 먹으며 컴퓨터로 고스톱을 치는 일상이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약간씩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피와 살을 덧붙인 건 강우석 감독의 영화세계에서도 흥미로운 변화로 보인다.
= <이끼>가 나에게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과거의 나를 거꾸로 추적해봤다. 영화계와 대중은 왜 <공공의 적>에 그렇게 호의적이었는가. 관객이 아주 터진 건 아니지만, 여전히 내 영화의 맨 앞줄에 그 영화를 세우지 않나. 그럼 <한반도>는 일정하게 흥행이 됐지만 왜 그렇게 비난을 받았는가. 관객의 이중적인 태도 탓은 아니라고 본다. 좀더 객관적으로 사람을 봐라, 이런 반응이 아닐까. 직접적인 화법이 지나치면 관객은 우롱당한 느낌을 받는다는 거다. <이끼>를 연출할 때, 이런 장르가 항상 엄숙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공공의 적>의 묘미는 상당히 썩어 있는 악의 축인 인물이 더 큰 악의 화신인 인물과 대결한다는 지점이었다. 결국 사람은 다 얼마간 악한데, 악인이면 끝까지 악인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악인의 분노를 그리는 한편, 좀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을 담으려 했다. 그게 나름 복잡한 해석에서 나온 건 아니다. 고통스럽게 찍었지만, 전작들에 대한 반성이 <이끼>에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 배우들의 연기가 다 좋다. 영지의 캐릭터가 원작하고 가장 다르다. 좀더 밝고 음보다는 양의 기운이 많은 캐릭터다. 원작에서는 완전 음의 캐릭터 아닌가. 그 부분은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계획했던 것인가.
= 유선이 합류하기 전에 엔딩을 풀었다. 엔딩을 설정하고 앞부분을 다 뒤집었다. 그러면서 영지의 캐릭터도 변했다. 농담 잘하는 여자 같은 캐릭터다. 유선도 처음에는 그런 분위기의 대사를 어색해하더라. 그래서 예정된 엔딩을 설명해주니까 좋아 죽더라. 영화 속 엔딩의 모티브는 영지가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였다. 그런 설정 때문에 영지가 단순히 남자들의 관음적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스스로 관찰하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지의 엔딩에 대한 반응은 관객과 나의 싸움이기도 하다.
- 엔딩이 절묘했다. 대중영화적인 감각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다른 그림을 그려놓는 엔딩이었다.
= 일반 관객이 그렇게만 받아주면 흥행할 것 같다. 그런데 평론가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다시 또 불안해지네 이거…. (웃음)
- 배우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검사 역 유준상의 연기도 신선했다. 원작의 캐릭터는 굉장히 짓눌려 있는데, 영화에서는 스스로 치고 나오는 에너지가 있다. 상당히 많은 성격을 자기 스타일로 끌어들인 것 같더라.
= 유준상이 처음에는 불안해했다. 그리 큰 역할이 아니니까. 나는 한컷 찍으면 그 컷이 그대로 나온다고 안심시켰다. 검사가 짓눌려 있는 캐릭터였다면 <이끼>는 현대극이 아니라 사극처럼 보였을 거다. 배경이 시골이고, 인물도 시골 사람이기 때문에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지만, 사실상 과거처럼 보이지 않나. 그래서 검사는 유일하게 현대적인 인물이어야 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주려 했다. 유준상은 처음에는 연기에 많은 설정을 계산하고 왔는데, 초반에는 나에게 타박을 많이 받았다. 쓸데없는 동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말도 또박또박하고. 워낙 순발력이 좋아 바로 따라붙더라.
- 천용덕 역의 정재영은 발군인데 그와 대적하는 류해국 역의 박해일도 의외였다. 캐릭터상으로 천 이장에게 먹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해일에게도 무시하지 못할 기운이 나오더라.
= 류해국이랑 박해일이 잘 안 맞는다고 나도 모르게 투정을 자주했다. 처음에는 나를 피하더라고. (웃음) 그도 금방 적응했다. 워낙 에너지가 좋아서 눈에서 불을 뿜는다.
- 요즘 한국영화의 흥행작들을 보면 밋밋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끼>는 그렇지 않은 대중영화의 방향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흥행에 성공한다면 긍정적인 여파가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두려운 부분이 많을 것 같다.
= 당연하지. 세상을 50년 정도 산 사람이 사람을 그리는 데 그렇게 실수하겠는가 싶다가도, 영화 속 인물들이 이 시대에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맞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원작의 팬들은 그 칙칙하고 음습한 마을에 열광했다. 그 드라마를 이해한다면 영화도 충분히 이해받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