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들 각자의 얼굴이 있다
2011-08-23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디지털 캐릭터의 진화
<혹성 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시저를 연기 중인 앤디 서키스.

최초의 CG 캐릭터에는 자신만의 얼굴이 없었다. 픽사 스튜디오 로고에 나오는 룩소 주니어는 그냥 일반 탁상용 조명등처럼 생겼었고, <피라미드의 공포>에 나오는 스테인드글라스 기사는 유리창에 표정이 그려진 한면만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명등은 어린 소년처럼 사랑스러웠고, 기사는 무서웠지만, 그건 기술이 아닌 아이디어와 예술성의 승리였다.

<터미네이터2>에 등장해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맞먹었던 T-1000도 얼굴은 없었다. 이 영화의 CG 캐릭터는 놀라운 액션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표정 연기와 대사는 인간 배우 로버트 패트릭의 몫이었다. CG로 만들어진 T-1000은 비현실적으로 반짝거렸고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아직 그는 현실의 대상을 모방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액션만 도맡아 하는 디지털 스턴트 더블에 가까웠다.

이모션 캡처가 불러온 혁명

90년대 초·중반 이후 CG 캐릭터의 공략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토이 스토리>부터 시작된 장편 CG애니메이션의 영역에서 CG 캐릭터들은 비현실적인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연기를 배운다. <쥬라기 공원>으로 시작된 특수효과영화에서 CG 캐릭터들은 현실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방법을 배운다. 종종 이 둘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숀 코너리가 전설 속의 용으로 나오는 <드래곤 하트>가 그런 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CG로 표현할 수 있는 건 플라스틱 장난감들이나 금속 로봇, 파충류나 공룡 정도로 보였다. 인간의 피부와 포유류의 털은 표현하기 어려웠다. <토이 스토리>와 같은 해에 나왔던 <쥬만지>를 보라. 이 영화의 CG 동물들은 어떻게 봐도 진짜 같지 않다.

먼저 극복된 건 포유류의 털이었다. 1998년에 나왔던 <마이티 조 영>에서만 해도 CG 고릴라와 애니매트로닉스 고릴라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피부는 여전히 어렵다. 적어도 ‘젊은 인간’을 흉내낸 CG 캐릭터가 킹콩이나 나비족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클로즈업을 받는 동안 관객을 속여 넘기기는 쉽지 않다. <파이널 환타지> <폴라 익스프레스> <크리스마스 캐롤>, 특히 <베오울프>로 이어지는 이런 시도는 장황한 뻘짓처럼 보였다(안젤리나 졸리가 나와 CG ‘안젤리나 졸리’를 연기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CG 캐릭터가 배우들의 밥줄을 끊어놓을 거라는 공포심은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시몬>에서 영화 속 CG 주인공 역으로 실제 CG 캐릭터를 쓰겠다는 앤드루 니콜의 시도를 배우 노조가 좌절시킬 수 있을 만큼은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놀랄 만한 발전은 있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본 관객 중 브래드 피트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것이 CG 얼굴이라는 걸 단번에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투박하기 짝이 없었던 모션 캡처는 이모션 캡처의 단계를 거치면서 연기하는 배우와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캐릭터 사이의 간격을 채우고 있다. 이제 인간 배우들은 CG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

이젠 배우들이 CG 캐릭터 연기를

이를 선언했던 건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에서 골룸을 만들었던 웨타 디지털과 그 골룸을 연기했던 앤디 서키스였다. 당시 앤디 서키스의 역할은 웨타 디지털의 기술을 홍보하기 위해 살짝 과장된 면이 있긴 했다. 실제로 그의 표정 연기는 웨타 디지털의 애니메이터들을 통해 상당부분 수정되고 다듬어져야 했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큰 편이다.

그런 작업은 이모션 캡처 시대로 접어든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킹콩>을 건너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통해 앤디 서키스의 연기가 그가 연기하는 CG 캐릭터들과 조금씩 더 밀접하게 결합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이 살다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별 생각 없이 <아바타>의 배우라고 여겨진다. 앤디 서키스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단 한번도 진짜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이모션 캡처의 연기를 본다. 골룸은 대사가 있었다. 킹콩은 (아주 머리가 좋긴 했어도) 고릴라였다. 하지만 앤디 서키스는 이 영화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지능을 갖고 있으며 인간과 맞먹는 표정을 가진 침팬지를 대사없이 연기해야 한다. 배우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고, 이제 CG 캐릭터는 배우들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메이크업 과정을 강요하지도 않고, 라텍스로 표정 연기를 억누르지 않으면서 배우의 연기를 도우며 덤으로 스턴트까지 해주는 새로운 종류의 도구이다. 여기서 배우의 역할은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시몬> 당시 배우조합이 걱정했던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미래이다. 이 정도면 한동안 배우들은 안심해도 된다. 적어도 진짜 연기를 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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