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남녀>의 극현은 형사다. 그리고 신용불량자다. 임창정에게 처음 주어진 형사 캐릭터이지만 임창정이기 때문에 방점은 ‘신용불량자’에 찍힌다. <비트> 이후, 바로 전작인 <청담보살>까지, 임창정은 언제나 곤궁에 처한 남자였다. 돈 없고, 직업 없고, 애인 없고, 꿈이 없었다. “날 캐스팅했을 때, 요구하는 건 대부분 정해져 있다. 극현 또한 변변치 않은 남자다. (웃음)” 임창정의 영화는 그 남자가 절박할 때까지 몰아붙인다. 영화에서 그가 뛰는 장면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불량남녀> 역시 곤궁에 처한 이 남자가 필사적으로 사랑을 찾게 되는 로맨틱코미디다. 이번에도 상당히 많이 달린다.
“내가 아직도 로맨틱코미디에 캐스팅된다는 게 감사하다. (웃음)” 로맨틱코미디에서 임창정의 강점은 분명 그가 진짜 남자를 연기한다는 점이다. 그의 남자들은 다른 배우들의 남자에 비해 본능적이다. 일단 눈에 보인 음식은 무엇이 들었든 가리지 않고(<색즉시공>), 이제 막 사랑을 확인한 여자 앞에서도 엉큼하고(<위대한 유산>), 아픈 기억은 회피하려 한다(<스카우트>). <불량남녀>에서 임창정이 찾으려 한 리얼리티도 다르지 않았다.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어디를 먼저 볼 것 같나? 다 얼굴 먼저 본다. 그런데 보통 코미디영화에서는 간혹 특정 신체부위부터 보게 만든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보편적이지는 않은 거다. 관객이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정일 수도 있다.” 신용불량자과 채권추심원의 만남을 담은 이 영화에서 그는 전화상에서 마음 놓고 서로를 욕하던 남녀가 막상 만났을 때는 어떻게 될까 질문했다.“말하자면 <불량남녀>는 ‘현피’(온라인에서 시작된 현실의 싸움. 현실의 PK(Player Kill)의 줄임말)가 소재인 영화다. (웃음) 얼굴을 보지 않을 때는 정말 본능적인 다툼이 일어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막상 면전에 두고는 그렇게 못한다. 그런 모습을 극현이가 정확하게 보여줄 거다.”
임창정은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는 <스카우트> 이후, 얼굴에서 표정을 줄였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관객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나까지 그러면 관객이 부담스럽지 않겠나.” 표정을 줄였다는 말은 표정을 아낀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관객은 그의 코믹 연기를 즐겼지만, 그의 눈물 연기를 봐왔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색즉시공>의 은식은 차력쇼를 하며 눈물을 흘리던 남자였다. <스카우트>의 호창도 옛 연인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임창정 또한 자신의 코믹 연기보다는 “관객을 대신해 우는 모습이 더 큰 카타르시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스카우트> 이후 임창정은 표정을 아끼면서 자신이 전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농도를 더 키운 셈이다. <불량남녀>에서도 그는 이야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절박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다. 임창정은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에 가까운 장면”이라고 하지만, 이 장면의 감정적인 공력은 전적으로 가장 임창정다운 남자의 눈물에 달려 있다. 임창정은 일부러 변신하지 않는다. 다만 완성시키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