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런던에서 만난 괴짜들
2011-04-05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2월7일,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클래리지(Claridges) 호텔에서는 60년째 지구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는 외계인의 이야기를 다룬 <황당한 외계인: 폴>의 인터내셔널 정킷 행사가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온 50여 명의 기자들이 참여한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전날 미리 관람한 이 작품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그렉 모톨라 감독

사이먼과 닉의 안목을 믿었지

-각본가이자 주연배우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힘들지는 않았나.
=이번 영화는 <아바타>처럼 자본이 넉넉하지도 않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막 등지에서 촬영해야 하는 작품이라 각본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몇몇 장면은 촬영 중 급하게 바꿔야 했는데 사이먼과 닉이 함께해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가 그들의 안목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의 미국식 유머와 둘의 영국식 유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도 궁금하다.
=1년 반 남짓 런던에 머물며 이번 작업을 했다. 같은 영어권임에도 유머 코드가 매우 달라서 많이 놀랐다. 뉴욕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거의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인색한 것 같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사실 닉과 사이먼이 미국 코미디영화의 열광적인 팬이고, 이번 영화에 반드시 영국식 유머만 넣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까닭에 큰 갈등은 없었다. 그들이 가진 영국식 감성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많이 이용됐다.

-외계인 폴은 다른 공상과학영화 속 외계인과는 좀 달라 보인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표현되는 외계인 중 가장 지구인화된 존재가 아닌가 싶다. 지구인에게 마약을 주는 외계인은 폴이 유일하지 않을까.(웃음)



배우 겸 공동 각본가,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

새롭게 재밌게 언제나 보고싶게

-그동안 사이먼 페그와 여러 편을 함께 작업해왔는데, 각본 작업은 어땠나.
=<닉 프로스트> 알다시피 우리는 18여년간을 친구로 지내왔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며 하나의 각본을 완성할 수 있는 시기가 충분했다. 런던의 사무실에서 하나의 대형 모니터를 함께 보며 각본을 썼는데 연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번 영화에는 다른 영화들을 연상케 하는 익숙한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사이먼 페그> 제발 이를 오마주로 봐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와 <E.T.>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술집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스타 워즈>에서 영감을 받았다. 수상한 사람이 우리가 머무는 곳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을 때 드는 놀라움 혹은 두려움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가 바로 <스타 워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집 밴드에게 <스타 워즈>의 테마 <칸티나 밴드>를 연주하게 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과 비교해보자면 이번 작품에서는 닉의 비중이 커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를 이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닉 프로스트> 누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변화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우리가 늘 같은 것만 한다고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마 다음 작품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다시 각본을 같이 쓰게 된다면 둘 중 하나는 연기를 나머지 하나는 감독이나 프로듀서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우리 작품의 수명도 길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을 결코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우리 작품을 언제나 보고 싶은 이벤트로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함께 일하는 모토다.

-다윈의 진화론과 천지창조설의 대립에 대해서 할 말이 있을 것 같다(영화에서는 당연히 기독교 원리주의자의 창조론을 마구 비판한다).
=<사이먼 페그> 둘 중 한쪽을 지지하려고 이 부분을 넣은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코미디 관점에서 보고 싶었을 뿐이다. 코미디영화는 현실세계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을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극한의 공포를 경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결코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이번 작품을 감상하면서 당신들이 오마주한 부분을 사실 꽤 놓친 것 같다.
=<닉 프로스트> 괜찮다. 사실 이번 작품을 외계인과 함께하는 로드무비로 즐겨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작품들을 오마주했는지를 일일이 따지는 것은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을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영화를 즐기는 재미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