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이라고 해주세요. 지금 초심의 자세란 말이에요. (웃음)” 이나영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손사래를 친다. 10년 넘게 연기생활을 해왔으니 이제 중견 연기자가 아니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살인을 한 늑대개를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유하 감독의 스릴러영화 <하울링>에서 이나영은 차은영이라는 형사를 연기한다. 이나영은 <하울링>을 촬영하면서 스스로 여러 가지 도전 과제를 만들어냈다. 그 과제들을 수행하는 과정이 그녀가 말하는 ‘초심의 자세’다.
우선 이나영은 오토바이를 배워야 했다. “강력계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은영이라는 인물은 오토바이 순찰대에 있었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기본이었어요. 면허도 따야 했죠. 박정률, 주영민 무술감독에게 논두렁에서 650cc 오토바이를 배웠어요. (웃음)” 스쿠터도 타본 적 없는 이나영은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 때문에 <하울링>을 선택하기도 했다. “제가 그런 걸 좋아해서요. 하고 싶었던 거예요.”
오토바이와 더불어 이나영은 장르영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스릴러 장르의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도 이나영에겐 과제였다. 그녀는 이전에 형사를 연기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나영이 연기하는 형사라면 뭔가 다를 것 같다. “형사라는 직업을 부각하는 게 아니라 묻혀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굳이 가죽 점퍼나 야상을 입지 않으려고 했어요. 실제 여자 형사분들을 만나보니 그렇게 입기는 하는데요. 그런 식으로 형사 캐릭터와 좁혀지고 싶지 않았어요.” 이나영의 형사는 여형사 하면 떠오르는 터프한 느낌 혹은 이나영남자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그런 형사와는 결이 다르다.
캐릭터가 센 형사가 아니라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하울링>의 차은영도 방화범을 쫓다 불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늑골이 나가는 부상도 입는다. 꽤 고난도의 액션 연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려 보이는 이나영에게는 어려운 과제일 것 같은데 그녀는 의외로 액션보다는 감정 연기가 힘들었다고 말한다. “제가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액션을 원했기 때문인지 힘들다가 아니라 이것조차 녹록지 않구나, 디테일이 많구나 하고 알아갔어요. 오히려 감정신들이 어려웠어요.” 늑대개를 쫓는 과정에서 반혼수상태인 증인을 심문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깊이있는 감정이 요구됐다. 이나영은 유하 감독이 원했던 감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진짜 머리끝까지 다 담아서 이걸 이렇게 눌러서 표현해야 하는 감정이 많았어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설명을 더 들어보자. “눈에 힘을 줘도 안되고, 미간을 찌푸려서도 안되고, 눈물을 흘려서도 안되는, 폐부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꽉 짜여진 상태로 덤덤히 내놓아야 하는 연기”를 해내는 것이 이나영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 임무를 해나가면서 이나영은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내공이 쌓일까….’
이나영에게 <하울링>은 해야 할 이유가 많은 작품이다. 스스로 힘들게 다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다. “저를 딱 재정비하고 싶은… 힘들더라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었거든요.” 그렇다면 과연 <하울링>을 통해 이나영이라는 배우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얼마나 발전했을지는 모르겠고, 오히려 후퇴할 수도 있겠죠. 지금은 소화하는 단계예요. 뭔가를 배우고 싶었고 그 안에서 다져보고 싶었어요. 송강호 선배님이나 유하 감독님이 많이 알려주셨고 어지러울 정도로 배웠어요. (웃음)” 스스로 만든 과제를 수행한 이나영은 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작품을 할 때마다 솔직하려고 노력해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 원하는 게 뭘까. 자신에게 질문을 좀 많이 해요. 그런데 또 사람이 진짜 솔직할 수가 없어요. 자기 자신한테도. (웃음)” <하울링> 시나리오를 보며 ‘이건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는 그녀의 초심은 진짜였다. 이나영은 스스로에게 진짜 솔직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녀를 보는 우리는 이렇게 솔직한 배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렇게 예쁜 눈을 가진 배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