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헌트가 돌아왔다. 러시아를 비롯해 인도 뭄바이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험난한 여정은 계속된다.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의 외벽을 90도로 매달려 질주하는 위험천만한 스턴트 장면을 대역과 특수효과 없이 직접 해낼 정도로 톰 크루즈의 욕심도 여전히 끝이 없다.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과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따돌리려는 듯 더욱 날렵해진 스피드로 각종 최신 장비들을 장착했다. 반갑게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톰 크루즈와 브래드 버드 감독, 그리고 새로운 요원 폴라 패튼이 한국을 찾았다. <씨네21> 사진팀이 ‘친절한 톰 아저씨’ 톰 크루즈의 하루를 쫓았고 기존의 시리즈에 색다른 감성을 불어넣은 브래드 버드와 폴라 패튼을 만나 영화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이하 <미션 임파서블4>)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요원은 바로 TV시리즈 <로스트>의 핵심 인물 ‘소이어’ 조시 할로웨이다. 3편을 연출하고 톰 크루즈와 함께 4편 제작에도 참여한 J. J. 에이브럼스의 존재가 짙게 느껴지면서 순간 헛갈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J. J. 에이브럼스가 시즌을 더해가면서 끝까지 살려두려 했던 남자 소이어가 작전 수행 도중 결국 죽는다. ‘어, 이건 뭐지?’라는 혼란 속에서도 이번 시리즈가 브래드 버드의 영화임을 잊어선 안된다. 거대한 성채 픽사에 용병으로 들어가 존 래세터와 함께 <인크레더블>(2004)을 작업하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았던 그에게 J. J. 에이브럼스나 톰 크루즈의 존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4>는 처음부터 끝까지 브래드 버드의 야심으로 충만한 첫 번째 실사영화다.
<미션 임파서블4>, 마치 <007> 시리즈처럼
<인크레더블>은 픽사의 작품 중에서도 유별났다. 픽사의 6번째 작품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꿈꾼 존 래세터가 데려온 ‘동창’이자 <아이언 자이언트>(1999)로 워너브러더스에서 상처받은 브래드 버드는 픽사에서 이방인과 같은 존재였다. 픽사 애니메이션은 보통 감독이 2, 3명이었고 작가들도 작업에 여럿 참여했지만 <인크레더블>의 감독과 작가는 모두 브래드 버드 한 사람이었다. 픽사에서 처음으로 인간 캐릭터만 등장한 작품이 바로 <인크레더블>로 그는 작품의 모든 공정에 꼼꼼하게 관여했는데, 데이비드 A. 프라이스의 <픽사 이야기>에 따르면 “심지어 스토리보드를 사용하는 데도 독단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크레더블>은 디즈니-픽사의 작품 중 오프닝 로고 화면이 뜰 때 기존에 쓰던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이 삽입된 첫 번째 작품이다. 결국 작품은 성공했고 그해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2D 장편애니메이션 부서를 없애기에 이르렀다.
<인크레더블>이 브래드 버드가 열광했던 1960년대 코믹스와 첩보영화에 대한 오마주였다면 오프닝부터 딘 마틴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미션 임파서블4> 역시 그러하다. <인크레더블>의 타이틀 시퀀스를 과거 히치콕의 파트너로 명성이 자자했던 솔 바스나 <007> 시리즈 중 무려 14편의 오프닝을 책임졌던 모리스 바인더 스타일로 만들고자 고집했던 사람이 바로 브래드 버드다. <미션 임파서블4>에 러시아의 크렘린궁이 등장하고 핵무기를 소재로 과거 냉전시대의 분위기를 한껏 풍기게 만든 것 역시 그런 의도에서다. <아이언 자이언트>에서도 원자폭탄에 관한 정부의 홍보 동영상을 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던 것처럼 그런 냉전시대의 추억은 <미션 임파서블4>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말하자면 브래드 버드는 <미션 임파서블4>를 마치 <007>의 새로운 시리즈처럼 만들었다. <007> 시리즈에서 늘 기상천외한 무기들을 발명해주던 ‘닥터 큐’를 스카우트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비밀병기가 등장한다. 손가락의 조그만 독침, 추락과 동시에 터져서 몸을 받쳐주는 거대한 쿠션, 눈을 2번 깜박이면 카메라 촬영을 하는 특수 콘택트렌즈, 사물의 외형을 그대로 투과시키는 거대한 위장막 등 이전 세편의 시리즈를 다 합쳐도 모자랄 만큼 많은 아이디어들이 속출한다. 알다시피 <007>의 가장 최근 시리즈인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에서는 처음으로 닥터 큐의 존재가 사라졌다. <007>의 팬인 브래드 버드로서는 닥터 큐가 없는 <007>은 더이상 <007>이 아니기에, 그를 대신 모시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유머와 액션의 조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이단 헌트(톰 크루즈)는 늘 정체불명의 송신기를 통해 임무를 전달받는다. “5초 뒤 자동 폭파됩니다. 작전 수행 도중 IMF 대원들이 체포당하거나 살해당할 시 미국 정부는 즉각 모든 것을 부인할 것입니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1편의 공중전화, 2편의 선글라스, 3편의 1회용 카메라 모두 폭발했다. 그런데 <미션 임파서블4>에서는 5초 뒤에도 폭발하지 않아 이단 헌트가 직접 주먹으로 쳐서 망가트린다. 그렇게 이번 시리즈는 진지한 가운데 첩보와 유머를 자연스레 엮는 소소한 디테일의 재미가 넘쳐난다. “내가 데리고 있던 요원 중 자네가 최고였네”라며 잡혀가는 이단 헌트에게 탈출방법을 우스꽝스레 알려주는 톰 윌킨슨은 1편의 존 보이트, 2편의 앤서니 홉킨스, 3편의 로렌스 피시번과 비교하자면 가장 정겹고 인간적인 국장이다.
<인크레더블>에서 오랜만에 슈퍼히어로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 미스터 인크레더블이 발사대 구멍에 똥배가 끼어 출격이 지체되고, 적진에 침투한 일라스티걸이 벽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고는 그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지 포즈를 취해보는 장면이 있다. J. J. 에이브럼스와 톰 크루즈가 <인크레더블>의 브래드 버드를 감독으로 데려온 이유도 아마 그런 재미와 생기를 불어넣어달라는 의도였을 거다. 물 떨어지는 소리로 경비를 유혹하고는 이단 헌트와 벤지 던(사이먼 페그)이 복도에 거대한 위장막을 만들어 접근하는, 그러면서 마치 무성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마임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단연 압권이다.
가장 중요한 전략: 1편으로의 회귀
이처럼 이전작들의 연장선과 새로운 돌파구 사이에서의 조화는 브래드 버드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무엇보다 공중곡예를 즐기는 이단 헌트의 취향은 그대로다. <미션 임파서블2>(2000)의 악당 앰브로즈(더그레이 스콧)는 이단 헌트의 침투 경로를 예상하며 “그는 사람들 마주치는 걸 워낙 싫어해서 절대 1층 입구로 들어오지 않을 거야. 병적으로 공중곡예에 집착하니까 분명 다른 곳으로 올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공중 태양열 굴뚝으로 40초 만에 잠입에 성공하는데, 1편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공중곡예를 즐긴 이래 암벽에 매달리거나 고층 빌딩에서 와이어, 혹은 특수 장갑을 이용해 적진에 침투하는 모습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만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다만 이번 시리즈에서 사지를 벌려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장면은 자신이 아닌 다른 요원 브랜트(제레미 레너)에게 넘겼다.
<미션 임파서블4>가 그런 경계 위에서 택한 중요한 전략은 바로 1편으로의 회귀다. 오프닝 크레딧에 이후 장면들을 슬쩍슬쩍 끼워넣어 마치 예고편처럼 보여주는 스타일이 1편과 같다. 또한 내부의 적이라는 설정도 유사하며 남자친구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제인 카터(폴라 패튼)의 모습은 1편에서 역시 남편 짐(존 보이트)을 잃은 클레어(에마뉘엘 베아르)를 떠올리게 한다. 벤지와 캐릭터가 겹쳐서 작전에 투입되지 못한 컴퓨터 천재 루더(빙 레임스)와 단둘이 맥주 한잔을 즐기는 라스트신의 한 장면도 1편의 마지막 그대로다. 톰 크루즈와 더불어 4편까지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시리즈에 헌신했던 빙 레임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물론 그 전략의 핵심은 이단 헌트가 연애질에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편에서 탠디 뉴튼에게 순정을 바치고 심지어 3편에서는 미셸 모나한과 조촐한 결혼식까지 올리면서 시리즈의 스피드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렇게 <미션 임파서블4>는 쉼없이 전력질주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단 이단 헌트가 홀로 두바이 시내를 질주하는 모래폭풍 장면은 아마도 올해의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본> <007>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모두에 참여해 액션 설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댄 브래들리가 이번 4편에 처음으로 참여한 것도 기억할 만한 일이다.
브래드 버드가 연출을 맡았던 <심슨 가족> 시즌1의 12화 <크러스티 체포되다>는 광대 크러스티가 누명을 쓰고 경찰에 체포되자, 바트 심슨이 몸소 그 누명을 풀어주는 에피소드다. 거대 로봇이 인간세계에서 고충을 겪는 <아이언 자이언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훨씬 전 시나리오를 썼던 <8번가의 기적>(1987)에서도 재개발 지역에서 부서진 집을 고치고 전기와 금속 등을 먹는 정체불명의 외계물체가 인간들과 함께 살아간다. ‘초인들이 느끼는 패배감’에서 출발했다는 <인크레더블>의 슈퍼히어로들도 평범한 인간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라따뚜이>(2007)의 생쥐 ‘레미’ 역시 인간세계의 요리사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쥐다. 그렇게 브래드 버드는 광대와 로봇, 그리고 슈퍼히어로와 생쥐의 몸을 빌려 늘 인간세계와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의 고독과 숙명을 그려왔다.
어쩌면 <미션 임파서블4>에서 기대했던 것도 IMF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단 헌트의 고독이었다. 아내를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라스트신의 쓸쓸한 정서도 거기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미션 임파서블4>는 그렇게 브래드 버드가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 따위는 관심없다는 듯 자신의 야심을 자유로이 펼쳐낸 영화다. 픽사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를 향한 실사영화의 러브콜이 물밀듯이 밀려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