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겠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하 <불의 잔>)에서 볼드모트의 부하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친구 세드릭 디고리를 떠나보내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소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말로 모든 것이 변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던 교장선생님(덤블도어)이 살해당하는 걸 지켜봤고, 스승(스네이프)의 배신을 알게 되었으며, 사랑하는 동료들(무디, 도비 등)의 죽음을 보았다. 남은 건 더 많은 죽음과 단 한명의 승자를 낼 거대한 전쟁이다. 예전 같지 않은 건 호그와트의 마법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이하 <죽음의 성물2>)의 개봉은 지난 10여년간 전세계 수천만 관객이 스크린으로 지켜본 마법 세계의 문이 (아마도) 영원히 닫힌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가 안녕을 고한다는 건 원작 소설가 조앤 K. 롤링이 동명의 마지막 시리즈를 출간했을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아쉬움과 공허감을 남긴다. 우리는 모두 <죽음의 성물2>의 결말을 소설을 통해 이미 알고 있거나 쉽게 알 수 있지만, 일곱편의 영화를 거치며 실제로 관객과 함께 성장해온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을 떠나보내는 것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이별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문화코드를 절묘하게 짚어내다
<죽음의 성물2>를 얘기하기 전에 <해리 포터>가 어떤 시리즈였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앤 K. 롤링이 14년 전 출간한 소설은 67개국 언어로 번역돼 2011년 6월 현재 4억5천만부가 팔렸고, 영화를 제작한 워너브러더스사가 벌어들인 흥행 수익은 6조원에 달한다. 영국에는 해리 포터 테마파크가 세워졌고, 지금도 누군가의 아이팟에서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가 재생되고 있을 거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그렇게 명실상부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실제로 해리 포터의 브랜드 가치는 15조원이다). 하지만 ‘고전’으로 칭송받으며 베스트 시리즈물로 함께 거론되는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에 비해 <해리 포터>는 고유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워즈>는 조지 루카스가 신화학자와 역사학자, 과학자를 동원해 만들어낸 새로운 우주였다.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 톨킨은 칼과 마법사로 대변되는 영국 판타지 문학의 효시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작가다. 반면 <해리 포터>는 어떤가? 프리벳가 벽장 속에 살던 외로운 소년 해리가 마법학교 교장 덤블도어의 방문으로 마법 기숙학교로 떠난다는 1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하 <마법사의 돌>)의 줄거리부터 <메리 포핀스>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스시 이야기>와 <워스트 워치>가 머릿속에 겹쳐 떠오른다. <해리 포터>는 이처럼 영국적인 판타지의 전통 위에 기숙학교물, 찰스 디킨스적인 캐릭터, 고딕풍의 배경 묘사를 절묘한 비율로 배합해낸, 무수한 서브 장르물로 이루어진 장르물이었다. <해리 포터>에 대한 문학적 평가를 두고 시리즈가 끝난 지금까지도 기성 평론가들이 날선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건, 아마도 <해리 포터>의 이러한 미심쩍은 문학적 깊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론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해리 포터> 시리즈는 현대의 문화 코드를 절묘하게 짚어내며 독자들을 자극했다. 마법세계의 모든 마법사들이 주목하는 퀴디치 월드컵은 축구 때문에 이혼도 한다는 영국의 축구 열풍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며, 슬리데린 기숙사 학생들의 혈통주의나 어둠의 마법사들이 행하는 테러는 현대 세계에서 반복되고 있는 문제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이 톨킨이 역설했던, 현실에는 없는 ‘2차 세계’를 창조해내 독자들을 매료시켰다면, <해리 포터>는 현실의 균열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현실 기반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였다. <해리 포터>가 어필하는 건 바로 그런 지점이다.
이 세계의 중심에는 원작 소설의 작가 조앤 롤링이 있다. <해리 포터>가 다양한 장르의 ‘클래식’에 영향을 받은 작품임에도 새 시대의 ‘클래식’으로 평가받고 있는 건, 이야기와 문화적 맥락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아는 롤링의 힘이 컸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개봉한 일곱편의 영화 시리즈가 원작 소설의 팬들에게 그리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를 거쳐간 감독은 모두 네명이다.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이하 <비밀의 방>)은 <나홀로 집에>의 크리스 콜럼버스가,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이하 <아즈카반의 죄수)는 <이투마마>의 알폰소 쿠아론이, <불의 잔>은 <네번의 장례식과 한번의 결혼식>의 마이크 뉴웰이 연출했고,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하 <불사조 기사단>)부터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이하 <죽음의 성물1>)에 이르기까지는 드라마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이 연출했다. 이중 가장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감독은 <마법사의 돌>을 연출한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었다. 동명 소설의 결을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했다고 평가받는 크리스 콜럼버스의 영화가 <해리 포터> 시리즈 최고의 흥행 기록(9억7477만달러)을 세웠다는 점은 이 시리즈가 어떤 유형의 팬덤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암시한다. <해리 포터>의 팬덤은 곧 시리즈의 창조자 조앤 롤링의 상상력에 대한 지지다. 제작된 영화 중 가장 영화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고 평가받는 알폰소 쿠아론의 <아즈카반의 죄수>가 7편의 영화 중 가장 저조한 흥행 성적(7억9563만달러)을 기록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불사조 기사단>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이하 <혼혈왕자>)에서 소설 플롯의 과감한 생략과 어두운 성장담을 연출해 주목받았던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영화 시리즈 안에서 굳이 분류하자면 크리스 콜럼버스보다는 알폰소 쿠아론쪽에 가까운 편이었다. 한마디로 소설에 안주하기보다는 영화적인 해석에 주목했다는 얘기인데, 그런 그마저도 영화 시리즈의 마지막인 <죽음의 성물> 1, 2편만큼은 최대한 원작의 결을 살리는 방향으로 연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리즈를 두편의 영화로 나누어 개봉하게 된 것도 원작 소설의 복잡한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까닭에서였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죽음의 성물1>은 그런 예이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영화는 볼드모트와의 일전을 앞둔 해리 포터의 고뇌하는 모습만큼이나 그의 주변에서 각자의 사명으로 마법 전쟁에 임하는 조연 캐릭터들의 묘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집요정 도비, 불사조 기사단의 매드아이 무디, 해리의 부엉이 헤드위그는 통렬한 죽음을 맞이하고, 론의 형 빌은 큰 부상을 입는다. 이처럼 수많은 캐릭터들에게로 분산된 카메라의 움직임은 영화의 초점을 흩뜨린다기보다는 모두가 임하고 있는 전쟁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암시하는 단서가 됐다. 영화 한편 한편을 거치며 수많은 캐릭터의 역사를 머릿속에 저장해온 관객에게, <죽음의 성물> 속 마법 전쟁은 ‘해리 포터’의 전쟁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죽음의 축제다. 소설의 플롯과 캐릭터를 함부로 걸러내지 않고 세심하게 다듬어낸 <죽음의 성물1>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다.
<죽음의 성물2> 역시 1편과 마찬가지로 동명 소설의 결을 살린 연출이 예상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2편이 전편보다 훨씬 다양한 영화적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되리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불사조 기사단과 어둠의 마법사들이 정면 대결을 펼칠 호그와트에서의 전투신이 기대된다. 1편에서 딱총나무 지팡이, 부활의 돌, 투명망토, 이 세 가지 ‘죽음의 성물’을 지배하는 자가 죽음의 지배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리 포터 일행은 볼드모트의 다섯 번째 호크룩스를 찾아 모교 호그와트로 돌아온다. 딱총나무 지팡이를 손에 넣은 볼드모트 또한 해리가 자신의 호크룩스를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호그와트로 돌아온다.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가 공개한 <죽음의 성물2>의 공식 예고편에서는 제작진이 부린 전투 마법의 전모를 엿볼 수 있다. 고풍스럽던 호그와트의 벽돌벽은 폭파되어 산산조각이 나고, 망토 입은 학생들이 장난치며 뛰어놀던 푸른 언덕은 피같이 붉은 화염에 휩싸인다. 하늘을 나는 용은 울부짖고, 마법사들의 지팡이는 쉴새없이 빔을 쏟아낸다. 볼드모트에 맞서야 하는 해리 포터를 대신해 호그와트의 전투를 주도하는 이는, 무엇 하나 야무지게 하지 못해 선생과 아이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됐던 네빌 롱바텀이다. 10여년간 네빌을 연기해온 매튜 루이스는 2편에서 벌어질 호그와트의 대결투에 대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전투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짧고 간결한 힌트지만 그의 말은 <죽음의 성물>이 지향하는 전쟁장면이 빠른 템포와 갑작스러운 습격에 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프로듀서 데이비드 헤이먼 또한 호그와트에서의 전투신을 오페라에 비유해 설명한다. 한마디로 극적이면서도 순간의 리듬을 잃지 않는 액션장면으로 연출했다는 얘기다.
엔딩보다 더 중요한 것
게다가 <죽음의 성물2>는 1편처럼 3D로 제작됐다. 1편의 3D는 여느 3D 블록버스터영화들처럼 영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무심하고 혹독한 평가를 들어왔지만, <LA타임스>가 만난 <죽음의 성물2>의 시각효과 담당자 팀 버크에 따르면 “매우, 매우 만족스러운 3D 장면이 구현됐다”고 한다. 진짜 평가는 역시 영화의 뚜껑을 열어봐야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물론 전투신이 <죽음의 성물2>의 전부는 아니다. 마지막 시리즈를 닫는 영화는 이 모든 사연을 어깨에 짊어지고 온 한명의 영웅, 해리 포터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데도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볼드모트와의 전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사후세계로 가게 된 해리 포터는 킹스크로스역에서 덤블도어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위대한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했던 제자 앞에서 덤블도어는 이런 말을 남긴다. “돌아가지 않아도 돼. 하지만 너는 고통을 감수하고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어. 어느 쪽이든 네 선택에 달렸단다.” 우리는 저주로 인해 이마에 번개 자국의 흉터가 남은 그 순간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해온 이 소년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훌쩍 청년이 되어버린 해리 포터의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 시리즈를 거치며 크고 작은 선택을 해온 그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다. <죽음의 성물2>에서 하루빨리 그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 그때까지는, 안녕이라는 인사를 쉽게 꺼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