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피부> vs <얼굴 없는 눈>
영혼을 잃어버린 자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밝힌 대로 <내가 사는 피부> 속 베라의 가장 가까운 조상은 단연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 없는 눈>의 크리스티안느다. 물론 그가 작성한 베라의 계보는 그보다 훨씬 장황하다. 갈라테이아, 프로메테우스 같은 신화적 존재들과 <현기증>의 매들린, 프랑켄슈타인, 장 마레가 연기한 <팡토마>,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속 이르마 베프 같은 고전영화의 인물들이 리스트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그 명단에서 받은 인상으로 짐작건대 알모도바르는 일련의 고전영화들로부터 ‘가면’의 역사를 추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왠지 베라가 매일 입어야 하는 스킨 톤의 타이츠 슈트도 그들의 가면을 이어붙여 만든 것만 같다. 그들 중 크리스티안느와 베라는 가면 때문에 영혼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는다는 점에서 특히 닮았다. 알모도바르는 그런 의미에서 “피부는 다른 이들과 우리를 구별짓는 가장 최초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또 “피부는 영혼의 상태를 반영하지만 영혼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고도 했다. 그가 말한 ‘영혼 그 자체’를 뜻하는 신체의 일부는 아마 눈일 것이다. 크리스티안느와 베라의 눈은 소름 끼칠 정도로 깨끗한 피부 혹은 가면 아래서 끊임없이 두리번거린다.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그래서인지 프랑주가 택한 배우 줄리엣 메이니엘이나 알모도바르가 택한 엘레나 아나야는 크고 일렁이는 아름다운 두눈이 매혹적이다. 그 눈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타운> vs <폭풍 속으로>
기괴한 활력을 부르다
복면강도나 은행강도가 주인공인 영화는 많다. 하지만 수녀 가면을 쓴 <타운>의 더그(벤 애플렉) 일당은 그중에서도 캐스린 비글로가 1991년에 만든 <폭풍 속으로> 중 보디(패트릭 스웨이지)가 이끄는 은행강도단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벤 애플렉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하이스트 무비 베스트11에 <폭풍 속으로>를 뽑은 적이 있으며, 뽑을 때 “<타운>은 <폭풍 속으로>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그 일당과 보디 일당이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더그 일당이 동일한 수녀 가면을 착용하고 고함을 지르며 시종일관 심각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보디 일당은 미국 전 대통령들(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 리처드 닉슨, 린든 존슨)의 가면을 쓰고 발랄하게 은행으로 뛰어들어가 강도로서 즐길 수 있는 오후의 한때를 즐기는 느낌이다. 가면의 표정을 봐도 더그 일당의 수녀들은 거의 표정이 없는 반면 보디 일당의 미국 전 대통령들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항상 웃는 표정이다. 리더 격인 더그와 보디의 기질도 많이 다르다. 더그가 강도이면서 동시에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로서 혼란을 겪는 <히트>의 닐(로버트 드 니로)과 비슷하다면 보디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커녕 육체와 정신이 일치한 삶을 사는 광포한 야생 서퍼다. 그들의 가면은 겉과 속이 이토록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기괴한 활력이 가면에서 파생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