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제작 (주)케이퍼 필름 / 제공·배급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감독 최동훈
출연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임달화,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 이신제, 증국상
개봉 여름
5명의 한국인 도둑과 4명의 중국인 도둑이 의기투합해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다이아몬드를 훔친다. <도둑들>의 한줄 시놉시스에서 ‘다이아몬드’는 맥거핀일 가능성이 높다. 사기꾼과 도박꾼들이 한데 뒤엉켜 서로의 의지를 충돌시켰던 최동훈 감독의 전작들처럼 <도둑들> 또한 그가 창조해낸 도둑들의 기상천외한 캐릭터와 이들을 연기할 배우들의 매력이 더 궁금한 영화일 것이다. 영화에서 도둑질을 설계하는 건, 마카오 박(김윤석)이다. 마카오에서 하룻밤에 88억원을 땄다는 전설의 주인공인 그는 과거의 동료들에게 한탕을 제안한다. 뽀빠이(이정재)는 와이어 세팅 전문가로, 한때 보스였으나 자신을 배신했던 마카오 박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뽀빠이와 오랫동안 손을 맞춰온 미모의 금고털이인 팹시(김혜수) 또한 마카오 박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도둑질에 뛰어든다. 이들과 함께 팀을 결성한 나머지 세 도둑의 면면도 심상치가 않다. 빼어난 몸매를 지닌 애니콜(전지현)은 줄타기를 즐겨 하는 여자이고, 팀의 막내인 잠파노(김수현)는 그런 애니콜에게 지치지 않는 순정을 내비치는 어린 남자다. 4인의 도둑이 노동집약적 기술가라면 ‘씹던 껌’(김해숙)은 연기파 도둑이다. 마카오 박의 일당은 첸(임달화)이 이끄는 중국의 4인조 도둑과 손을 잡는다. 마카오 박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과거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 첸은 무조건 현찰만 챙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씹던 껌에 묘한 애정을 느끼면서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작들에 비해 훨씬 많은 인물을 끌어들인 <도둑들>은 그만큼 전작보다 더 많은 관계망과 캐릭터의 속내를 감추고 있다.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에는 (한탕을 하고 난 뒤의) 뿌듯함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랑과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절도판일 뿐이고 이들이 모여서 한탕하고 찢어져야 하는데, 잘 찢어지느냐 잘 못 찢어지느냐 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그는 <도둑들>에서 팀플레이 범죄영화의 원초적인 매력을 실험할 듯 보인다. “이야기의 구조에 관심이 많았던 예전과 달리 어렸을 때 읽었던 <삼총사>나 <보물섬>의 구성을 떠올리고 있다. 어떤 일이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과정이 가지는 고전적인 재미를 드러낼 생각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묘사할 도둑질은 어떤 모양새일까? 컴퓨터 해킹 등 각종 첨단장비가 이용되는 도둑질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감독은 이미 ‘월담이 기본’이라 말한 바 있다.
<타워>
제작 CJ E&M, 더타워픽쳐스 / 제공·배급 CJ E&M / 감독·각본 김지훈
출연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 김인권, 김성오 / 개봉 상반기
<타워>의 시작은 고층빌딩의 위험성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화려한 휴가>를 만들기 전,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본 김지훈 감독은 “소방차 사다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높이는 19층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의 고층에는 안전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타워>를 구상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이 재밌었다. 19층 이상의 한정된 공간에서 고립된 인간과 그들의 살아남으려는 의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불, 그리고 소방관의 열정 이런 게 재밌게 보일 것 같다.” 초고층 빌딩, 화재, 그리고 화염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등의 태그라인에서 존 길러민의 <타워링>을 연상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타워링>보다는 액션이 많고, <7광구>에 비해서는 인간의 이야기가 많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화재의 무대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초고층 쌍둥이빌딩이다. 각각의 사연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 사상 최악의 화재가 발생하고, 사람들은 불과 사투를 벌인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크게 3명이다. 인명 구조라는 사명감으로 누구보다 먼저 불 속으로 돌진하는 소방관 강영기(설경구), 빌딩에 입주한 레스토랑의 매니저이자 화재 상황에서도 차분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여자 서윤희(손예진), 그리고 빌딩의 시설물 관리팀장으로 강영기와 함께 화재 진압에 나서는 이대호(김상경) 등이다. 재난영화 이전에, 재난을 겪는 인간들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타워>는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와도 접점이 보이는 영화다. “기본적으로 나는 재난영화를 좋아한다. 자연재해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사투를 보고 싶어 하는 편이다. <타워>의 시나리오를 본 사람들이 <화려한 휴가>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하더라.” 인간의 사투보다는 괴물의 형체가 도드라졌던 <7광구>에 비해 <타워>가 김지훈 감독의 성정에 더욱 맞는 작품일 것이다. 그가 <7광구>에서 경험한 CG와 그린스크린이 이번에는 관객의 눈물샘에 제대로 불을 지를 듯 보인다.
+issue
한국의 블록버스터, 이대로 좋은가?
2011년의 한국영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대작영화를 쏟아냈다. <퀵> <고지전> <7광구> <최종병기 활> 등 여름에만 제작비 100억원대의 영화들이 4편이나 붙었고, 무엇보다 강제규 감독마저 신작 <마이웨이>를 만들어냈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현재 개봉 중인 <마이웨이>를 제외하고 볼 때, 대작의 풍모에 걸맞은 흥행을 기록한 영화는 <최종병기 활>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란 후회 섞인 분석이 곳곳에서 터져나왔고 제작 준비 중이던 또 다른 대작들의 투자가 잠정 연기됐다. 박광현 감독이 연출하고 조인성이 출연하기로 했던 <권법>의 제작 연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블록버스터 후폭풍은 2012년에도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영화의 대표 투자사 관계자들은 이미 ‘대마불패’의 기대감을 마음에서 지운 듯 보인다. 이들이 다시 되새기는 건 역시 “이야기의 완성도와 충분한 프로덕션”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이진훈 한국영화팀장은 “과거에는 큰 영화는 무조건 잘된다는 공식이 있었는데, 2011년 영화들을 보니 예산과 그에 맞는 내용과 완성도가 필수적이라는 당연한 공식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고 말한다. “A급 감독과 사건이 큰 소재, 그리고 제작비와 캐스팅 등의 패키징만을 가지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다.” NEW의 김형철 한국영화팀장 또한 “‘예산규모’와 ‘스타 캐스팅’을 넘어선 관객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탄탄한 이야기’에 맞춰 필요한 예산을 짜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등 ‘콘텐츠 중심’의 블록버스터 기획이 더욱 절실한 시점인 것 같다”고 말한다. 물론 2011년의 후폭풍 때문에 무조건 블록버스터를 피하는 상황이 연출될 조짐은 아니다. 감독 혹은 배우의 이름, 해외시장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의 캐치프레이즈에 더이상 현혹되지 않겠다는 다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