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사랑>
리칭휘 | 대만 | 2011년 | 95분
필리핀은 해외 노동인구 수출 세계 2위 국가이며 그 규모는 국민의 1/10에 달한다. 이 수치 뒤에는 고독 속에 시든 젊음과 부서진 가족이 있다. <돈과 사랑>은 고국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대만 타이페이 노인 요양소에서 숙식하며 휴가없이 일하는 필리핀 여인들의 사연을 1998년부터 13년에 걸쳐 대만과 필리핀을 오가며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베이비, 롤리타, 마릴린…. 카메라는 향수병을 물리치고 인내심을 지탱하기 위해 가족사진 대신 차용증을 품고 생활하는 그녀들을 참을성있게 지켜본다. 10대 초반부터 무능한 남편을 만날 경우를 대비해 돈 버는 법을 어머니에게 배운 여자들에게 돈(money)과 사랑(honey)은 압운이 들어맞는 불가분의 단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일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이겠냐고 그녀들의 거친 손발은 반문한다. 그러나 신념이 외로움과 불안마저 잠재울 수는 없다. 정서적 갈증을 채우려는 여인들의 본능적 몸짓들은 아련하다. 온종일 실내에 갇혀 병든 노인의 수발을 드는 여성들은, 빨래더미에서 고향 뒷산을 떠올리고 꽃이 피지 않아 버려진 화초들을 주워와 물을 준다. 바깥공기가 그리워 일부러 밤거리에 나와 대걸레질을 하고 역시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죽음을 기다리는 이국 노인들에게 출구 잃은 애정을 쏟는다. 여인들은 오래 살고 싶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은 보수로 필요한 돈을 모으려면 아주 오랫동안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을 모래시계의 모래알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시퀀스는 적절하고 아름답다.
감독은 특히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서글픈 역설에 주목한다. 가족애로 객지의 고단한 삶을 선택했건만 긴 별거는 가족을 소원하게 만든다. 아이들의 입학식에도 어머니의 임종에도 가지 못하는 그녀들은 가족의 추억 속에 점점 부재하는 존재가 된다. 어느 순간에 이르면 감독은 객관적 기록자의 자리를 벗어나 여인들과 가족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자원한다. 필리핀의 가족은 그의 필름을 통해 아내와 엄마의 일상을 겨우 이해한다. 카메라와 대상의 관계가 영화 속에서 변화 발전하는 <돈과 사랑>은 애정에서 비롯된 작업(labour of love)이다. 13년 후 못다 이룬 꿈을 안고 장년에 접어든 여인들은 낙천적으로 위로한다. “우리는 서로 돌봐주면 돼.” 그‘우리’에는 린칭휘 감독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