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안젤리나 졸리.’ 액션연기를 많이 한 하지원에게 수식어가 붙은 모양이다. 예전의 ‘호러퀸’에 비하면 근사한 표현은 아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서슬 퍼런 칼로 바람을 가르던 사극 액션물 드라마 <다모>(2003)나 영화 <형사 Duelist>(2005)를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지원은 복싱 글러브를 낀 채 상대선수에게 강펀치를 날렸고(<1번가의 기적>(2006)), 해운대를 덮친 거대한 쓰나미로부터 죽기 살기로 도망다니지 않았던가(<해운대>(2009)). 비슷한 시기에 기품을 갖춘 기생 ‘황진이’(드라마 <황진이>(2006)),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남편 곁을 묵묵히 지키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아내(<내 사랑 내 곁에>(2008))도 연기했지만 하지원의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 연기가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물론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은 잠시 밀어놓자). 어쩌면 한국의 여배우들이 꺼리던 호러, 액션 장르에 스스럼없이 출연해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간 그의 용기가 가상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액션이 좋다는 이유로 전작들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좋은 시나리오에 액션신이 있었을 뿐이에요. ‘다른 여배우들은 안 해본 것 같은데 내가 한번 해볼게’라는 마음으로 도전한 거였어요. 반면 <7광구>는 딱 하나예요. 정말 강한 여전사가 되고 싶었어요.”
<7광구>의 하지원은 시추선의 해저장비 매니저 차해준을 연기한다. 차해준의 아버지(정인기)는 과거 시추선에서 ‘캡 틴’(안성기)과 함께 석유를 찾던 중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그런 아버지의 뒤를 이은 차해준의 머릿속 생각은 오로지 하나다. 석유. “바다 한가운데서 죽은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아빠가 보고 있겠지’ 하며 그리워하다가도 ‘석유를 찾아야지!’ 하며 눈을 번득이는 여자”라는 하지원의 표현도 과장이 아니다. “감독님께 해준이는 학교도 못 다니고 시추선에서 큰 아이냐고 물었어요. 거의 ‘돌아이’니까. (웃음) 어쩌면 글도 시추선 선원들에게 조금씩 배웠을지도 몰라요.” 하긴 멀쩡한 여자가 기구한 사연 하나없이 석유에 목매달 수는 없지 않은가.
매 작품 준비성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하지원이지만 ‘강인한 여전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정말 많았다. “기본적으로 하루에 다섯, 여섯 끼니를 고기로 먹으면서 근육을 키웠고, 하루 8시간을 웨이트트레이닝에 바쳤어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쿠터, 바이크, 필라테스, 테니스, 수영도 배웠고요. 바다에 친숙해지기 위해 스쿠버는 물론이고 태닝도 열심히 했어요.”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라는 칭호가 아까울 정도의 자기 관리다. 옆에 있던 안성기가 “그렇게 준비했기에 현장에서 덜 힘들었을걸. 물론 현장에서도 하지원은 절대 놀지 않는 배우”라고 귀띔해줄 정도니 말이다.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하지원은 시추선 위에서 바이크를 즐겨 타고, 괴물 앞에서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차해준이 될 수 있었다. 그 점에서 차해준과 하지원은 매우 닮았다. “결정한 게 있으면 그냥 달려요. 부정적인 생각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설령 <7광구>가 제작되지 못했더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뭔가 나빠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 안 해요. 제가 결정한 거니까.”
‘그린 매트’에서 괴물을 상대했던 하지원은 요즘 ‘그린 테이블’에서 탁구에 열중하고 있다. 1991년 치바 세계탁구선수권에 출전한 남북단일팀을 소재로 한 영화 <코리아>에서 하지원은 ‘현정화’ 역을 맡아 이분희 역의 배두나와 함께 명승부를 펼치고 있다. 거의 매 작품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를 하고 있는데, 피곤하거나 힘들지는 않을까. “<7광구>를 찍고 나서 곧바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찍었는데도 괜찮았어요. <시크릿 가든> 끝나자마자 또 탁구(<코리아>)하고. (웃음) 이거 끝나고 좀 쉬려고요.” 역시 엄살은 없다. 그게 하지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