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할리우드 마지막 여왕의 퇴관
2011-04-06
글 : 신두영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79살로 생을 마감하다

고전 할리우드의 마지막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절대적인 미의 대명사였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지난 3월2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살. 테일러의 대변인인 샐리 모리슨은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 정작 본인은 싫어했다) 테일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테일러가 입원했던 LA의 시더-시나이 병원에는 그녀의 네 자녀가 모두 모여서 그녀의 임종을 지켰다. 테일러는 2004년부터 울혈성 심부전증을 앓아왔고, 지난달 이 병원에 입원해 6주간 치료를 받다가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미국 언론은 일본 원전사고나 리비아 공습 등 국제적인 이슈를 젖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죽음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마지막 고전 할리우드의 아이콘에게 표하는 경의였을 것이다.

1932년 영국 런던에서 미국인 부부의 둘째로 태어난 테일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미술상이었고 어머니는 뉴욕에서 배우로 활약했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테일러는 10살 때 <귀로>(1942)로 데뷔한 뒤 <녹원의 천사>(1944)에서 귀여운 아역배우로 인기를 얻었다. <작은 아씨들>(1949), <신부의 아버지>(1950) 등을 거친 그녀는 <젊은이의 양지>(1951), <자이언트>(1956)에서 성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역 출신 배우로서는 드물게 스타의 신전에 올라섰고, 당대 미인의 어떤 표본처럼 간주됐다. 유일하게 두번 결혼했던 리처드 버튼과 연기한 <클레오파트라>(1963)에서는 아예 미의 상징인 클레오파트라가 됐다. 테일러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에서 역사상 최초로 100만달러의 개런티를 받았다. 영화는 실패했다. 테일러가 손해본 것은 없었다. 그 영화 이후, 우리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얼굴을 절로 떠올리게 됐으니 말이다.

테일러는 70년의 연기 생활 동안 50편이 넘는 영화를 찍었으며 두번의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녀는 콜걸을 연기한 <버터필드 8>(1960)으로 첫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는 그녀에게 두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감독 마이크 니콜스는 테일러를 “가장 위대한 여배우 중 한명으로 생각한다”며 치켜세웠다. 물론 그녀가 당대 할리우드의 가장 위대한 연기파는 아니었다. 그녀는 종종 비평가들이 자신을 농담처럼 간주한다며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당대의 가장 화려하고 극적인 스타였다는 사실이다. 스캔들, 7명의 남자와 8번의 결혼, 태작과 걸작을 넘나들며 스크린을 현혹한 그녀는 할리우드 그 자체였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40대 이후, 테일러는 알코올 의존증, 약물 중독 등으로 힘들어했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적도 여러 차례있었다. 1997년 그녀는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고 2009년에는 심장판막 수술을 받기도 했다. “나는 늘 행운이 함께했다.” 그녀가 60살이 되던 해 했던 말이다. “외모, 명예, 부, 사랑. 모든 것이 나와 함께했다.” 65살이 됐을 때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말년에 테일러는 ‘엘리자베스 에이즈 재단’을 설립하고 에이즈 퇴치 활동을 벌이며 사회로 자신의 명성을 환원했다.

테일러는 데보라 카의 기품, 오드리 헵번의 발랄함, 그레이스 켈리의 우아함, 마릴린 먼로의 관능미와는 다른 절대 미(美)의 배우였다. 수많은 ‘세기의 미인’들이 있었지만 테일러만큼 그 어마어마한 명칭에 어울리는 배우는 드물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조셉 맨케비츠 감독은 테일러가 18살일 때 프랑스 칸에서 처음 그녀를 보았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내 생애에서 가장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순수 그 자체였다.” 맨케비츠는 “그녀의 삶 자체가 일종의 연기”였다면서 그녀의 삶은 “스크린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이제 ‘테일러의 영화’는 막을 내렸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고전 할리우드라 불렸던 시대의 흔적도 사라졌다. 배우 조앤 콜린스의 한마디가 그녀의 죽음을 명확히 설명해준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마지막 아이콘이었다.” 테일러는 200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데임’ 작위를 받았다. 작위를 받기 전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미 귀족이었다. 아니, 그녀는 아마도 할리우드의 마지막 여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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