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작가영화의 계보를 잇는 감독 중 현재 가장 중요한 인물은 무랄리 나이르다. 1999년 데뷔작 <사좌>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이후 영국과 인도를 오가며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개의 날> (2001), <사마귀>(2003), <처녀염소>(2010) 등 그의 풍자영화는 우화를 바탕으로 현대 인도사회를 신랄하게 꼬집어왔다. 특히 그는 계급 차이로 생겨나는 부조리한 상황을 늘 다루어왔다.
그런 그가 최근 ‘영화를 통한 풍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를 통한 사회운동’으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Voice of Rural India’가 바로 그것이다. ‘변화를 위한 예술’(Art for Change) 재단의 지원을 받는 이 프로젝트는 가난한 농촌 여성들과 도시의 여성노동자에게 비디오카메라를 쥐어주고 그들에게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발언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이 필요한데, 무랄리 나이르는 기꺼이 이 길고도 어려운 작업에 뛰어들었다.
‘Voice of Rural India’는 그룹별로 10명의 수강생들에게 5일간의 교육과 촬영 교육을 한 다음 3일간의 후반작업을 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교육은 인도 전역의 각 지방에 있는 ‘LVRC’(Local Video Resource Centre)에서 이루어진다. LVRC는 우리나라의 시청자미디어센터와 유사한 기관으로, 각종 촬영과 편집장비를 보유,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우선 하이데라바드의 주빌리 힐스에 있는 코너하우스 갤러리에서 상영된다.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주도인 하이데라바드는 인도 IT산업의 중심지면서 텔루구어 영화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빌리 힐스는 하이데라바드에서도 영화산업의 중요 거점이다. 라마나이두 스튜디오, 파드말라야 스튜디오, 안나푸르나 스튜디오 등 대규모 스튜디오와 스파이어 필름 등 주요 제작사가 자리하고 하다. 이를테면 주빌리 힐스는 상업영화의 중심지지만 영화운동 차원의 행사에도 기꺼이 공간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RUAF재단이나 IWMI 등 농촌 재건을 돕는 여러 사회단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랄리 나이르는 여성들에게 쥐어주는 카메라에 “자활을 위한 도구”,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무랄리 나이르와 ‘변화를 위한 예술’ 재단은 1차로 5만여명의 여성을 교육시켜 그들에게 일상을 기록하게 하고, 더 나아가 작품을 만들게 할 계획이다.
이들의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Voice of Rural India’ 홈페이지를 만들고, 인터넷을 통한 작품의 세일즈, 그리고 TV에도 판권을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말하자면 5만명(혹은 그 이상)의 여성 VJ가 만들어내는 기록물과 단편영화들을 각종 미디어에 판매하여 수입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입은 다시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기금으로 운영될 것이다. 지난 1, 2년 사이에 인도에서는 갑자기 작가영화를 지향하는 젊은 감독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들 대부분은 분명 무랄리 나이르에게 일정 정도 빚을 지고 있다. 무랄리 나이르가 지난 10여년간 인도의 작가영화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그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