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이 ‘추리닝’과 티셔츠 차림으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온다. 어디 야구라도 한 게임하고 오는 모양이다 싶은데 임창정은 “집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고. 최근 가진 셋째 아이의 양육 때문에 그는 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에 신경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셋째 아이를) 더 빨리 낳으려고 했다. 그런데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키워야 하잖아. 경제적인 것도 있고. 특히 정신적으로 그랬다. 시집 와서 20대를 출산으로 보낸 아내가 안쓰럽더라. 운동(임창정의 아내는 프로골퍼 김현주 선수다)도 다시 시작해야 하고. 더이상 안 낳을 생각이다. (웃음)”
자신이 꿈꾸는 가정을 차근차근 그려가는 임창정과 달리 <사랑이 무서워>의 상열(임창정)은 모든 면에서 미숙하고 순진하다. 홈쇼핑 시식 모델인 상열은 외모가 출중한 동료 모델 소연(김규리)을 짝사랑하지만, 소연은 볼품없는 그를 거들떠도 안 본다.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소연과 하룻밤을 지낸 상열은 소연에게 예상치 못한 프러포즈를 받는다. 짝사랑하는 여자(소연)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순진한 주인공(상열)에게 마음을 준다는 설정은 임창정의 출연작 <색즉시공>(2002)이 연상된다. 또 돈도, 꿈도 없는 순수한 남자(상열)가 우여곡절 끝에 여자(소연)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는 이야기는 임창정이 그간 쌓아온 자신의 필모그래피, 그러니까 ‘임창정식 코미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로맨틱코미디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웃음은 <사랑이 무서워>에도 있다. 특히 거의 애드리브(라고는 하지만 임창정은 현장에 올 때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해서 준비해온다)로만 이루어진, 모자지간으로 출연한 선배 김수미와의 방 안 시퀀스는 제법 웃긴다. “김수미 선배님께서 테이프를 하나 준비해달라고 하시기에…. 그걸로 책상 밑에 떨어진 아들의 그 부분 ‘털’을…. (웃음) 보통 엄마와 아들이 그러질 않나.”
시나리오가 재미있어 한번에 읽고 출연을 결정한 것과 달리 전작과의 익숙함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도 있다. 이는 임창정이 처음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든 생각이기도 하다. “<색즉시공>의 ‘은식’(임창정)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모습이 ‘상열’이지 않을까 싶더라. 시나리오도 (<색즉시공>과) 닮았고.” 익숙했기에 (상열에) 다가가는 건 수월했을지 몰라도 비슷한 캐릭터를 매번 다르게 보여야 하는 건 어려웠다. “차라리 살인자를 연기하는 거라면 세게 표현하면 되는데…. 다르게 보이려고 (연기를) 했는데 찍어놓은 거 보면 또 비슷한 것 같고. 어려운 것 같다.” 어쩌면 다음 작품으로 곧 크랭크인하는, <비트>의 환규(임창정)를 떠올릴 법한 누아르물 <창수>를 선택한 것도 그간 고집해온 ‘한우물(로맨틱코미디) 파기’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아닐까. “아니다. 사람은 똑같다. 처한 상황만 다를 뿐. <색즉시공>의 은식이나 <사랑이 무서워>의 상열이나 누군가가 칼을 들이대거나 칼 맞으면 절박한 인간으로 변한다. 왜. 살아남아야 하니까. 보통 사람이 무서운 행동을 하면 (무서운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무서워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중요한 건 로맨틱코미디든 누아르든 연기의 ‘리얼리티’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식구가 하나 더 늘어서일까. 겨울의 마지막과 봄의 시작, 그 언저리에서 임창정은 벌써부터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랑이 무서워> 홍보활동을 시작으로 3월엔 <창수> 촬영, 5월 혹은 6월에는 12집 앨범으로 가요계에 컴백한다. “일을 벌이는 건 가장으로서의 역할… 그런 것도 있겠다. 가수 컴백은 딱히 이유가 없다. 은퇴할 당시 그럴 만한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은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또 이경규가 준비하는 <전국노래자랑> 시나리오도 기다리고 있다. “주위에서 ‘형, 또 코미디야?’라고 말린다. 그때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되지’라고 말한다. 물론 대중이나 제작자, 투자자가 나의 연기 패턴을 질려 할 시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걸 이겨내는 게 내 과제다. 그게 배우다.” 임창정이 맡은 캐릭터가 언제나 그랬듯 그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선택만 보고 달릴 것이다. 심장이 터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