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7일, 패서디나에 자리한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서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홍보하는 다소 진지한 이벤트가 열렸다. 영화를 연출한 루퍼트 와이어트, 네번이나 오스카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웨타 디지털의 시각효과 전문가 조 레터리,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교수, 국제고릴라재단 직원이 패널로 무대에 올랐고, 영화에서 침팬지 ‘시저’를 연기한 모션 캡처 배우 앤디 서키스가 런던에서 화상전화로 함께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패널들이 차례로 준비한 영상과 시각자료를 통해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새롭게 시도된 퍼포먼스 캡처 기술과 침팬지와 인간의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모션 캡처 기술은, 그 뒤 <킹콩>과 <아바타>라는 두드러지는 변곡점을 거치며 ‘퍼포먼스 캡처’라고 이름까지 업그레이드되는 등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1968년에 만들어진 <혹성탈출>의 프리퀄이기를 자처한 2011년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모션 캡처 기술의 최첨단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 4월 WETA디지털은 팟캐스트를 통해 몇편의 모션 캡처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를 본 네티즌은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시각효과상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기껏해야 사람처럼 걷는 똑똑한 침팬지에 대한 영화에 시각효과상을 점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는 진짜 침팬지가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영화에 출연하는 영장류 모두가 모션 캡처를 바탕으로 완성된 컴퓨터그래픽이라는 것. 감독 루퍼트 와이어트는 처음부터 진짜 동물을 이용해 영화를 촬영할 생각이 없었다. 연기자에게 동물 코스튬을 입히는 아이디어도 배제했다. 동물학대로 이어질 수 있는 타협 자체를 지양하기 위한 이 결정에 대해 와이어트와 웨타 디지털은 처음부터 뜻을 맞추었지만 그 때문에 모션 캡처만 이용해서 실사와 똑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충이 따랐다. 그래서 모션 캡처 연기자들은 영장류의 구강구조를 닮은 의치를 끼우기도 했고, 팔이 길고 허리가 구부정한 특유의 자세를 만들기 위해 손에 짧은 목발을 짚는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시도됐다.
두 번째는 블루스크린 앞에서 특수의상을 입고 촬영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적외선으로 감응이 가능한 LED를 이용한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모션 캡처 연기자들은 블루스크린에서 벗어나 실제 세트장에서는 물론이고, 스튜디오 밖 현장에서도 실사 연기자들과 함께 촬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웨타 디지털의 조 레터리는 CG 처리 전후를 비교한 영상자료를 통해 새 시스템이 가져온 변화를 설명했다. 시저는 헤드기어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로 앤디 서키스의 얼굴 근육과 눈동자 등 미세한 움직임까지 포착해 사후작업에 반영했다. 영화에서 시저의 희로애락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면 그것은 몸의 움직임뿐 아니라 감정의 움직임까지도 포착하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앤디 서키스는 시저를 연기하기 위해 국제고릴라재단을 찾아 6주 동안 영장류, 특히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사람과 유사한 행동양식을 보여 유명해진 휴맨지(인간침팬지)라고 불린 ‘올리버’를 기록한 영상물을 교과서 삼아 시저의 움직임과 표정 등을 연구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경험한 새로운 방식에 대해 “블루스크린 위의 모션 캡처 연기자와 촬영장의 실사 연기자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을 없애주고, 둘 사이에 감정전달이 매끄러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호평하며, 앞으로 특별한 장비 없이 모션 캡처를 촬영하는 방식으로까지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