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당신들의 노익장에 박수를
2010-08-03
글 : 김성훈
왕년의 액션 배우들 총출동한 <익스펜더블>의 LA 첫 공개현장

한 세대가 저물고 있었다. LA 출장 이틀째 아침. TV를 켜자 속보가 나왔다. ‘전 뉴욕 양키스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래너, 심장마비로 사망.’ 뉴스에 따르면 1973년부터 지금까지 37년 동안 조지 스타인브래너는 양키스 제국을 이끌어왔다. 그는 오랜 연륜을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 선수들을 능숙하게 다뤄왔다고 한다. 뉴스를 보면서 전날 본 <익스펜더블>의 감독 겸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제이슨 스타뎀, 이연걸, 미키 루크, 브루스 윌리스, 에릭 로버츠, 돌프 룬드그렌, 아놀드 슈워제너거 등 전·현직 액션 스타들을 한꺼번에 모은 그였다. 모두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지금이 아니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듯 스탤론은 앞장섰다. 그 점에서 <익스펜더블>은 한 시대를 풍미한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액션 배우로서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와 그의 친구들을 추동케 한 건 아닐까.

지난 7월12일 포모사 거리에 있는 스튜디오 시어터에서 감독 실베스터 스탤론의 8번째 연출작 <익스펜더블>이 첫 공개됐다. <람보> <록키> 시리즈에서 즐겨 보여줬던 남성 버디 액션과 백인 남성 영웅담은 <익스펜더블>에서도 여전하다. 물론 액션 규모는 크고 속도 역시 빠르다.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출연진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공개 전부터 인터넷을 달군 “출연진이 화려한 만큼 액션 하나는 볼 만할 것”이라는 기대는 몇몇 장면에서 입증됐다. 그러나 전형적인 이야기, 전체적으로 새롭지 않은 액션, 설득력없는 감정 연기 등 적지 않은 단점들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스펜더블>은 어떤 면에서 볼 만한 영화다. 쉽게 모이기 힘든 왕년의 액션 스타들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출연하는지만 봐도 1시간40분의 러닝타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바니 로스(실베스터 스탤론)는 익스펜더블팀의 정신적 지주다. 그의 팀은 전직 영국특수부대 SAS 요원이자 칼 전문가 리 크리스마스(제이슨 스타뎀), 일대일 격투의 1인자 인 양(이연걸), 바니의 오랜 친구이자 무기 전문가 헤일 시저(테리 크루즈), 폭탄 전문가이자 팀의 핵심 브레인 톨 로드(랜디 커투어), 섬세한 스나이퍼 거너 젠슨(돌프 룬드그렌)으로 구성됐다(돌프 룬드그렌은 <록키4>에서 러시아 복서 이반 드라고 역으로 출연해 스탤론을 마지막까지 괴롭혔다). 그들은 매번 일을 의뢰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용병들이다.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미국이 아닌 자신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 임무는 늘 위험천만하지만 바니와 그의 팀원들은 정도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인 양과 다툰 거너가 팀을 떠나는 것도 매번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정체불명의 사나이 처치(브루스 윌리스)가 그들에게 아무도 수행하지 못한 임무를 권하고 바니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남미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빌레나의 잔혹한 독재자 가자 장군(데이비드 자야스)을 축출하고 그로부터 핍박받는 국민을 구출하는 것이 목표다. 문신 가게를 운영하는 옛 동료 툴(미키 루크)은 바니에게 “살아 돌아오기 힘들 거야. 웬만하면 말리고 싶다”고 만류한다. 그러나 바니와 엑스펜더블팀은 조금의 망설임없이 남미로 향한다.

와이어와 CG는 거부한다

역시 임무는 산 넘어 산이다. 익스펜더블팀은 접선책인 산드라(지젤 이티에)를 만나면서 가자 장군의 배후에 더 큰 세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전 CIA 공작원이었던 제임스 몬로(에릭 로버츠)와 그의 부하 페인(스티브 오스틴)이 바로 그들이다. 순간 방심하는 사이에 산드라가 악당들에게 납치되고 작전은 실패한다. 익스펜더블팀은 그녀를 두고 겨우 섬을 빠져나왔다. 홀로 남겨두고 온 그녀가 계속 바니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익스펜더블팀은 그녀를 구하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다시 섬으로 향한다.

현지 시사가 열린 다음날 할리우드 스매시박스 스튜디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과 조연 에릭 로버츠, 돌프 룬드그렌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대일 액션. 인간을 상대로 하는 액션. 단순한 액션.” 기자회견에서 스탤론이 밝힌 <익스펜더블>의 액션 스타일이다. <와호장룡>(2000)과 같은 무협영화처럼 와이어에 의존하거나 슈퍼히어로물처럼 CG의 힘을 빌리는 액션을 지양한다는 것이다. 그게 80, 90년대를 풍미한 형님들의 액션이라는 말이다. 동시에 각자의 영역에서 마스터로 평가받는 제이슨 스타뎀, 이연걸 등 여러 액션 스타들의 개성을 함께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 점에서 <익스펜더블>은 슈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만화 <저스티스>나 영화 <젠틀맨 리그>(2003)에 가깝다.

아놀드 주지사님도 잠시 업무 중단하고 출연

사실 제작 초반에는 왕년의 액션스타가 총출동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제이슨 스타뎀과 이연걸만 그대로 출연하고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CIA가 등장하고 벤 킹슬리, 포레스트 휘태커가 나오고. 그런데 누군가가 그 부분을 빼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이야기는 “멋지고 남자다운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으로 발전”했고 스탤론은 “지금의 배우들에게 전화를 걸어 출연을 부탁”했다. 배우들 역시 출연하는 데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형님이 부르시는데 군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 당장 달려가야지. 한때 라이벌이자 지금은 주지사 일로 바쁜 아놀드 슈워제너거까지 ‘나랏일’을 잠시 손에서 놓고 촬영장으로 갔다. “어디 주지사가 한눈파냐”는 지역 주민의 비난에 “정치 역시 연기의 일부분”라며 가볍게 튕겨주는 센스와 함께.

관객은 오랜만에 복고풍 액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출연하는 액션 스타가 많은 만큼 그들을 위한 액션 시퀀스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액션신이 몇 있다. MMA(종합격투기)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제이슨 스타뎀이 마을 좁은 공간에서 벌이는 트럭 추격전은 <본 얼티메이텀>(2007)의 탕헤르 추격신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수상비행기의 기수에 묶여 100피트 상공을 날아다니며 선보이는 스턴트액션은 이 영화의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속도는 예전만 같지 않지만 이연걸의 타격감은 여전히 힘이 넘친다. 또 이연걸과 스탤론이 탄 자동차가 횡단보도에서 기관총 세례를 받는 장면은 <대부>(1972)의 횡단보도 테러신과 흡사하고, 스탤론과 스티브 오스틴의 마지막 액션신은 <록키3>(1982)에서 헐크 호건이 스탤론을 백드롭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스탤론은 스티브 오스틴과의 액션신에서 목뼈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한, 스탤론이 기관총을 아낌없이 갈겨대는 장면은 영락없는 람보다. 이 밖에도 폭탄은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터지고, 칼은 날카롭게 허공을 가로지른다. 어쩌면 스탤론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참조”한 것은 캐릭터의 개성을 모두 살리기 위한 공부인지도 모른다.

함께 있으니 노인정 친구 같아

간만에 형님들께서 어깨에 힘을 주고 촬영장에서 뭉친 이유는 무엇일까. 돌프 룬드그렌은“아무리 CG의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액션이 주는 감흥을 채워주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왕년의 스타들이 함께 모인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볼거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실베스터 스탤론은 “80년대 액션영화의 컴백을 선언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절대 아니”라면서 “우리가 그 시대 배우들인 거는 맞다. 지금 만들어지는 액션영화처럼은 못 만들겠다. <스파이 키드3>(2003)에서 우주복도 입어봤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같은 세대라서 더욱 동질감을 느꼈을까. 에릭 로버츠는 “우리 같은 아저씨들은 현장 올 때 대본을 모두 외워온다. 그런데 요즘 젊은 것들은 대사를 어찌나 잘 까먹던지…. (웃음)”라고 불평을 터트렸다. 왕년에 모두 잘나간 만큼 서로 견제하지 않았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스탤론은 “절대 아니다. 함께 있으니 노인정에 온 것 같았다. 옛날 얘기하면서 함께 잘해보려고 했고. 옛날에 아놀드와 내가 얼마나 경쟁을 심하게 했나. 지금은 서로 챙겨준다”고 웃으며 말했다. 에릭 로버츠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는 “모두들 록키 흉내를 냈다”면서 “에이드리안! 에이드리안! 으아악!”하며 록키 흉내를 냈다. 그 점에서 <익스펜더블>은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다. 젊음을 떠나 보낸 형님들을 보면서 <람보> <코만도> <록키> 등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소소한 재미가 있는 영화라 할 만하다. 특히, 80, 90년대 할리우드나 홍콩 액션스타에 대한 추억을 지닌 관객들에겐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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