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 사냥꾼> Troll Hunter
안드레 외브레달 | 노르웨이 | 2010년 | 103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 가능성이 남아 있기나 한가. 누군가가 찍은 영상을 뒤늦게 발견해 상영한다는 파운드 푸티지의 전성기는 <블레어 윗치 패러디>가 막을 올렸고 <클로버필드>가 일종의 막을 내렸다. 웬걸. 노르웨이 영화쟁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트롤 사냥꾼>은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 ‘트롤’을 소재로 한 파운드 푸티지 영화다. 일단의 다큐멘터리팀이 노르웨이에 급증한 살인곰 케이스를 쫓기 위해 곰 사냥꾼들을 찾아다닌다. 여정의 와중에 그들은 미스터리한 사냥꾼을 만나게 되고, 그가 정부의 명령을 받고 비밀리에 트롤들을 관리하는 남자라는 걸 알게 된다.
북유럽에서 온 작은 영화라고 웃어넘길 필요는 없다. <트롤 사냥꾼>은 스펙터클의 규모로도 <클로버필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아파트만큼 거대한 트롤이 등장하는 액션신은 CG의 영리한 쓰임새와 핸드헬드 미학을 절묘하게 버무리며 시각적 경이감을 안겨주는 데 성공한다. 게다가 <트롤 사냥꾼>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다루지 않음으로써 일반적인 할리우드산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훌륭하게 뛰어넘는다. 사실 트롤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농담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이를테면 트롤은 기독교 신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 코미디 장치로 쓰이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유니버설픽처스와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트롤 사냥꾼>의 리메이크 판권을 구입했다. 지극히 북유럽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를 할리우드가 왜? 어쨌거나 당신이 파운드 푸티지와 괴물 장르의 열렬한 팬이라면 올해 부천에서 <트롤 사냥꾼>을 놓치는 건, 그렇다. 죄다.
<어택 더 블록> Attack the Block
조 코니시 | 영국 | 2011년 | 85분 | 부천 초이스 장편
미국의 소년 소녀들은 외계인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런던의 소년들은 외계인을 죽여버린다. 설정은 <슈퍼 에이트>와 같지만 <어택 더 블록>은 꿈과 용기 대신 지독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SF액션영화다. 무대는 할렘과 다름없는 런던 남부의 어느 동네. 밤거리에서 돈을 뺏고 돌아다니던 소년들이 외계인 괴물 한 마리를 발견해 처단한다. 그날 밤 하늘에서 수많은 괴물이 동네를 침공하고 소년들은 야구방망이와 일본도, 폭죽 등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10대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야광 이빨을 드러내는 괴물과 이에 맞서는 아이들의 액션강도는 상당히 세다. 석유와 라이터로 싸우는 동네 꼬마부터, 재난의 와중에도 구역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려는 사람까지 가지각색의 조연들이 벌이는 유머도 눈을 뗄 수 없는 요소다. 무엇보다 사회의 무관심으로 방치됐던 아이들의 거칠고 스산한 내면이 할리우드의 10대 SF와 뚜렷이 구별되는 부분이다.
<리벤지, 미친 사랑 이야기> Revenge: A Love Story
웡칭포 | 홍콩 | 2010년 | 91분 | 부천 초이스 장편
임신부의 배에서 아이를 도려내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경찰의 부인이거나 애인이라는 것, 그리고 함께 있던 경찰도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범인은 의외로 쉽게 잡히고 그의 사연이 드러난다. 한 동네에 살던 소녀를 사랑했던 남자는 소녀의 할머니가 세상을 뜬 뒤, 그녀를 지켜주리라 다짐한다. 둘만 남게 된 어느 날 밤, 소녀를 창녀로 오인한 한 사내가 그녀를 겁탈하려 한다. 도망친 남녀는 경찰서를 찾는데, 더 끔찍한 일이 이곳에서 벌어진다. 피가 낭자한 액션의 흥분을 즐기려는 관객에게는 다소 심심한 영화일 듯. <리벤지, 미친 사랑의 이야기>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의 행적을 따르는 영화가 아닌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에 가깝지만 촘촘히 구성된 드라마가 긴장감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일본의 AV배우에서 연기자로 전업한 아오이 소라의 주연작이다.
<다방> Dabangg
아비나브 카쉬얍 | 인도 | 2010년 | 126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샤룩 칸, 아미르 칸과 함께 인도의 3대 칸으로 불리는 살만 칸의 영화다. 경찰인 판데이는 싸움 실력과 배짱, 유머, 근육, 잘생긴 얼굴까지 모든 걸 갖춘 남자다. 도시를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처벌하고 그들의 돈을 가로채 가난한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그를 사람들은 로빈후드 판데이로 부른다. <다방>은 어린 시절부터 의붓아버지와 갈등을 겪어온 판데이의 가족사, 각종 불법사업으로 정치자금을 만들려고 하는 부패한 정치인과의 대결, 그리고 판데이의 사랑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놓았다. 전통적인 발리우드영화 형식을 갖고 있지만 <매트릭스>를 차용한 액션 등 화려하고 세련된 연출기법이 동원됐다. 물론 발리우드영화 특유의 춤과 노래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요소다. 인도에서는 개봉 당일 흥행 1위, 개봉 첫주 흥행 1위의 기록을 세웠다. ‘다방’은 용감한, 대범한 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 Turn Me On, Goddammit
야니케 시스타드 야콥센 | 노르웨이 | 2011년 | 76분 | 비전 익스프레스
몸은 성숙했고 얼굴도 예쁘고 주위에 좋아하는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15살 소녀 알마의 섹스는 오로지 상상에서만 이뤄진다. 문제는 그녀의 상상이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것. 어느 날 파티에서 다량의 맥주를 마신 알마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꺼내 알마의 허벅지에 갖다댄다. 그녀는 흥분된 마음에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그때부터 알마는 사람들에게 ‘미친년’ 혹은 ‘성기(dick)-알마’로 놀림을 당한다.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는 소녀들의 몽정기를 세상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묘사한다. 알마가 살고 있는 곳은 노르웨이의 어느 산골 마을. 도시를 동경하는 소녀들은 언제나 동네를 저주한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술과 담배뿐인 이곳에서 그녀들의 상상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사춘기 소녀들의 2차성징을 그린 성장영화인 동시에 그들을 훈육할 뿐 관심을 두지 않는 어른들을 꼬집는 이야기다.
<에일리언 비키니> Invasion of Alien Bikini
오영두 | 한국 | 2011년 | 75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주인공 영건은 도시를 지키는 남자다.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일부터 약한 자를 괴롭히는 어둠의 세력을 처단하는 일까지 그가 도시를 위해 하는 일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어느 날, 한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은 영건은 그녀를 해하려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발견한다. 영건은 여자를 구해 집에 데려와 십전대보탕부터 마즙까지 몸에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남자를 통해 종족을 번식하고자 하는 에일리언이다. 여자는 영건을 유혹하려 하는데, 영건은 순결서약을 했다며 결혼하기 전까지는 정자를 줄 수 없다고 반항한다. 섹스코미디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SF영화로 기발한 유머들이 돋보이는 한편, <지구를 지켜라!>를 연상시키는 영건의 트라우마와 잠시뿐이지만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의 아픔이 절절하다. <이웃집 좀비>로 한국 저예산 장르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망고스틴팀의 신작이다.
<산탄총을 든 부랑자> Hobo with a Shotgun
제이슨 아이제너 | 캐나다, 미국 | 2010년 | 89분 | 부천 초이스 장편
<산탄총을 든 부랑자>는 <그라인드 하우스>에 삽입된 가짜 예고편에서 출발한 영화다. 이야기의 무대는 말도 안될 만큼 극악한 범죄가 벌어지는 어느 마을이다. 마을의 무법자 드레이크는 거리에서 사람의 목을 잘라버리기 일쑤고, 그의 아들들은 살해와 강간을 일삼으며, 경찰도 그들 편이다. 잔디 깎는 일을 하며 조용히 살려고 마을에 들어온 부랑자(룻거 하우어)는 악당들을 처단하고자 잔디깎이 대신 산탄총을 구입한다.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상영된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들의 결을 가져온 만큼 <산탄총을 든 부랑자>에서 튀기는 피와 살점과 내장의 양은 무수히 많다. 여전히 건재한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룻거 하우어의 얼굴은 낭자한 혈흔 가운데에서도 묘한 감동을 전한다. 예고편의 주인공이었던 데이비드 브런트가 본편에서는 부패한 경찰로 출연한다.
<마지막 죽음> The Last Death
다비드 루이즈 | 멕시코 | 2011년 | 107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개인의 아픔에서 거대한 조직의 음모로 가지를 뻗는 스릴러영화가 신선한 건 아니다. 다만 이런 영화들의 대부분은 그 나라의 정치적인 상황을 은유적으로 녹여낸다는 점에서 타국의 관객에게도 흥미로움을 가진다. <마지막 죽음>은 멕시코에서 날아온 서스펜스 스릴러영화다.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산장에서 휴식을 즐기던 심리학자 하이메는 발가벗겨진 소년을 발견한다.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있는 그는 기억 전체가 사라진 상태다. 소년의 신상을 찾아나선 하이메는 그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시에 멕시코 의료산업을 대표하는 한 남자와 소년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남미발 서스펜스 스릴러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영화다. 근미래로 설정된 배경을 여러 가지 SF적 아이디어로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탄탄한 구성과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몬 베르너 실종사건> Lights Out
파브리스 고베르 | 프랑스 | 2010년 | 87분 | 비전 익스프레스
1992년 파리 외곽의 어느 동네. 10대들의 음주파티가 열리는 동안 숲속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이야기는 열흘 전으로 돌아가, 시몬 베르너란 이름의 소년이 사라진 사건을 보여준다. 이어 또 한명의 소년과 소녀가 사라진다. 언뜻 <시몬 베르너 실종사건>은 연쇄실종사건의 배후를 뒤쫓는 스릴러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실종의 이유는 중요치 않다. 철없는 아이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소문들이 증폭되고, 그러면서 누군가는 소아성애자로 오인받고, 누군가는 경찰에 끌려가는 일련의 상황이 긴장감의 요체다. 영화가 집요하게 탐구하는 것은 10대라는 시간인 듯 보인다. 섹스나 동성애 같은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사실을 오해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비극을 낳는다. 같은 상황을 4명의 캐릭터를 통해 반복하면서 정보량을 늘리는 한편, 미스터리의 실체에 다가가는 연출력이 압권이다.
<토요일의 암살자> Saturday Killer
유슬렛 시파팍 | 타이 | 2010년 | 97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소문난 킬러인 티 라이플은 발기불능과 조루를 겪고 있다. 성기능 개선에 좋다는 온갖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보지만 아예 효과가 없거나 발정난 개처럼 되거나 성기가 부풀어오르는 등의 부작용만 심해진다. 어느 날 그는 댄스 강사인 크리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크리스 역시 티 라이플의 진심에 감동받지만 크리스가 어깨에 손만 갖다대도 ‘느껴버리는’ 티 라이플로서는 자신있게 나설 용기가 없다. 뿐만 아니라 티 라이플은 크리스가 자신이 죽인 정치인의 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타이 감독 시파팍의 <금요일의 암살자>에 이은 연작 시리즈다. 두 작품은 모두 킬러의 말 못할 사랑을 그리고 있다. <금요일의 암살자>는 경찰인 딸을 바라보는 킬러 아버지의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코미디를 기본적으로 하고 있지만 타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풍자가 맞물리고 있다. 관람을 원하는 자는 꼭 두 영화 모두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