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가 금색 잠자리 안경을 쓰고 돌아왔다. 그는 <퍼펙트 게임>에서 전설이 된 고(故) 최동원 감독을 연기했다. 어린 시절 야구선수를 꿈꾸었던 조승우에게 최동원으로 살아볼 수 있는 <퍼펙트 게임>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회사 대표님이 저 보라고 <퍼펙트 게임> 시나리오를 차에 놔두셨어요.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하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한 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시나리오를 다 읽었죠. 바로 결정했어요.” 부산 사투리를 구사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가 영화를 하면서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세 가지가 있어요. 양동근이랑 해보고 싶다, 손병호 선배와 한번 만나보고 싶다, 야구영화 해보고 싶다. <퍼펙트 게임>에서 그게 다 이뤄졌죠.”
<퍼펙트 게임>의 출연을 결정한 조승우는 시나리오 속 선동열을 보면서 자연스레 양동근을 떠올렸다. “시나리오에서 동근이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예요.” 조승우는 제작사에 양동근을 추천했고 제작사도 동의했다. 양동근을 수소문했지만 어쩐 일인지 쉽지 않았다. 데드라인이 정해졌다. 결국 조승우는 직접 발벗고 나섰다. “단체 메시지를 뿌렸어요. 정말 뜻밖의 인물에게 연락처를 받고 동근이에게 문자를 보냈죠. ‘양동근?’ ‘누구?’ ‘나, 조승우, 좋은 작품 있는데 이거 너밖에 할 사람 없어.’ 그게 데드라인 하루 전이었어요.” 다음날 바로 영화사 사무실에서 조승우와 양동근이 만났다. <퍼펙트 게임>이 모티브로 삼은 1987년 5월의 최동원과 선동열처럼 그들을 연기할 배우들도 꽤 극적으로 만났다.
극적인 만남은 또 있다. <퍼펙트 게임> 첫 촬영을 위해 조승우는 부산행 KTX에 올랐다. 열차 안에서 그는 우연히 롯데자이언츠의 조성환 선수를 만났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먼저 인사했어요. 저, 조승우라는 배우인데요. <나는 갈매기>라는 다큐영화에서도 뵀고, 제가 롯데자이언츠 팬입니다. <퍼펙트 게임>이라는 영화에서 최동원 감독 역할을 맡았어요.” 조성환 선수와의 우연한 만남은 지금도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승우는 자랑하듯 말한다. “형이 저 사회인 야구 한다니까 자신이 쓰던 글러브, 배트, 장갑, 점퍼, 다 보내줬어요.”
양동근, 조성환과의 만남은 조승우에게 <퍼펙트 게임>을 더욱 운명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조승우는 최동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된다. (비록 2010년 성적은 2패지만) 조승우는 현역 사회인 야구팀의 투수이고 동네 경비 아저씨와 틈만 나면 캐치볼을 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그러나 최동원은 너무나 거대한 산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롯데자이언츠의 극성 팬들이다. 대충했다가는 욕먹기 딱 좋다. 사실 쉬운 등산로가 있었다. <퍼펙트 게임>의 박희곤 감독, 야구 연출을 맡은 박민석 코치, 박희곤 감독이 생전에 만난 고 최동원 감독까지 “내 폼이 어렵고 다칠 수 있으니 특징만 살리라”고 말했다. 조승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동원 감독님 폼이 킥을 하면서 와인드업을 할 때는 여기까지 당겼다가 약간의 시간을 둔 뒤 갑자기 상체를 숙이면서 이걸로 차거든요. 또 이 발이 트위스트가 되거든요. 몸도 같이 틀어져요. 그 상태에서 팔이 꺾이고 다리가 일자로 펴지면서 무게중심이 뒤에 있다가 그 반동으로 때리듯이 나온단 말이에요. … 난 이걸 다 살리고 싶은 거죠.” 하루 70~80개 이상 투구를 하면 어깨가 빠질 듯이 아팠다. 조승우는 먹는 파스를 하루 두알 이상 복용하며 악바리처럼 최동원이 됐다. 심지어 포수의 사인을 보며 안경을 올리는 사소한 모습까지 연구했다. 직구를 던져 홈런을 맞은 선수에게 바로 또 칠 테면 쳐보라는 듯 그 직구를 다시 던지고야 마는 승부근성을 지닌 최동원과 조승우는 닮았다.
쉬운 길을 버리고 정공법을 택한 조승우는 힘들게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데 그 마운드는 최동원에게도 조승우에게도 고독한 곳이다. 한팀을 이끄는 투수, 한 작품을 이끄는 배우. <퍼펙트 게임>에서 조승우에게 가장 운명적인 지점은 바로 여기다.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고 혼자 만드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공통점이 있어요. 메인 배우에게는 가장 선두에 서서 뭔가를 해야 하고 잘해내야만 하는 압박감이나 부담감이 있어요. 뒤에서 다른 선수들이 지켜보는 마운드에 선 투수처럼요. 그 중압감, 부담감을 혼자 마인드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 고독하다고 느꼈어요.” 이 고독함이 12년차 배우 조승우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퍼펙트 게임>의 최동원이라는 운명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