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이 웃는다. 그 웃음엔 외로움이 스며 있다. 공포물과 로맨틱코미디를 혼합한 <오싹한 연애>에서 여리(손예진)는 영화 자체의 장르가 뒤섞여 있듯이 감정이 복잡한 여자다. 그녀는 귀신을 본다. 매일 밤 귀신들이 그녀를 찾아온다. 그래서 외롭다. 여리에게 붙은 귀신은 그녀가 ‘살아 있는 귀신’처럼 살기를 바라며 여리의 주변인물을 괴롭힌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과 섞이기를 두려워하던 여리는 알코올의 힘을 빌려 비로소 해맑게 웃는다.
주사가 있긴 하지만 <오싹한 연애>에서 보여준 손예진의 눈웃음은 여전히 빛이 난다. 특히 남성 관객에게 그럴 것이다. TV드라마 <연애시대>의 은호와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인아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순전히 그 눈웃음 때문이다. 손예진을 손예진답게 만드는 이 미소를 보고 있으면 <오싹한 연애>는 처음부터 손예진을 위해 쓰인 영화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니까 심각한 표정의 사회부 기자를 연기한 TV드라마 <스포트라이트>보다 내숭없고 털털한 가구디자이너 박개인으로 출연한 <개인의 취향>이 그녀에게 더 잘 맞는 혹은 편한 옷처럼 보인다. “<무방비도시>에서 소매치기도 해봤고,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는 이중적인 캐릭터도 해봤어요. 어떤 게 나한테 잘 맞는지 안 맞는지는 팬들이 판단할 문제인 것 같아요. 아직도 <클래식>의 손예진을 좋아하는 분들은 제가 소매치기를 하든 뭘 하든, 그 이미지를 좋아하잖아요.” 손예진은 대중이 받아들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무리해서 깨려 도전하기보다는 작은 변화를 쌓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런 건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다른 것, 새로운 걸 드리고 싶다는 욕망이요. 그런 면에서 <오싹한 연애>가 내 몸에 잘 맞는지는 의문이에요. 오히려 여리는 연애를 한번도 못해본, 일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이지 않고 뭔가 신비에 갇힌 우울한 소녀 같은 느낌이거든요.”
소녀? 당연히 손예진은 어리지 않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손예진은 이제 서른이다. “저는 제 나이보다 많은 것을 해왔고 그게 익숙해요. <오싹한 연애>에서 오히려 다시 젊게 돌아가려니 관객 입장에서는 이혼도 하고 결혼도 몇번 한 캐릭터가 어떻게 저런 역할을…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손예진은 24살에서 26살 사이에 이미 이혼녀(<연애시대>)였고 결혼을 두번 한 여자(<아내가 결혼했다>)였으며 불륜을 저지르는 유부녀(<외출>)였다. 손예진 스스로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이 조금은 어색한 나이일 수는 있으나 <오싹한 연애>에서 손예진은 교복 입은 고등학생 여리도 연기한다. “촬영할 때 모니터를 확인하면서 ‘내게 저런 표정이 있었나, 그래도 아직은 조금 풋풋한가’ 이런 생각을 잠깐잠깐 하긴 했는데 조화가 잘됐는지는 영화를 봐야 알 것 같아요.”
인터뷰 당시 손예진은 편집이 완료된 <오싹한 연애>를 보지 못했다. 시사회를 일주일여 앞둔 그녀는 “초조한 상태”라고 말했다. “영화라는 게, 찍는 와중에는 마지막에 어떻게 완성될지 사실 배우도 정확하게 모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오는 약간의 두려움은 어떤 작품이든 다 있죠.” 손예진은 초조하다고 했으나 그 초조함이 아주 불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캐릭터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 길었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묻어난다. “여리 캐릭터 자체가 여주인공으로는 적합하지 않잖아요. 귀신을 본다, 우울하다, 어떤 슬픔을 갖고 있으되 로맨틱코미디에 맞는 발랄함도 있고 사랑스러움도 있어야 되고 엉뚱함도 있어야 되고…. 그 적절한 선을 찾는 게 가장 큰 숙제였고 촬영할 때도 많이 고민한 부분이에요.”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 손예진은 지금 교차점에 와 있다. 20대를 쉬지 않고 바쁘게 보냈다면 지금은 약간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손예진의 차기작인 재난영화 <타워>는 그런 의미에서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육체적으로 힘든데 정신적으로는 되게 좋아요. (웃음) 여러 명이 나오는 건 처음 찍어봤는데 되게 재밌더라고요.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던 게 그전엔 카메라가 항상 나만 비추고 있었거든요. 멜로든 코미디든 항상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잖아요. 섬세한 감정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남자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해서 현장을 즐기기에는 생각이 많은 편이었는데 <타워>는 아무 생각 없이 구르라면 구르고, 물에 빠지라고 하면 빠지면 돼요.” 숨고르기가 끝나면 손예진은 지난 10년과는 달라질 다음 10년을 보여줄 것이다. 30대로서 말이다. 성숙한 배우 손예진이 기대되지만 이것만은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그 웃음만은 변치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