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작열하는 황야의 한복판, 한 남자(대니얼 크레이그)가 정신을 잃고 누워 있다. 잠시 뒤 깨어난 이 남자는 깊이 벤 복부의 상처가 고통스럽지만 어쩌다 그런 상처가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남자의 왼쪽 팔목에는 육중한 기계장치가 팔찌처럼 채워져 있는데, 그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카우보이 & 에이리언>의 초반 20분은 이런 식이다. 상황이 툭툭 던져질 뿐 전후사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기억을 잃은 이 남자가 황야의 강도단을 무찌르고, 앱솔루션 마을에 도착해 착취와 협박을 일삼는 마을의 난봉꾼 퍼시(폴 대노)를 혼쭐내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에일리언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사내의 이름이 제이크 롱리건이고, 살인자 혐의를 받고 수배 중이라는 사실도 한참 뒤에야 드러난다.
<아이언맨> 시리즈를 감독한 존 파브로의 신작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서부극에 에일리언 장르가 더해진 하이브리드다. 평화롭지는 않지만 나름의 질서에 따라 돌아가는 앱솔루션의 밤하늘에 나타난 비행선은 사람들을 납치하고 광선으로 공격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돌하이드(해리슨 포드) 대령의 망나니 아들 퍼시도, 보안관(키스 캐러딘)도 섬광과 함께 하늘에서 날아온 올가미에 걸려 비행선으로 끌려간다. 그리하여 마을의 질서였던 돌하이드 대령과 수배자인 제이크 롱리건, 백인과 오래도록 대치해온 아파치족, 황야의 강도단 등은 이전까지의 적대적 관계에 일시적 휴전을 선언하고, 공통의 적인 에일리언과 싸우기 위해 연합한다. 이 연합에는 에일리언에게 가족을 잃은 말없는 여자 엘라(올리비아 와일드)도 가세하는데, 엘라는 제이크가 에일리언의 본거지를 알고 있다고 믿으며, 그가 기억을 찾는 것을 돕는다.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1997년부터 영화화가 논의되었으나, 오랫동안 여러 편의 스크립트만 생산되고 정작 영화로 이어지지는 못한 불운한 프로젝트였다. 스크립트를 거쳐간 각본가 수만 해도 10명이 넘고, 원안을 내놓았으나 영화화를 기다리다 지친 스캇 미첼 로젠버그는 2006년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그려 출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토록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덕분에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존 파브로의 손에 이를 수 있었다. 대니얼 크레이그가 연기한 제이크 롱리건 역할은 크레이그 이전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캐스팅되었는데, <아이언맨> 시리즈를 통해 친분을 쌓은 존 파브로에게 이 프로젝트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 뒤 <셜록 홈스: 게임 오브 섀도>의 촬영과 일정이 겹쳐 다우니 주니어는 <카우보이 & 에이리언>에서 하차했지만 파브로는 그대로 남아 메가폰을 잡았고, 대니얼 크레이그, 해리슨 포드 등이 순서대로 합류하면서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려온 13년 묵은 프로젝트는 2010년 6월 크랭크인할 수 있었다.
사실 스캇 미첼 로젠버그의 그래픽 노블과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제목과 느슨한 설정을 공유할 뿐 에일리언의 디자인이나 이야기 전개는 전혀 다른 두편의 개별 이야기로 보는 것이 맞다. “그래픽 노블의 독자들이 기대하지 못한 새로운 비주얼과 플롯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존 파브로의 의지에, 제작자로 참여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륜과 취향이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해도 옳을 것이다. 특히 파브로는 에일리언의 디자인과 움직임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헬보이> 시리즈로 크리처 디자인에는 정평이 난 기예르모 델 토로를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 초청해 의견을 물을 정도로 공을 들였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참고했다고도 말했다.
<카우보이 & 에이리언>의 시사회와 감독과 배우 인터뷰는 미대륙의 북쪽에 자리한 몬태나주 미술라에서 열렸다. 하늘도, 들판도 마치 영화 속 그것처럼 드넓었던 미술라에서 만난 감독과 출연배우 3명의 인터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