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그리고 60년대의 여성은 태어났다
2011-10-20
글 : 백은하 (10아시아 기자)
<오드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샘 왓슨 지음, 노지양 옮김 / 이봄 펴냄

홀리 골라이틀리와 캐리 브래드쇼의 도플갱어 지수 ★★★★
오드리 헵번의 쌩얼 지수 ★★★★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티파니에서 아침을> 관람자극 지수 ★★★★★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자는 64년의 인생을 카메라 앞에서 살았고, 한 여자는 스크린 위에서 2시간을 살았다. 그 여자들의 이름은 오드리 헵번과 홀리 골라이틀리다. 순수의 상징이자 “미국 딸들의 롤모델” 그리고 마침내 고결하게 삶을 마감한 헵번과 달리 50달러에 웃음을 팔고 책임감보다는 욕망과 본능에 의해 몸을 움직이는 골라 이틀리는 일견 극과 극의 캐릭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우 헵번은 골라이틀리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관습적인 기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영화 속 골라이틀리는 배우 헵번을 만나면서 그저 천박한 속물이 아닌 자신의 삶을 즐기는 싱글걸, 시대를 앞서는 여성 캐릭터로 사랑받을 수 있었다. 빌리 와일더가 말한 대로 “혼자 힘으로 풍만과 육감의 시대를 바꾸어버린” 셈이다. 그렇게 한 시대가 여성상을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여자들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연다. “1961년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전에는 나쁜 여자들만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는 전언대로 이 책은 여성들이 속박과 가식의 50년대를 박차고, 자유와 솔직함의 60년대로 진입하기까지의 기록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통로를 통해 마주한 두 여자는 함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인적없는 맨해튼 거리, 커피 한잔과 데니시 페스트리 그리고 티파니와 함께.

작가 샘 왓슨의 <오드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원제: FIFTH AVENUE, 5 A.M.)은 오드리 헵번이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인간으로 여자로 그리고 배우로 살아간 오드리 헵번이라는 씨실 위에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흥미로운 제작과정과 생생한 주변 인물들의 육성을 날실로 올린다. 이 책은 풍부한 인터뷰와 세밀한 자료조사, 전방위를 오가는 발품으로 완성된 사실적 기록인 동시에 재현이 불가능할 만큼 잘 구성된 드라마이기도 하다.

조심스럽고 차분한 성격을 지녔지만 절대적 부성 결핍으로 억압된 결혼 생활을 했던 여자 오드리 헵번과 “백조들”에 둘러싸인 사교계의 왕자로 보였지만 지독한 외로움과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원작자 트루먼 카포티, 가벼운 섹스코미디나 쓰는 작가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 시나리오작가 조지 액슬로드, 할리우드 모든 여배우들이 꿈꾸었지만 헵번에게서만은 선택받지 못했던 비운의 의상 담당자 이디스 헤드와 리틀 블랙 드레스(LBD)로 오드리 헵번의 솔메이트가 된 위베르 드 지방시까지 그 등장인물들의 드라마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잠시 언급되는 마릴린 먼로와 미키 루니 심지어 구로사와 아키라에 이르기까지 <오드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등장한 모든 인물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간다.

또한 골라이틀리를 비롯해 모든 출연진들의 캐스팅, 헨리 멘시니가 오드리 헵번의 음색에 가장 맞아떨어지는 <문 리버>을 만들기까지의 과정, “폴과 홀리는 절대 섹스를 할 수 없음”이라는 확고한 원칙을 가진 검열관과 시나리오의 한줄 한줄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을 거쳐 마침내 1960년 10월2일 일요일 새벽, 뉴욕 5번 애버뉴 727번지 앞에서의 첫 촬영이 시작되던 순간의 공기까지 디테일하게 잡아낸다. 그리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쏟아진 평들, 원작자 트루먼 카포티가 영화에 느낀 진짜 속내 역시 놓치지 않는다.

“오드리의 홀리 골라이틀리를 보면서 난생처음 글래머러스하고 와일드하며 판타지한 삶. 천진난만한 독립성과 성적인 자유가 있는 삶. 무엇보다 실제로 따라할 수 있고 지금 당장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판타지를 만났다.” <섹스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에 열광하고 위로받았던 세대들에게 ,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홀리 골라 이틀리를 만난다는 건 자신이 매혹된 진짜 근원과 마주하는 근사한 아침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