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 제왕의 첩>
제작 (주)황기성사단 /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감독 김대승
출연 조여정, 김동욱, 김민준 / 개봉 5월
<후궁: 제왕의 첩>에서 후궁은 단지 왕후마마의 근심거리가 아니다. 기존의 사극드라마가 왕과 왕후, 후궁의 삼각관계를 그렸다면 <후궁: 제왕의 첩>은 왕과 후궁, 그리고 후궁이 사랑한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다. 개국 공신들이 권력을 향한 암투를 벌이던 조선 초기. 비주류 무관의 딸로 태어난 신화연(조여정)은 딸을 통해 입신양명을 꿈꾸는 부모의 강요로 왕의 후궁이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며 사랑해온 남자 권유(김민준)가 있다. 화연은 즉위를 앞둔 성원대군(김동욱)의 후궁이 된 뒤에도, 권유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한다. 후궁이라는 처지와 마음이 향하는 곳 사이에서 갈등하던 화연은 점점 궁궐이라는 공간의 지형도를 익히게 된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단 권력을 가져야 한다. 의지와 상관없이 후궁이 된 화연은 어느새 권력을 향한 욕망을 좇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후궁: 제왕의 첩>은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의 신작이다. 그가 영화에서 묘사하려는 궁은 “남을 배려하거나 누군가의 의지가 될 법한 사람이 한명도 없는 곳”이다. 전작인 <혈의 누>에서 인간을 지옥으로 내모는 탐욕의 화두를 묘사한 김대승 감독은 이번에도 수많은 인물들을 권력욕으로 끓어넘치는 지옥으로 몰아붙일 계획이다. 에로틱 궁중사극으로 알려진 이 영화의 성적 에너지 또한 권력의 속성을 정쟁만이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확장시키는 부분이다. 거의 모든 전작에서 구축했던 플래시백을 활용한 시간의 운용과 미스터리는 <후궁: 제왕의 첩>에서도 적용된다. 또한 이 영화에도 전작들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중심 사건이 있으며 서로를 속이고, 속이는 걸 알면서 지켜보는 긴장이 있다. 금기된 사랑과 탐욕의 충돌이란 서사뿐만 아니라 권력을 향한 의지를 통해 서스펜스를 구현할 <후궁: 제왕의 첩>은 조선시대 말엽을 배경으로 한 <혈의 누>보다도 현재와 더 많은 지점을 공유할 듯 보인다.
<가비>
제작 (주)오션필름 제공 (주)트로피엔터테인먼트, (주)시네마서비스 / 배급 (주)시네마서비스 / 감독 장윤현
출연 주진모, 김소연, 박희순, 유선 / 개봉 3월
‘조선 최초’란 수식이 지닌 힘은 상당히 세다. 마지막 왕조시대가 온몸으로 겪은 개화의 흐름은 그 자체로 수많은 드라마를 품고 있다. 지난 몇년간, 등장한 팩션 소설들이 대부분 ‘조선 최초’의 무엇을 상상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접속> <텔미썸딩> <황진이>를 연출한 장윤현 감독의 신작 <가비>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를 내세운다. 그는 어쩌다 커피를 만들게 됐을까, 그가 만든 커피는 어떤 맛이었을까, 무엇보다 그는 누구를 위해 커피를 만들었을까.
<가비>의 원작은 김탁환 작가의 소설 <노서아 가비>다. ‘노서아 가비’(露西亞 加比)는 ‘러시아 커피’를 한자음으로 나타낸 말이다.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 황제(박희순)는 왕세자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다. 바로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시기다. 러시아 공사의 권유로 커피에 입문한 고종 황제는 매일 아침 ‘따냐’(김소연)가 내려주는 커피로 외로움과 불안함을 달랜다. 따냐는 러시아에서 유럽귀족에게 숲을 팔아치우던 사기꾼으로 또 다른 사기꾼인 일리치(주진모)와 함께 커피와 금괴를 훔치다 조선으로 잠입한 여자다. 따냐를 지키기 위해 함께 조선으로 온 일리치는 유창한 러시아 실력으로 역관이 되고 동시에 이중스파이로 활약한다. 하지만 따냐는 일리치의 연정을 알면서도 자신의 커피를 음미하는 고종을 바라본다. 한편, 한국계 일본인 사다코(유선)의 계략으로 이들은 고종을 암살하려는 일본의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조선 말기의 시대적 상황, 왕을 독살하려는 음모가 한데 엮인 <가비>는 품고 있는 장르 또한 다양하다. 한잔의 커피로 마음이 오가는 남녀의 멜로드라마이자 스파이들의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액션첩보물이고 이들을 둘러싼 거대한 미스터리가 있는 스릴러인 셈이다. <텔미썸딩>과 <썸> 등 장윤현 감독의 전작들이 지닌 장르적인 특징과 맞닿은 지점인 동시에 언제나 그 시대의 청춘남녀들을 그려온 그의 관심사를 녹여낼 수 있는 구도로 보인다. 물론 제목부터 ‘커피’를 내건 <가비>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고종이 즐겨 마신 커피의 맛이다. <가비>의 제작진은 실제 당시 조선에 없었던, 파리나 런던에서 유행한 스타일의 커피를 참조했다. 2012년 3월이면 <가비>가 상상한 조선 최초의 커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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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차이나 시대의 한국영화
현대경제연구소는 2012년 10대 글로벌 트렌드 중 하나로 ‘팍스차이나’(Pax China)를 꼽았다. 2012년을 맞아 중국이 경제, 군사력뿐만 아니라 IT기술과 문화, 예술 분야까지 전세계 패권국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시장을 넘보고 있는 한국영화계로서도 고민이 많은 전망일 것이다. 중국 극장시장의 총매출은 지난 2010년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한 1조6737억원을 기록하며 세계 6위로 성장해 한국영화시장의 규모를 추월했다. 현재 추세라면 5년 뒤에는 일본을 앞질러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 규모가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2011년의 경우, 중국시장에 걸린 한국영화들은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내놓았다. 지난 12월6일, 중국에서 개봉한 <7광구>는 개봉 첫주에만 약 37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원빈 주연의 <아저씨> 또한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7위에 올라 약 9억원의 수익을 기록했고, 한국만화영화 사상 최초로 중국에서 개봉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약 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헬로우 고스트>가 지난 11월24일, 중국 내 4천여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것도 눈여겨볼 만한 성과다. 2012년의 중국시장을 두드릴 영화들은 일단 2012년 3월 중국 개봉을 앞둔 <너는 펫>과 <마이웨이>다. 현재 중국 내 해외영화 개봉 편수는 한해 약 20편. <마이웨이>가 제작 초기부터 중국의 자본을 끌어들여 수입쿼터의 영향 없이 개봉한다면, <너는 펫>은 중국에서만 약 80만명 이상의 팬을 가진 장근석의 힘으로 개봉이 이뤄진 경우다. 2011년을 중국시장 공략 기반 구축의 해로 정했던 영화진흥위원회도 2012년을 맞이해 공동제작을 통해 한국영화 쿼터 진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공동제작뿐만 아니라 인력 교류, 한국 로케이션 영화 연간 15편 유치, 한국영화 5편 이상 중국 개봉 등이 목표다. 2012년의 성과가 한국영화의 다음 10년을 결정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