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나, 너무 맛있지 않냐?” <페스티발>의 장배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대사다. 장배는 자신이 세계 최강으로 ‘잘하는’ 남자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그의 성기가 인정받지 못할 때, 장배도 무너진다. 애인 지수(엄지원)가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그는 그날부터 성기에 더욱더 집착하기 시작한다. <페스티발>의 다양한 성적 취향 중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법한 고민이지만 장소 가리지 않고 바지를 내리며 자신의 힘을 증명하려 하는 장배는 SM플레이어, 란제리 마니아 등을 제치고 이 영화에서 “가장 비정상적으로 보이는”(신하균) 인물이다.
신하균은 장배와 닮은 구석이 없다. 굳이 찾으라면 “남자라면 모두 알 만한” 영화 속 디테일 정도가 겹친다. “소변 줄기로 담뱃불 끄는 거? (웃음) 나는 이제 끊었지만 담배 피우는 남자치고 그거 안 해본 사람 없을 거다.” 말을 꺼내기보다는 듣는 걸 좋아하고, 대사가 민망하고 뻘쭘해 본격적인 연기는 촬영에 들어가야만 보여줬다는 이 수줍음 많은 배우는 아무에게나 지르고 보는 ‘마초 대마왕’ 장배와 정확히 반대 지점에 서 있는 남자다. 그러나 신하균에게 장배를 맡긴 이해영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단지 소심해 보이던 사람에게 대범한 역할을 맡기고 싶었던 게 아니다. 하균이가 원래 가진 뜨거운 에너지가 있는데, 그걸 안으로 꾹꾹 누르고 있는 것 같더라. 그 뜨거움을 양말 뒤집듯 밖으로 내보이고 싶었다.”
이해영 감독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페스티발>의 신하균은 폭죽 터뜨리듯 자신의 에너지를 장면마다 쏘아올린다. 장기밀매단에 잔혹한 복수를 가하던 <복수는 나의 것>, ‘안드로메다 왕자’ 백윤식을 가차없이 고문하던 <지구를 지켜라>의 모습처럼 특정장면에 응고되어 있던 에너지가 <페스티발>에선 매 순간 흘러넘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런 장배의 모습이 완성된 건 전적으로 신하균의 헌신 덕분이다. 그는 지수와의 대화장면에서 노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의견에 “그럼 벗죠” 하며 예정에 없던 전라 연기를 선보였고, 자동차 창문에 머리를 박는 장면에선 “얼굴에 무전기 자국이 남을 만큼”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 덕분에 <페스티발>의 장배는 시나리오상의 설정보다 더 뜨거운 마초 캐릭터로 거듭났다. “표현에 있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부담스럽지 않다. 노출? 필요하다면 더 했을 거다.” 그 에너지를 이제까지 어떻게 누르고 살았냐는 질문에 신하균은 이렇게 대답한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페스티발> 같은 작품을 만나고 장배 같은 인물을 연기해야 할 때에야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다.” 그러므로 <페스티발>은 신하균이라는 결 많은 남자의 드러나지 않았던 지층을 공개하는, 하나의 개인적인 축제다.
최근 장훈 감독이 연출하는 <고지전>에 참여 중인 신하균은 이미 장배 캐릭터의 뜨거움을 냉각시킨 지 오래다. <고지전>에서 그가 연기하는 강은표 중위는 첩자 색출 임무를 띠고 동기 김수혁(고수)의 ‘악어중대’ 부대로 파견되는 인물이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시니컬한 인물이다. 장배와는 많이 다르다.” 데뷔 12년차인 지금도 새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바짝 긴장하고, 자신의 연기를 점검할 때면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이 배우의 겸손은 어쩌면 어떤 욕심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많다는, 여전히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