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강우석] “어쨌든 영화는 다이내믹해야 한다”
2011-01-25
글 : 강병진
사진 : 오계옥
<글러브> 강우석 감독

“얼굴 좋아지셨네요.” 사진을 촬영하던 도중 오계옥 사진기자가 말했다. 강우석 감독은 “몸이 어찌나 좋아졌는지, 어제는 새벽 3시까지 폭탄주를 마셨다”고 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이끼> 때와 확실히 다른 얼굴이다. 그는 “<글러브>를 찍을 때부터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이상하게 본다. 예매율도 확인 안 하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도 않으니까. 이런 인터뷰도 거의 안 하려고 한다. 할 말이 별로 없다. (웃음)” 안 그래도 빠르기로 정평이 난 그의 대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촬영 전 가졌던 인터뷰에서 ‘<글러브>는 내 영화 중 손님이 가장 안 드는 영화일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마음을 비웠다는 얘기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느낄 거다. 내가 다시 신인일 때로 돌아간다고 했었거든. <강철중: 공공의 적1-1>을 할 때부터 내 영화가 왜 이렇게 맛이 가나 싶었다. 계속 관객을 자극하고 놀래키고 쓸데없는 반전을 보여주려 했으니까. 나만큼 흥행을 많이 시킨 놈이 아직도 흥행에 목매는 것도 웃기지 않나. 왜 내가 영화를 찍으면서 즐기지 못하나 싶더라. 관객과의 승부욕 때문인 것 같았다. <실미도> <공공의 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끼> 만들어놓고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네, 어쩌네 하면서 착각을 하고 있더라는 거지. <글러브>는 오랜만에 즐기면서 찍은 영화였다. 얼굴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웃음) <이끼> 때는 매일 두통약을 달고 살았잖아. 아침에는 게보린 먹고, 저녁에는 펜잘 먹고.

-<글러브>는 <이끼>의 마무리 단계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연출을 결정한 영화였다. 그렇게 끌린 이유가 단지 즐기고 싶다는 마음만은 아니었을 거다.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완전 죽었다. 위로를 받았다고 할까. 저 애들도 하는데 내가 못할 게 뭐 있어, 이런 거 말이다. 훈훈한 영화들은 많지만 그렇게 용기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는 거의 없지 않나. 사실 내가 야구영화를 찍는다고 하니까 주위에서는 다 말렸다. 야구 좋아하는 장진 감독도 말렸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든 공을 들이면 찍을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마지막 경기만 8일을 찍었는데, 내 성격에 한 신을 가지고 8일을 쓴다는 게 말이 되나. 8시간이면 모를까. (웃음)

-원래 시나리오에서 많은 부분을 덜어냈다. 선수 각자의 사연이나 상남과 나 선생의 관계도 정리됐다.
=시나리오에서는 마지막에 공항에서 키스하고 난리난다. (웃음) 난 또 그런 거 잘 못한다. 무엇보다 일일이 다 넣으려 했으면, 4시간짜리가 나왔을 거다. 가족영화인데 그게 말이 되나. 일단 나는 아이들 전체를 하나로 보고 싶었다. 같이 소리지르고, 같이 무릎꿇고 그러는 것도 다 같은 아이로 봐달라는 거였다. 디테일을 못 살려서 안 살린 게 아니다.

-그래도 러닝타임이 2시간20분이나 된다.
=길긴 길지. 원래는 2시간15분에 맞추려 했다. <공공의 적>의 러닝타임이다. 그런데 마지막 경기를 유야무야할 수 없겠더라. 만들어놓고 CJ랑 영화인 몇명, 비평가 2명 정도와 모니터를 했는데, 다행히 길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하더라고. <이끼> 때는 CJ에서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좀 잘라달라고 했었거든? 그런데 본 사람마다 다들 2시간이 넘는지도 몰랐다고 하더라. 야구경기처럼 다이내믹한 장면들이 있으니까 지루하지는 않을 거다. 참기 힘든 사람은 뒤에 허각이랑 존박이 부른 노래를 안 듣고 나가겠지. (웃음)

-전작 중에서 가장 닮은 영화는 <실미도>다. 똑같은 장면도 더러 있다.
=촬영하면서도 <실미도>보다 배우들을 더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했다. 나는 어쨌든 영화는 좀더 다이내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도 좀더 남성적이고 훈련도 세게 하고. 관객이 공에 얻어맞는 느낌이 있었으면 했다. 아무래도 나는 남자들을 그릴 때 더 신나는 것 같다. 여자랑 같이 붙는 장면은 ‘오케이, 됐어’ 이러는데 말이지. 20년 동안 그래왔다. <마누라 죽이기> 같은 경우는 최진실이 거의 남자 같지 않나. 멜로적인 감성이 부족한 것도 같지만, 일단 영화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사를 본 관객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연기한 배우들이 좋다고 하더라.
=캐스팅의 대부분을 PD와 조감독에게 맡겼다. 눈빛이 좋은 애들, 영화를 찍다가 죽어도 좋다고 하는 애들 가운데 연기가 조금은 되는 애들을 뽑으라고 했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감독이 어떻게 멍석을 깔아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배우 복이 있어서 그런지, 결정하고 나면 다들 어떻게든 그 역할을 해낸다. 감독이라면 제일 신경써야 할 게 배우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감독한테는 맛이 갔다고 해도 배우들이 망가졌다고 하면 안된다. 이번에도 본 사람들이 아이들을 칭찬하니까 기분이 좋더라. (정)재영이는 뭐 이제 칭찬하나마나 잘하는 친구고…. (웃음)

-평소에 야구를 좋아한다고 했다. 막상 연출하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었을 거다.
=엄청나게 좋아하지. 35년 전 고교야구와 아마야구의 빅게임 현장에 죄다 있었다. 광주일고 김윤한 선수가 3연타석 홈런 칠 때도 있었고, 강병철씨가 해병대 시절 야구할 때도, 김응룡 감독이 한일은행 4번타자일 때도 봤었다. <투캅스> 1편 때까지는 조감독하던 김상진 감독이랑 야구장에도 자주 갔었다. 좋아하기는 하는데, 찍어보니까 만만치 않더라. 일본영화 중에 야구를 다룬 게 많지 않나. 볼 때는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던지고 치는 것만 있잖아. ‘쳤습니다!’ 하면 바로 2루타야. 그런데 정말 공을 따라가서 찍는 게 쉽지 않더라. CG도 한계가 있지. 배우들이 정말 많이 고생했다. 될 때까지 던지고 구르고 했으니까.

-청각장애인이 주요 캐릭터인 만큼, 그들의 시점에서 사운드가 사라진 장면이 한컷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조감독이랑 촬영감독도 이야기하더라. 뜻은 알겠는데, 친절하답시고 분위기를 깨지 말자고 했다. 감동을 쌓아가고 있다가 그런 장면이 오면 관객은 자신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세련된 방식일 수는 있지만 감동이 줄어들 것 같더라.

-전작들에서 나타난 주장, 혹은 강요가 없어서 좋다는 평가가 꽤 있다.
=평론가들이 <한반도> 때 그렇게 뭐라했잖아. 왜 그렇게 가르치려 하냐고. 이번에는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관객이 젖어들었으면 했다. 배우들한테도 절대 격해서 울지 말라고 했다. 관객을 울리려고 배우가 우는 건 관객을 깔보는 거 아닌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내가 왜 울지?’ 하는 영화는 아니었으면 했다. 아이들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그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에는 밤장면도 많이 안 찍었고 최대한 밝게, 예쁘게 연출하려 했다.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기분 좋은 영화여야지.

-<이끼>의 결과는 어떻게 보나. 흥행에 실패하지는 않았지만 시네마서비스의 난국을 타개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도 타개 못했지. 경상비도 못 벌어서 빚이 더 늘었다.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내가 제작비를 많이 쓰는 감독은 아니지 않나. 200만명 정도가 손익분기점인 영화를 1년에 한편씩 만든다고 치자. 그 영화들이 300만명 정도만 들어주면, 회사는 굴러가게 돼 있다. 일단 내가 닭짓을 하지 말아야지. 너 이거 찍어라 이런 거 말이다. 일단 우리끼리 먹고살아야 한다. CJ 말고는 다른 빚이 없으니까 가능하다. CJ가 날 죽일 건가, 어쩔 건가. CJ가 날 못 믿으면, 다른 데에 가서 영화 찍어서 번 돈으로 갚으면 된다. 지금도 나는 언제든지 돈 달라고 이야기하라고 하거든? 그러니 흥행에 무리하게 욕심낼 필요는 없다. 대신 예전처럼 열편이 넘는 라인업을 펼치는 짓은 안 할 거다.

-<글러브> 이후에는 어떤 영화를 만들 생각인가.
=가볍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소셜리티는 있으면 좋겠다. 외치지 않는 소셜리티 말이다. 웃으면서 가는데 보고 나면 몇 가지가 느껴지는 그런 영화, 말하자면 1990년대의 강우석으로 다시 가보겠다는 거다. 역시 코미디를 빼면 난 할 게 없을 거다. 무엇보다 스탭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투캅스>나 <마누라 죽이기> 할 때는 영화를 정말 즐겼고, 어딜 가나 재밌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저 자식 잘나가니까, 만날 웃고 있구나’라고 오해할 정도였다고. 배우, 스탭들도 재밌게 해주지 않는 영화감독은 별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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