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심기일전心機一轉 영화진흥위원회!
2010-12-02
글 : 김용언
사진 : 최성열
2011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 문제로 풀어본 위기의 영진위

영화진흥위원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영진위의 현재 분위기가 “영화계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찾는 것이 최우선 목표”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이상 영화계와 불필요한 갈등 관계를 가질 시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는 것. 그러나 영진위에서 작성하여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2011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을 살펴보면, 2011년 역시 그리 녹록한 미래일 수 없을 것 같다. 예산안이 미칠 현실적인 파장에 대한 영화인들의 우려, 조희문 전 위원장을 떠나보낸 영진위의 심기일전을 요구하는 기대를 한자리에 모았다.

잃어버린 3년.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영화계는 유례없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영화 정책의 큰 틀을 잡아나가고 집행하는 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강한섭, 조희문 두 위원장을 거치며 방향성과 영화계의 신뢰 모두를 잃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이 차례로 불명예스럽게 위원장직을 그만두었다. 모두가 한숨 돌렸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이후’다. 강한섭 전 위원장이 사임했을 때 조희문 전 위원장이 부임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에서 주도하고 영진위가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현재의 문화정책이 2011년에 몰고 올 피해를 최소화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영진위가 발의하고 현재 국회 예산 심의 중인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 예산안을 살펴보아야 한다.

제작지원비 삭제와 인건비 지원의 모순

2010년부터 영진위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 간접지원, 사후지원’이었다. 2011년에는 그 강도가 훨씬 세진다. 2011년 영화발전기금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상은 ‘영화제작지원’ 부문이다. 한국영화 기획개발역량강화 부문의 예산은 삭감됐고, 독립영화제작지원(2010년 7억원)과 예술영화제작지원(2010년 32억5천만원) 항목 역시 전액 삭감됐다. “독립영화의 경우, 장비대여 및 현상·녹음 등 후반작업지원으로 보완”이라는 조건이 첨부됐다. 대신 스탭인건비지원 항목이 신설되며 50억원이 배정되었다. ‘세컨드급 이하의 스탭, 1편당 15명까지, 월 최대 1500만원까지, 최장 3개월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이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때 50억원으로 연간 약 73편에 인건비 지원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제작지원사업이 “소수의 작품에만 한정되어 선정 결과에 대한 편파 시비 등 지속적인 논란이 되어온 바, 사업추진방식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해, 또한 2009년부터 제기된 스탭 임금 체불 개선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게 됐다고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목표 사이의 논리적 비약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편당 돌아가는 액수를 줄이면서 지원 편수를 늘리는 데 급급한 생색내기로 보일 우려가 다분하다. 또한 스탭 처우 개선 요구를 반영한다는 명분을 감안하고서라도 그 액수가 현저히 약소할뿐더러 자칫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게 현실이다. 최현용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이 “자본의 모럴 해저드를 유도하는 예산안”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 건 그때문이다. “이건 마치 돈줄을 쥔 쪽에게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게다가 한해에 한국영화가 200편가량 개봉하는데 그중 최대 73편의 영화에 인건비가 지급된다는 건 ‘선착순으로 받기’에 다름 아니다. 그 예산은 소진되면 끝이다. 다른 영화들은 신청해도 받을 수조차 없다.” 게다가 명시된 지원 조건 중 ‘촬영 착수된 작품’이라는 대목은, 독립영화와 저예산영화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제작지원비는 전액 삭제되었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인건비를 준다’는 모순을 영화계 제작실무자들에게 떠맡겨버린 셈이다.

이에 대해 최진욱 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스탭들의 불공정한 노동 환경에 대응해 임금을 보장한다는 원칙 자체는 환영할 만하지만, “이번 예산안은 우리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는 것. “임금 지불에 대한 구체적인 방식과 함께 독립영화제작지원 전액 삭감 부분도 함께 요구해나가야 한다.” 최 위원장은 다음주 영진위쪽에 산업협력위원회 실무 테이블을 꾸리자는 요청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독립영화 전용관과 예술영화 전용관 문제가 포함된 ‘영화산업 유통지원’ 부문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중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임대료 1억7천만원을 사업시행주체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에서 자체 부담함에 따라 불용 예정”이라는 문구는 기존 영진위와 한시협 사이의 갈등과 무리한 공모 진행 등에 대한 평가를 슬쩍 제외시킨 처사로 보인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한국영상자료원으로 사업 이관 검토”라는 내역도 파문을 예고한다. 또한 독립영화 전용관의 경우, 운영 실적이 극히 저조한 ‘시네마루’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직영함과 동시에 한국영상자료원 내 상영관을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활용, 기존 2개의 독립영화 전용관(시네마루, 아리랑시네센터)과 함께 통합 운영할 방침을 시사했다. 또 다른 공모파행의 희생자였던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 주체 미디액트에 관한 평가는 일절 들어 있지 않다. 대신 센터 운영 주체로 선정된 ‘급조단체’ 시민영상문화기구의 운영 실적이 저조하자 이 역시 영진위 직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예술관 운영지원방식을 일정 비율 일괄 지원이 아닌 실적별 차등지원으로 변경했고,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 항목에 3억8천만원을 배정했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분야도 배급 중심 시스템으로 내몰릴 확률이 크다.

조희문 전 영진위 위원장

조급한 초대형 프로젝트와 해외 진출

현재 영진위와 문화부가 가장 신경쓰는 영화계의 과제는 ‘초대형 프로젝트’와 ‘해외 영화계에 대한 구애’인 듯하다. 이번 예산안에 신설된 ‘글로벌콘텐츠펀드’는 “국제공동프로젝트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영화 등 해외진출을 주목적으로 한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 투자”를 명시했다. 영진위는 이 펀드에서 출자자가 아닌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다. 최현용 사무국장은 “영진위에서 직접 지원하면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하지만 투자조합을 통해 자본이 한번 꺾여 들어가면 그때부턴 ‘시장’의 문제가 된다. 비공식적인 동시에 자본의 장악력이 더 쉬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공동제작이나 해외진출이라는 명분에 앞서, 영화계를 장악하는 거대기업 자본의 수직 계열화가 더 공고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강한섭과 조희문 두 전임 위원장이 주장했던 이른바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의 실체는, 영진위가 자신의 책임을 시장으로 넘겨버리는 수순이었던가 하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처음 유출되었던 예산안에선 ‘글로벌 스튜디오 건립’ 명목으로 35억원이 배정되어 있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뉴질랜드나 타이 등의 모범 사례들을 보면 할리우드의 공동제작을 유치하거나 후반산업기지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작은 시장 규모에선, 게다가 남양주종합촬영소라든가 부산에 건립 중인 스튜디오에 얽힌 문제도 산적해 있는데 또 다른 거대 스튜디오를 짓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케이, 글로벌 스튜디오는 포기. 하지만 할리우드 진출을 선점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는 거다. 글로벌펀드가 애초 예상보다 앞당겨 만들어진 데에는 정부의 조급한 문화 정책이 작용한 것 같다. 중장기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한 채 급조한 2011년 예산안을 간신히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안에 영진위 위원회의 실질적인 고민이 얼마나 들어가 있을지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예산안의 ‘해외진출지원’ 부문에는 한국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해외영화가 50억원 이상 집행할 경우, 그 제작비의 20%를 현금으로 환급해준다는 항목도 있다. 이 인센티브 지원 예산 30억원은 영화발전기금이 아니라 문화부 내 관광기금에서 나온다. 문화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영화산업과 로케이션 활성화를 좀 다른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다”며 “해외영화 로케이션은 관광객 유치 등의 연계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관광기금으로 편성되었다고 설명했다.

독자적 기술 개발 없는 3D영화 욕심

또한 전체 예산항목 중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부분은 ‘디지털시네마 기술지원’이다. 전년 대비 32억5700만원이 증가했는데, 중심 목표는 “3D입체영화 등 디지털 시네마 기술 개발 및 확산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현장형 3D 제작 시스템 개발, 3D영화 수용자에 관련한 휴먼팩터 연구, 보안시스템과 가이드라인 제시 등인데, 이는 한국영화계 내의 3D입체영화의 현실적 위치를 지나치게 앞서나간 예단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2D에서 3D로 제대로 컨버팅하는 데만도 한국영화 한편의 평균제작비가 소요된다. 그렇다면 이 기술은 현재로선 100% 할리우드영화의 후반작업에 소요될 수밖에 없다. KS표준에 들어갈 수 있는 3D 기술이 할리우드 기술과도 호환되어야 하는데, 결국 할리우드 장비를 들여와서 할리우드 기술을 베끼는 것 말고는 독자적인 것을 할 수가 없다. 국내용 정책이 아니다. <아바타>를 내세워서 국내용이 아닌 정책에 30억원 이상의 돈을 쏟아붓는 대신, 국내영화의 지원이 그만큼 깎여나간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사항은 국제영화제 관련 사항이다. 예전에 신규 사업항목이나 국고로 지원되던 ‘국제영화제 육성’ 항목이 삭제됐고, 기금사업으로 올라갔다. 예산은 총 25억원. 2009년에는 42억원, 2010년에는 35억원이었던 예산이 무려 10억원 깎여나갔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영화제를 육성”하기 위함이며 “2010년 말 영화제 평가를 통해 3개 영화제를 선별하여 차등지원”하겠다는 목표다. 지난 3월17일 문화부가 주최하고 영진위가 주관했던 ‘국제영화제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나왔던 사항들이 현실화된 것이다. 당시 정헌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영화제의 산업적 기여 여부”를 고려,“국고지원의 기본 방향은 선택과 집중에 따라 소수의 발전 가능성이 있는 영화제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부산, 부천, 전주, 제천, 서울여성, 서울국제청소년 등 6대 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협의회’를 발족해 11월19일 국회에서 토론회 겸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쪽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영화제들의 전반적인 방향과 더불어 예산 삭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영화제 관계자는 “6대 영화제가 각각 다 특성이 있고,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강화시킴으로써 서로 차별화하고자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나오고 있는 ‘영화제 평가’라는 것이 산업적 측면으로만 치우치는 게 안타깝다. 과연 연말에 나온다는 그 평가가 정당한 기준일까? 영화계가 어떻게 일정 부분 한국영화계에 기여했는지,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기적인 진흥책이 필요한 시점

2011년 영화발전기금의 방향성은 대체로 분명해 보인다. 기획개발비를 삭감하고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제작의 직접 지원을 삭제한 것, 그리고 3D입체영화의 집중 공략, 해외영화의 로케이션 촬영 유인, 글로벌펀드를 통한 해외용 대작 제작.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조가 ‘무조건 될 것 같은 쪽에만 힘을 몰아주자’로 정리되어간다는 예감을 떨칠 수 없다. 현재 예산 심의는 12월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서글픈 현실은, 이처럼 영화계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영화발전기금이 국가의 전체적인 예산 집행 규모로 보건대 대단히 사소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과연 국회에서 영화발전기금의 산업 일변도 방향성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하는 영화인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다수의 영화인들은 입을 모아 ‘전문가들’이 새로운 위원장과 위원으로 선출되어, 현재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의 문제점들을 새롭게 보완할 수 있기를 요구하고 있다. 문화부를 대신하여, 혹은 문화부의 의지에만 끌려다니지 않은 채 영화계 전체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영진위의 ‘당연한’ 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기대하는 것이다. 각종 토론회와 협의회를 준비하고 있는 영화인 단체들의 절박한 움직임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단기적인 예산안뿐 아니라 영화계 전체를 위한 장기적인 진흥책을 차근차근 고민해야 할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 “정 안되면 내년 한해 허리띠 졸라매고 버틴 다음, 다시는 이런 계획을 세우면 안되겠다는 걸 영진위도, 문화부도 깨닫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한 영화인의 푸념이, 단지 투정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덧붙임. 지난 11월17일 저녁 조희문 전 영진위 위원장은 문화부를 상대로 해임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조 전 위원장은 “심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영화 진흥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정치적인 공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특정 절차와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다. 조 전 위원장은 지난 3년간의 갈등과 상처에서 벗어나 바삐 새로운 틀을 짜야 하는 영진위의 앞날에 끝까지 무거운 그늘을 드리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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