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 최고의 CG맨 장성호 [2] - 한국영화 CG의 현주소
2002-01-12
글 : 문석
사진 : 정진환
“컴퓨터그래픽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사람들은 한국영화의 CG가 할리우드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이냐, 따라잡으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의 답은 지금 상황으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술수준의 차이가 엄청나다. 때문에 우리가 현재 확보하고 있는 능력이라는 한계 안에서 그동안 활용되지 않은 것을 활용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수준이다. 기술적 발전을 위해선 결국 영화계가 CG분야의 연구· 개발에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받침이 있어야 하드웨어, 고가의 소프트웨어 등 인프라도 확충할 것이며, 할리우드처럼 한편의 영화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를 것이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해선 안된다. 한편의 영화에서 CG에 대한 예산은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 물론 여기에는 CG계의 책임도 있다. 초창기에 활동했던 선배들이 안 되는 것도 무조건 된다고 하고, 적은 돈으로도 일을 진행하다가 추가비용을 요구하곤 했으니 불신의 장벽이 쌓인 것은 당연하다. 오죽했으면 나도 ‘컴퓨터그래픽하는 놈은 다 사기꾼’이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은 적이 있을까.

하지만 무조건 예산을 깎으려고만 하다보면 CG의 질도 좋아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실력있는 인재들은 수익성이 높은 CF쪽으로 빠지게 된다. 사실 우리처럼 영화의 CG만을 전문분야로 삼다보면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 장비에다 인원까지 감당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만약 우리도 일부 인력과 장비를 CF에 활용하면 매출이 현재보다 몇배는 오를 것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곳에 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현실은 CG계와 다른 분야 영화 스탭들이 서로의 분야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작업 가운데 가장 힘들었고 가장 많은 시도를 통해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는 <화산고>도 애초 계획했던 것의 절반 정도만을 이뤄냈다. 촬영된 화면, 즉 기본적인 소스에다 플러스 알파를 넣는 것이 나의 임무였는데, 정작 촬영 화면에서 생긴 마이너스를 메우다보니 에너지가 소진돼버렸다. 예를 들어 화면 안에 스탭이나 장비가 버젓이 들어와 있거나 화면이 텅 비어 있거나 해서 그래픽으로 메워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독 이하 스탭들이 현장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모두 CG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국영화계는 ‘CG는 도깨비 방망이’라는 이상한 신화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훌륭한 아이디어를 발휘해 찍을 수 있었을 법한 장면도 지금은 CG로 단순히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CG 전문가가 영화적 맥락에 맞는 특수효과를 생각하고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CG로 만드는 데 적합한 장면을 구상한다면 이런 점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성호 이력

1970년 광주 출생

1990년 홍익대 미대 시각디자인학과 입학

1992년 복학, 컴퓨터그래픽 입문

1994년 <귀천도> CG슈퍼바이저

1995년 <박봉곤 가출사건> 참여

1997년 <일팔일팔> 참여

1998년 <퇴마록> <키스할까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참여

1999년 <해피엔드> <컷 런스 딥> <이재수의 난> CG슈퍼바이저

2000년 <행복한 장의사> <킬리만자로> <미인> <공동경비구역 JSA> <가위> <섬> CG슈퍼바이저. <반칙왕> 예고편

2001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양이를 부탁해> <와니와 준하> <화산고> CG슈퍼바이저. <눈물> <와니와 준하> <스물넷> <신라의 달밤> <피도 눈물도 없이> 예고편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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