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SF 안에서 인간을 거론하는 이야기가 좋다. 예를 들어 멜로드라마라도 둘이 포옹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내가 저 여자를 왜 사랑하고 있을까?”를 자문하는 영화가 좋다. 겉으로는 그런 물음을 표내지 않고 줄곧 신나게 달리는데, 들여다보면 생각이 보이는 영화가 좋다.
-<초능력자>도 그 취향의 연장선에 있을 텐데.
=<초능력자>는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초인과 규남 중 하나는 (타인과) 섞이는 인물이고 하나는 섞이지 못한다. 초인은 혼자지만 규남은 친구와 소속이 있다. 반면 초인이 남의 의식을 조정해 무수한 ‘나’를 만들어낼 때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은 혼자다. 그런 다양한 상황을 통과하며 원초적인 ‘나’를 발견하는 영화였으면 했다.
-초능력자라는 모티브에 착안한 과정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연출부 하면서 막판에 넋이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마더> 준비 중이던 봉준호 감독님이 안 쓰는 전자레인지 갖고 가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문득 “너 데뷔할 거 아니니? 무슨 이야기할 건데?” 하고 물으셨다.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와 <괴물> 끝날 때부터 장편을 같이 만들자는 약속만 해놓고 시나리오는 전혀 만들어놓지 않은 상태였다. 조감독 생활에서 나온 조수 매너리즘이었지. 이야기야 감독이 만들고 우린 가서 일만 하면 되잖나. (좌중 폭소) 봉 감독님 질문에 확 각성이 되면서 한 5초 동안 멍한 다음 대뜸 “초능력자 이야기를 할 거예요” 하고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 떠들었다. 전자레인지 들고 돌아와 두달 동안 맹렬히 썼다.
-다음으로는 초능력의 속성과 그것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정하는 게 관건이었겠다.
=시간을 멈출지, 공간이동을 할지, 아니면 냄새를 잘 맡는 능력을 줄지 온갖 생각을 다 했다. 아니다 싶은 것부터 지워나갔고 일찌감치 사람을 조정하는 능력으로 정했다. 당시 우연히 니체의 <아침노을>인가 <비극의 탄생>인가를 읽고 있었는데 “안일하고 편안히 살고자 하면 대중 속에, 세상 속에 섞여서 자기를 잃어버려라”라는 구절이 있었다. 거기서 영화의 등뼈가 생겼다. 초능력을 시선과 시점으로 표현한 건, 무엇보다 영화에서 제일 잘 보이는 게 배우의 눈이라서다. 손가락으로 동작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중국영화처럼 손바닥에 피를 써서 부적을 날릴 수도 없고. 초인의 능력이 발휘될 때 화면이 흔들리는 효과는 누구의 시점숏에 써야 맞을까 고민도 했지만, 나중에는 규칙없이 규남과 관객이 같이 느낄 만한 장면에서 넣기로 했다.
-초인의 능력이 발휘되는 규칙은 정확히 무엇인가. 눈을 마주쳐야 하나, 한쪽만 보면 되나.
=당하는 사람이 볼 필요는 없고 초인이 보면 된다. 뇌와 가장 가까운 신경체인 눈을 통해 그의 신경에 신호를 보내 자신의 머릿속을 복제해 넣는 거다. 뇌파측정기가 뇌파를 그려내는 거라면 그 과정을 뒤집어 입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뇌 신경세포 사이 전기신호가 이루는 질서를 외적 힘으로 바꾼다는 설정이다.
-기존 슈퍼히어로물을 연구했나. 영화를 보면 일단 <언브레이커블>과 <엑스맨> 1편이 떠오르는데.
=B급 장르영화까지 다 봤고 <킥애스: 영웅의 탄생>이 최고였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언브레이커블>도 재밌었다. M.나이트 샤말란처럼 뻥 잘 치는 사람, 거짓말을 진짜처럼 구수하게 해대는 사람이 너무 좋다. <언브레이커블>의 두 주인공도 서로가 있기 때문에 자기를 깨달을 수 있는 관계다.
-기우뚱한 화면도 많고 앵글이 유난히 다채롭다. 홍경표 촬영감독과 합의한 스타일은.
=“애니메이션처럼 찍고 싶다”가 나의 첫 요청이었다. 통상 영화는 카메라를 평지에 놓고 수평을 맞춰 찍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칸에 사람을 삐딱하게 집어넣곤 하지 않나. 그런 표현을 하고 싶었다. 카메라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구석이 있으면 찾아들어가 앵글을 잡았고 앙각도 부감도 많이 썼다. 마스터숏을 별로 많이 안 찍어 걱정도 했다. 클로즈숏에서는 배우들이 워낙 잘생기다보니 일반인에게 불가능한 조명을 쳐도 얼굴각이 살아나 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동차 추격신에서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사용했던 장비 자이로헤드도 썼다. 울렁거리면서도 안정감있는 화면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