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1년 한국영화 결산 [3] - 올해의 영화인
2001-12-27
진정한 장인들에게 갈채를!

감독 허진호

“작은 이야기인데, 평가해줘서 고맙다.” 두 번째 영화 <봄날은 간다>를 통해 찰랑거리며 흘러가는 사랑의 오로라를 슬며시 보여줬던 허진호 감독은 <씨네21>이 뽑은 올해의 감독이 됐다는 소식에 평소처럼 나직한 반응만을 보였다. “삶을 차분하게 바라볼 줄 아는 인생내공이 더 무서운 감독”(심영섭), “두 작품밖에 만들지 않았지만 탄탄한 연출력, 감독의 뚜렷한 스타일 등을 <봄날은 간다>에서 보여준 점을 평가한다”(김의찬) 등의 칭찬에 대해서도 그는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나 때문에 많이들 고생했다. 지태는 많이 힘들었을 거다. 자신과 극중 상우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해줬다. 영애씨의 경우 테이크마다 연기가 달라지고 내용이 계속 바뀔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둘 다 감독을 신뢰해준 것 같아 고맙다.” 완결된 시나리오보다는 현장의 상황과 스탭, 배우의 의견에 따라 장면을 구성해나가는 그의 연출법도 배우가 받쳐주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다는 뜻의 이야기인 듯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다음 작품은 빨리 만들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번에는 연애 이야기가 아닌 밝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나리오 송해성, 안상훈, 김해곤 (<파이란>)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 <러브레터>를 원작으로 송해성 감독, 안상훈 프로듀서가 틀을 잡고, 시나리오 작가이자 배우인 김해곤이 디테일을 만들어낸 <파이란>이 올해의 시나리오로 뽑힌 것은 펄펄 튀어오르는 느낌을 주는 생생한 캐릭터와 대사 덕분으로 보인다. 이같은 점을 의식한 탓인지 송 감독은 “시나리오에 숨결을 불어넣어준 김해곤 작가와 캐릭터를 형상화한 최민식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애초에는 ‘유약한 고2 중퇴자’ 감성을 갖고 있던 주인공 강재를 ‘강인한 중학교 졸업자’로 만들어낸 것은 김해곤의 몫이라는 것. 하지만 “깡패영화나 깡패영화의 관습을 빌린 드라마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그냥 인간 이강재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송 감독의 생각이 없었더라면 이 가슴 저미는 사랑 이야기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강재가 파이란과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 있는 탓에 서로 만날 수 없는데도, 후반부에 파이란이라는 여자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통곡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짜놓은 것 역시 송 감독의 몫이었다.

프로듀서 오기민

<고양이를 부탁해>를 제작한 오기민 프로듀서가 올해의 프로듀서로 선정된 것은 단순히 ‘격려’하는 마음의 발로는 아니었다. <이방인>으로 시작, <여고괴담> 시리즈, <고양이를 부탁해>까지 그의 행보에선 일관된 맥을 발견할 수 있다. 폴란드에 살고 있는 태권도 강사와 입시라는 획일적인 잣대 아래서 일상을 꾸려나가는 여고생들, 여상을 졸업한 뒤 사회에 어슴푸레한 첫발을 대딛는 20살 소녀들의 얼굴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사회의 주류가 아닌 이들의 주변부적 정서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이들 영화는 각각 다른 감독의 손을 거쳤지만, 그가 매만지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뭐 100만명이라도 들었으면 모르겠지만, 굉장히 쑥스럽다”며 흥행에 대한 부담을 털어놓는 그지만, “당분간 여성이 중심에 오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에선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내년에는 변영주 감독의 <밀회>와 <장화홍련전>을 제작할 그는 작은영화의 생존에 관한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점 등을 들어, “마술피리의 창립작으로 <고양이를 부탁해>를 선택한 게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촬영감독 김형구

김형구 촬영감독이 2001년의 촬영감독이 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시절> <이재수의 난> <박하사탕> 등을 통해 완숙한 기량을 보였던 그는 올해 <무사>와 <봄날은 간다>라는 대조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완벽하게 화면으로 옮겨내 이제 ‘장인’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게 했다. <무사>가 고속촬영, 저속촬영, 개각도촬영 등 그동안 닦아왔던 테크닉을 한데 녹여낸 ‘김형구의 이력서’ 같은 것이었다면, <봄날은 간다>는 허진호 감독이 추구하는 감정의 맥을 쫓아가는 ‘카메라적 자아’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새로운 스펙터클 창조”(김소희), “연출자와 호흡을 맞출 줄 아는 촬영감독”(김의찬)이라는 평가는 각각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 “<무사>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사람이 있다면 바로 김형구”라는 조민환 프로듀서의 말이 들어맞은 것인지, 현재 그는 중국에서 그토록 흠모해온 첸카이거의 신작 <베이징 바이올린>을 촬영하고 있다. 내년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첸카이거의 차기작 <몽유도원도>에서 카메라를 잡을 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네티즌 설문조사

<친구>, 내 사랑

<씨네21> 웹사이트를 통해 12월13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 동안 진행된 설문조사 ‘2001 최고의 한국영화 최고의 배우’에서 네티즌들은 최고의 영화로 <친구>를 뽑았다. 최고의 남자배우와 여자배우는 각각 최민식과 이영애가 차지했고, 애초의 예상과 빗나간 흥행성적을 기록한 작품으로는 <무사>가 뽑혔다. 이번 투표에 응모한 네티즌은 지난해와 비슷한 15321명이었고, 전체 투표 수는 59095표였다. 최고의 한국영화 <친구> 네티즌은 <친구>를 선택했다. 전국 818만명의 관객을 동원, 흥행 역사를 다시 쓰며 한국영화 붐을 주도했던 이 작품에 대해 네티즌은 상업성뿐 아니라 작품성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내렸다. 2위는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팍팍한 삶의 그늘을 포착해낸 <파이란>이었다. 3위는 <봄날은 간다>, 4위는 <번지점프를 하다>, 5위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였다. 반면 소위 ‘조폭영화’들은 작품성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신라의 달밤> 1.4%, <조폭 마누라> 0.9%, <달마야 놀자> 1.3%, <두사부일체> 1.9%).

2001년 최고의 한국영화

1. 친구 2404명, 15.7%

2. 파이란 2159명, 14.1%

3. 봄날은 간다 1919명, 12.5%

4. 번지점프를 하다 1498명, 9.8%

5. 와이키키 브라더스 1489명, 9.7%


최고의 남자배우_최민식

<파이란>에서 삼류깡패 강재 역을 연기한 최민식의 정상 등극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그의 신들린 연기는 작품 전체를 지배해 영화에서 연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2위는 <친구>를 통해 선 굵은 남성의 세계를 디테일하게 묘사해낸 유오성의 차지였다. 3위는 <친구>의 장동건, 4위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이병헌, 5위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였다.

2001년 최고의 남자배우

1. 최민식 3995명, 27.4%

2. 유오성 2777명, 19.1%

3. 장동건 1129명, 7.7%

4. 이병헌 1097명, 7.5%

5. 유지태 635명, 4.4%


최고의 여자배우_이영애

<선물>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와 <소름>의 장진영은 투표 시작 직후부터 박빙의 차이를 보이며 1, 2위를 다퉜다. 결국 이영애가 0.4% 차이로 최고의 여자배우로 뽑혔다. <봄날…>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연기가 <소름>의 섬뜩한 연기를 누른 셈. 3위는 <엽기적인 그녀>에서 싱싱한 이미지를 과시한 전지현이, 4위와 5위는 <인디안 썸머> <흑수선>의 이미연과 <조폭 마누라>의 신은경이 차지했다.

2001년 최고의 여자배우

1. 이영애 2638명, 19%

2. 장진영 2579명, 18.6%

3. 전지현 2366명, 17%

4. 이미연 1250명, 9%

5. 신은경 1139명, 8.2%


흥행예상이 빗나간 영화 _<무사>

200여만명을 동원한 <무사>가 1위로 꼽힌 것은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한 때문일 것. 55억원의 제작비, 중국 올로케, 정우성과 장쯔이의 출연 등을 고려하면 이 흥행성적은 다소 빈약해 보인다. 3위 <조폭 마누라>는 반대 경우다. 개봉 전 이 영화가 500여만명을 객석에 ‘꿇어’ 앉힐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영화와 동시에 개봉해 ‘희생자’ 신세가 됐던 <봄날은 간다>가 2위, 평단의 ‘집요한’ 칭찬에도 흥행에 실패한 <고양이를 부탁해>가 4위, 기대에 비해 성적이 저조했던 <흑수선>이 5위였다.

2001년 흥행예상에 빗나간 영화

1. 무사 2738명, 17.9%

2. 봄날은 간다 1398명, 9.1%

3. 조폭 마누라 1365명, 8.9%

4. 고양이를 부탁해 1344명, 8.8%

5. 흑수선 1085명,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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