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홈스, 최대의 적을 만나다
2011-12-29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셜록 홈즈> 그 두 번째 이야기 <그림자 게임> LA 현지보고

“‘<트랜스포머> 세대’를 위한 셜록 홈스.” <버라이어티>가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이하 <그림자 게임>)에 내놓은 촌평이다. 영국 감독 가이 리치의 인장이나 다름없는 슬로모션-패스트포워드의 액션신과 로봇의 자동차 변신장면에 환호하는 관객의 세대를 짐작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두뇌회전조차 액션장면으로 표현하는 가이 리치의 스타일과 더불어 셜록 홈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왓슨 박사(주드 로) 사이의 ‘브로맨스’(Brotherhood와 Romance의 합성어) 덕분에 원작 속 셜록 홈스의 이미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경스럽기 이를 데 없었을 전편은 전세계에서 5억2400만달러를 극장 수입으로 벌어들였다. 속편 제작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2011년 크리스마스 극장가를 겨냥해 <그림자 게임>으로 돌아왔다. 정의 구현보다는 수수께끼를 해결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에서 더 큰 희열을 느끼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홈스의 알려진 냉철함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만의 허랑함이 더해진 21세기 할리우드의 셜록 홈스와 홈스의 숙적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자레드 해리스)의 두뇌게임과 육탄전이 펼쳐진다.

영화의 배경은 1891년의 런던, 유럽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안개의 도시는 수상한 기운마저 감돈다. 고위 명사들을 겨냥한 폭탄테러사건, 인도 면화사업가를 나락에 떨어뜨린 스캔들, 중국 아편거래상의 죽음, 미국 철강왕의 죽음 등 쉽게 지나칠 수 없지만, 그 사이에서 연관성을 발견할 수도 없는 대형 사건들이 연일 신문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중이다. 언뜻 한점으로 결코 모이지 않을 것 같은 이 사건들을 주시하며 바라보는 이는 바로 셜록 홈스. 홈스의 혜안이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이 비극들을 통해 도달한 끝점에 있는 사람은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로, 지적인 면에서든 육체적인 면에서든 홈스의 능력에 필적하는 존재다. 둘은 서로의 능력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예의주시하고 있었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자신의 관심사와 일치하지 않으면 사건에 쉽사리 흥미를 갖지 않는 홈스가 유럽 대륙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제임스의 음모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제임스가 홈스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용했던 아이린 아들러(레이첼 맥애덤스)를 독살하면서부터다. 상대를 파악할 겸 제임스를 찾아간 홈스는 그 첫 만남에서 사건에 매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만난다. 제임스가 홈스에게 더 간섭했다가는 갓 결혼한 왓슨 부부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제임스를 제거하지 않고서 이 사건을 끝낼 방법은 없다.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지적 자극을 위해 사건을 선택해온 홈스가, 아이린을 위한 복수에 유일한 친구나 다름없는 왓슨과 그의 부인을 보호하려는 의지로 움직이게 된다. 괴짜 천재 명탐정에 그치지 않는 21세기 홈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다.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의 두뇌게임과 육탄전

<그림자 게임>은 단서를 발견하고, 그 단서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가면서 미스터리를 한겹씩 벗겨낸다는 점에서 전편보다 더 고전적인 방식으로 탐정수사물의 구조를 따른다. 단서와 단서를 잇는 과정이 충실하고, 비약이 적어 관객이 영화를 관람하다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런던의 시장통에서 마주친 아이린에게서 훔친 편지는 홈스를 집시 여인 심자(노미 라파스)에게 이끌고, 심자의 실종된 오빠가 보낸 편지와 편지지 뒷면에 그려진 그림 등은 일행을 다음 장소로 이끈다. 그렇게 홈스 일행은 런던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독일로, 또 스위스 등으로 무대를 옮기며 제임스의 거대한 음모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치밀하고 교묘한 제임스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홈스 일행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그리하여 홈스-왓슨-심자로 구성된 삼총사는 제임스가 계획해놓은 함정들을 피하며 단서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한다.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는, 중간에서 그만둘 수 있는 게임이 아니기에, 영화는 제임스를 추적하는 홈스 일행과, 그런 홈스 일행을 따돌리기 위해 제임스가 설치해놓은 함정, 그리고 그 함정들에서 탈출하고 다시 전진하는 홈스 일행을 따르는 이야기 구조를 반복한다.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수록 함정의 규모와 탈출의 난이도는 높아간다.

액션, 어드벤처, 미스터리, 수사물 등 복합 장르적 속성을 드러내는 <그림자 게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오락성이다. 다양한 로케이션에 어울리도록 준비된 액션장면은 <그림자 게임>이 보장하는 대표적인 오락 요소다. 왓슨의 총각파티를 위해 찾아간 고급 술집, 신혼여행을 떠나는 왓슨과 메리의 허니문을 위해 준비된 브라이튼행 열차, 독일의 공장과 숲, 스위스의 오페라 극장 등 특색있는 배경에 딱 맞게 준비된 액션장면들을 보면, 전편을 본 관객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가이 리치는 슬로모션과 속도감있는 액션신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관객이 반복적인 구조와 스타일을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총성과 포성 뒤 적막의 슬로모션이 번갈아 보여지는 독일 숲의 탈출장면은 <그림자 게임>에서 슬로모션이 결정적으로 사용되는 장면이자 영상미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이후에 대사관 파티에서 홈스와 제임스가 몇수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체스장면의 슬로모션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의 즐거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허허실실 조금은 불량한 셜록 홈스와 반듯하고 단정한 왓슨 사이의 우정 이상의 긴장은 전편에 이어 그대로다. 특히 왓슨의 결혼을 앞두고 미묘해진 둘의 관계는 제임스의 암살 시도가 더해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영화의 유머코드로 작용한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팔색조처럼 바뀌는 홈스의 코스튬도 볼거리를 더한다. 아이린과 옥신각신하는 전반부에서는 중국 상인으로 분장해 취권과 유사한 무술을 보여주고, 허니문을 떠난 왓슨 부부를 기차에서 구할 때는 푸른색 아이섀도에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드랙퀸으로 분한다. 집시 여인 심자와의 재회를 위해 집시 캠프로 들어가서는 집시처럼 옷을 입고, 제임스와 마지막 승부가 벌어지는 대사관 파티 장면에서는 말끔한 영국 신사로 변신한다.

<007>같은 프랜차이즈로의 성장도 점쳐져

미국에서 12월16일에 개봉하는 <그림자 게임>의 공개된 몇몇 영화평을 살펴보니,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충분한 연말용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호평을 내놓았다. 영국 영화잡지 <엠파이어>는 “속편의 자신감이란 이런 것. 더 커지고, 더 재미있어졌다”고 정리했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후반부로 갈수록 전편보다 나은 만듦새를 보인다는 점을 꼽으며,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로의 도약을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두고, <007> 같은 프랜차이즈로의 성장을 내다보는 시선도 있다. 문학적으로 유명한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영화마다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악당을 다루는 점이 유사하고, 각색할 에피소드들이 충분히 남아 있다는 점이 그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하지만 전편의 중요 캐릭터들인 아이린과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짧지만 굵은 역할로 출연시키고, 셜록 홈스의 형인 마이크 홈스 역할에 영국의 코미디 배우 스티븐 프라이를 등장시킴으로써, 전편과의 연결은 물론 원작과의 연결도 분명히 한 점은 이 시리즈가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2011년 12월3일, <그림자 게임>의 제작진과 출연진을 영화 개봉에 앞서 만났다. 가이 리치 감독,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의 부인이자 제작자인 수잔 다우니, 부부 작가팀인 미셸 멀로니와 키에란 멀로니,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 스웨덴판 <밀레니엄>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영어권 영화에는 처음으로 출연한 노미 라파스, 자레드 해리스 등이 함께한 시끌벅적하면서도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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