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안성기] 그만이 할 수 있는 악역
2011-08-08
글 : 주성철
사진 : 백종헌
<7광구>의 안성기

이제 안성기라는 배우에게 ‘변신’이란 표현이 어떤 의미가 있으랴만, <7광구>의 새로운 캡틴 ‘정만’은 그의 이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숨긴 캐릭터다. 김성수의 <무사>(2000) 같은 영화들에서 리더를 연기할 때 그는 정의로운 기품과 온화한 배려심이 넘치는 남자였다. 하지만 <7광구>의 그는 <바운티호의 반란>(1984)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보여준 광기까지는 아니라도, <죠스>(1975)에서 오직 상어밖에 모르던 카리스마 넘치는 퀸트 선장(로버트 쇼)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시추 작업이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결국 본부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은 시추선 이클립스호에 특별히 투입된 캡틴이 바로 그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철수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7광구>를 둘러싼 괴물의 정체를 은폐하고 자신이 직접 잡기 위해서라면 적당한 범죄 정도는 눈감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와 동시에 생명을 걸고서라도 위험을 정면 돌파하는 캡틴이기도 하다. 목표를 위해 후배들의 안위는 개의치 않지만, 자신의 과오는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어쩌면 <7광구>는 90년대 이후 안성기가 처음으로 악역을 맡은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맨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때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 생각했다. “무척 의도적으로 뭔가를 꾸미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서 김지훈 감독에게 ‘나와 좀 안 맞기도 하고 너무 어두운 캐릭터라 망설여진다’고 말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를 통해 좋은 인연을 만들었던 김지훈 감독은 그를 ‘대장님’이라 부르며 치밀한 설득작업에 나섰다. 악역처럼 느껴지는 나이 든 리더지만 뭔가 인간적인 매력도 담아내야 하는 정만 역할로 안성기 외의 다른 인물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것. 이에 대해 그는 “김 감독이 계속 그런 비밀이 있는 인물에게 사건을 일으킨 당위성을 갖게 하려면 내가 맡아줘야 한다고 했고, 나로서도 괴물에 맞서는 괴물 같은 사람을 연기한다는 사실이 생각하면 할수록 매력적이었다”고 말한다.

안성기는 현장에서도 계속 ‘대장님’으로 불렸다. 그야말로 한국영화계의 대장님이라 해도 틀리지 않으니 너무나 어울리는 호칭이자 캐릭터다. 촬영 내내 햇빛 한번 보기 힘들었던 현장에서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7광구>는 그의 나이에 맞게 실제 흰머리를 딱히 염색하지 않고서 자연스레 드러낸 첫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그처럼 대장님이라는 무게감과 별개로 최근 그가 보여주는 행보는 흥미롭다. 친구의 딸(이하나)과 묘한 로맨스가 피어났던 <페어 러브>(2009)가 전혀 예상치 못한 신선한 멜로영화였다면, <7광구>는 앞서 말한 것처럼 거의 볼 기회가 없었던 그의 냉혹한 표정을 그려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페어 러브>는 큰 흥행을 할 영화는 아니지만 참 따뜻한 작품이어서 ‘그래 가보자’하고 마음먹었던 작품이다. <7광구>는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영화지만 선택한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를 찍는 동안 일단 나 자신이 즐겁고 행복할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이전 내 작품들과 다른 면이 많지만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7광구>에서 안성기는 괴물과 일대일 대결을 펼친다. 라이터를 던져 괴물의 몸에 불을 붙이고 나중에는 화염방사기까지 꺼내든다. 괴물에게 잡혀 내동댕이쳐지기도 한다. 그럴 땐 그가 <7광구>의 캡틴이자 한국영화계의 캡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묘한 쾌감이 있다. 그런 점에서 <7광구>는 안성기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김지훈 감독과의 인연은 <타워>로까지 이어진다. 물론 그 역할은 아직 비밀이다. 역시 기대감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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