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네트워크야말로 해답이다
2011-10-06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인터뷰

“하루에 트위터를 얼마나 하시나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섹션을 담당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에게라면 자동적으로 묻게 되는 질문이다. 그의 트위터엔 매일 아시아 감독의 최근근황부터 신예감독들의 소개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영화계의 새로운 소식이 포스팅 된다. 트위터만 팔로우해도 아시아 영화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셈이다. 영화제 스탭들에게도 유명한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트윗 삼매경에 대해 묻자, 그는 이 ‘작업’이 부산영화제의 미래에 얼마나 소중한 창구인지 강조한다.

“칸 국제영화제 같은 영화제가 주목받는 건 유구한 역사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부산영화제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는 무엇일까 고민해 봤다. SNS가 그 단초를 제공해줬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애플생태계와 비견될 만한 칸 중심의 생태계에 주목한다. “칸은 제작사, 배급사, 영화펀드가 견고하게 짜여 있다. 전 세계 영화인들과 신작들이 칸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네트워크야말로 좋은 프로그램과 내실 있는 영화제를 만드는 해답이다.” 실제로 그는 아시아영화인들의 팔로우로 촬영일정, 신작소식 등을 접하는 것이, 프로그래밍의 모토인 ‘발견’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이렇게 쌓아온 네트워크의 유용함은 올 영화제에서도 여실히 입증됐다. 일례로 카밀라 안디니 감독은 인도네시아 가린 누그로호 감독의 딸인데,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를 졸업한 스탭들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그의 작품 <거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의 제작에 참여했다. 다른 영화제의 초청에도 그들이 부산을 고집한 건, 해를 거듭할수록 네트워크를 넓혀가며 도약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올해 주목할 만한 아시아의 흐름은 바로 동남아시아와 인도영화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거빈더 싱 감독의 <눈 먼 말을 위한 동냥>과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망게쉬 하다왈레 감독의 <인디안 서커스>는 인도의 작가영화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확인케 해주는 작품들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영화의 에너지는 이제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의 확고한 밑바탕이 되어가고 있다. 더불어 자연재해로 고통을 겪은 일본의 경우, 제작이 지연되면서 출품이 부진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소노 시온, 이와이 슈운지, 야마시타 노부히로 등의 신작 등이 초청되어 문화적인 의지를 증명해내고 있다.

올 초청작 중 가장 첨예한 문제는 바로 정치적 탄압을 겪고 있는 이란의 상황이다. 얼마 전 와이드앵글 초청작인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의 공동연출자 모즈타바 미르타마스브 감독을 비롯해 이란 영화인들의 구속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니키 카리미 감독의 <마지막 휘슬>은 이란 정부로부터 프린트 반출 허가를 받지 못해 영화제 시작을 앞둔 현재까지 상영이 불투명한 상태이며, 감독 역시 출국금지 당했다. 칸과 베를린을 비롯한 유럽영화제에선 고통 받는 이란 감독의 상황을 꾸준히 언급했지만, 부산에선 반대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고 있다. “부산이 이란 영화인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에 대해 이란 영화인들과 꾸준히 상의해 왔다. 그리고 그들의 석방을 위한 이벤트를 하는 게 이란정부를 더 자극하는 것이라는 걸 절감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아시아 영화의 미래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절실함을, 그것이야말로 부산의 고민이자 역할임을 강조한다.

프로그래밍의 내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영화의 전당이 개관하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의 전당을 통해 비로소 부산생태계가 확립될 수 있는 단초가 생겼다고 전한다. 한국영화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좋은 작품을 발굴, 복원하여 아카이브를 만드는 일. 행사를 위한 컨퍼런스나 세미나가 아닌 아시아 영화의 ‘축’으로 기능할 포럼을 활성화하는 것도 새롭게 변화한 부산의 선결과제다. “말레이시아의 주목할 만한 감독 아미르 무하마드라가 말하더라. ‘말레이시아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다. 안 만들어 본 영화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라고. 바꾸어 말하자면, 종교와 문화 사회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아시아 지역은 장르영화든 예술영화든 전혀 새로운 영화가 나올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지역이다. 테디 소리앗마쟈 감독의 <사랑스런 남자>를 봐라. 트랜스젠더 아빠를 둔 무슬림 소녀라는 설정이다. 유럽에서라면 불가능할, 아시아적인 소재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아시아영화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정서와 색다른 기운들이야말로 그가 구상중인 거대한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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