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80년 이후 일본을 이끄는 전영풍운아들
2011-10-2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강태웅 옮김 / 소명출판 펴냄

저자의 시네필 지수 ★★★★★
정성스런 번역지수 ★★★★
읽고나서 일본영화 지식 증폭지수 ★★★★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의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는 이미 1993년에 “동아시아에서 활약하는 28명의 감독들을 열전의 형태로 다루어, <전영풍운>이라는 책을 상재한 적이 있다”. 한국, 중국, 타이완, 홍콩, 필리핀,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에 대한 감독론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영화사의 전반적인 개설과 북한의 영화 상황에 대한 논문을 덧붙였”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다음 요모타 이누히코는 외국의 친구들에게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당신은 동세대의 일본 감독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는가?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가 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월간지 <세카이>에 1997년 7월호부터 1998년 12월호에 걸쳐 <전영풍운, 일본 영화의 신예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이고 이후 대폭 수정 보완을 통해 1999년 일본에서 발간됐고 국내에도 올해 4월에 번역됐다.

요모타 이누히코의 집필 의도는 이같은 언급에서 분명해진다. “거장이라는 이름의 신화는 이제 역사적인 역할을 끝냈다. 나는 이제부터 1980년대 이후에 활약을 시작한 일본의 영화감독들에 대해 쓰려고 한다. 이는 간단히 말해 거장과 스튜디오 시스템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에 좀더 곤란한 조건하에서 데뷔하여, 몇번이고 좌절과 중단을 체험하면서도 래디컬한 문체를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던 시네아스트에 대한 비평적 이야기다.” 그러니까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가 떠나간 시대, 오시마 나기사와 이마무라 쇼헤이가 저물고 있는 시대에 이런 거장들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보다는 새롭게 난입하고 있는 신진 일본 감독들의 세계를 도전적으로 조망해보겠다는 반발의 의지가 이 책에서 강하게 엿보인다.

기타노 다케시, 최양일, 구로사와 기요시, 사카모토 준지(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그 결과 총 17명의 감독들이 선정됐다. 기타노 다케시, 이시이 소고, 쓰카모토 신야는 “폭력의 서정”, 다카미네 고, 최양일, 야마모토 마사시, 사카모토 준지는 “다원화하는 에스니시티”, 구로사와 기요시, 수오 마사유키, 오시이 마모루, 제제 다카히사는 “장르의 기억과 해방”, 이치카와 준, 반도 다마사부로는 “노스탤지어의 재검토”, 하라 가즈오, 하라 마사토, 와타나베 후미가, 가와세 나오미는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장으로 분류됐다. 저자는 그들에 관한 개별의 감독론 이전에 “1980년 이후의 일본영화”라는 집약적 영화사로 앞문을 열고 책 말미에는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감독들”이라는 제목의 짧은 감독 사전을 첨부했다. 나카타 히데오, 모리타 요시미쓰, 미야자키 하야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독들 중 몇몇 이름이 예상외로 본문에 선정되지 못하고 이 장에서 등장한다.

우리의 정보량이나 인식 차이에 따라 각각의 감독론은 읽는 재미가 약간씩 달라진다. 예컨대 기타노 다케시에 관한 감독론은 지금으로서는 크게 흥미롭지 않다. 이유는 여기 진술되어 있는 내용들이 2011년의 우리가 보기에는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의 성실한 집약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 다마사부로같이 아직도 낯설다고 말해야 하는 감독에 관한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다. 이 감독에 관한 전기적 사실과 개별 작품들을 따라 시기별로 읽어 내려가는 정통적 독법만으로도 충분히 힘있기 때문이다.

요모타 이누히코는 그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저명한 또 한명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와는 다른 영화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 같다. 그의 글에서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보여주는 식의 거의 황홀경에 가까운 집요한 모험과 역설의 논리적 쾌는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요모타 이누히코는 꼼꼼함과 성실함 그리고 박식함을 미덕으로 유려한 글쓰기를 해나간다. 해당 감독의 영화를 모험하기보다는 좀더 잘 이해되도록 평안하게 설명하려 노력한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거론하는 감독들은 신진들이지만 그의 글쓰기는 오히려 전통적인 감독론에 더 가깝다는 인상이다. 큰 장점이라면 글의 각각의 완성도가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점이다. 즉 각편이 꽉 차 있고 내밀하다는 것인데, 때문에 이 글들을 즐기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겹게 완독하는 것보다 한장씩 혹은 감독별로 책과 영화를 번갈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영화 보기와 영화 생각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강의이며 감독론이다.

사족처럼 몇 가지 질문들은 남기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것들이 생긴다. 첫 번째, 저자는 일본 감독들에 관한 이 책을 중국 감독 첸카이거에게 헌사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모르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우리 생각으로는 중요한 인물이 한명 빠져 있다. 본문의 17인 중에도 심지어 부록에 속하는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감독들”에도 그의 이름이 보이질 않는다. 왜 아오야마 신지는 배제된 것일까 (원래 연재물에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저자는 왜 ‘래디컬리즘’이라는 개념으로 이 신진감독들을 묶어냈는가. ‘미드나이트 아이’라는 일본영화 전문 웹진의 한 필자가 2008년에 요모타 이누히코를 인터뷰하며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그가 동문서답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딱히 답이 궁색했던 것 같다. 그가 말하는 래디컬리즘이란 그 어느 분명한 미학적 급진성이나 정치적 완강함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거장의 시대 이후에 들어선 ‘신진’감독들에 대한 강력하고 매력적인 응원의 표제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요리까지 잘 아는 시네필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는 사실 우리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사토 다다오, 하스미 시게히코 등 일본 영화평론가의 이름이 한국에도 이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실은 출판된 관련 저작의 수로 친다면 요모타 이누히코가 단연 선두인 것 같다. <일본영화의 이해>라는 비교적 가독성이 높은, 일본영화에 관한 영화사적 해설서는 이미 출간된 지 오래되었다. 그의 관심 분야 중 하나인 만화론에 입각한 <만화 원론>도 번역되어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공히 알려진 바로 그의 관심사는 여러 가지다. 그는 영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문학에 정통하고 심지어는 요리까지 관심을 둔다. 그에 관련해서 최근에 국내에서 발간된 유별난 책이 한권 있다. <라블레의 아이들>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다방면에 관심이 넘치는 한 평론가가 쓴 요리에 관한 이야기다. 롤랑 바르트의 덴푸라, 앤디 워홀의 캠밸 수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감잎 초밥 등에 관련한 이야기다. 요모타는 과거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 왜 먹었는지, 어떻게 해서 먹었는지 생각하고 말하고 요리해서 직접 먹어보면서 이 책을 썼다.

1953년에 태어났고 뼛속까지 시네필이며 박식한 문학자이고 기호학과 만화에 정통하기까지한 이 평론가는 도쿄대에서 학위를 취득한 뒤 각종 잡지에 심도 깊은 글을 쓰며 이름을 알렸고, 현재는 메이지가쿠 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영화사 및 비교문학을 가르치고 있고 한국을 비롯하여 각국에서도 초청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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