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주인공은 ‘루저’가 아닌 나와 닮은 누군가일 뿐
2012-02-23
글 : 이영진
알렉산더 페인 감독, 조지 클루니 인터뷰

동갑내기 알렉산더 페인과 조지 클루니의 첫 만남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사이드웨이> 출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두 사람은 긴 점심식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들의 도킹은 불발로 끝이 났다. 알렉산더 페인은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모르겠군”이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고, 조지 클루니는 “(당시에 알렉산더 페인을) 저주(하는) 인형을 만들어서 핀을 꽂아놨다”고 했다. 조지 클루니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이드웨이>에서 이루지 못한 감독과 배우의 인연을 <디센던트>에서 맺었으니 말이다.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조지 클루니_알렉산더 페인이 다시 만나자고 했다. 약 2년 전이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그가 대본을 보내겠다고 했다. 난 대본을 읽기도 전에 하겠다고 했다. 그때 아마 <아메리칸>을 촬영 중이었을 거다. 최상의 몸 상태였다. 그가 나를 보더니 “자넨 지금 지나치게 멋져 보여. 우리 영화에서는 그렇게 보이면 안돼”라고 했다. 망가지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알렉산더 페인_줄거리를 설명해주고 봄에 촬영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게 9월이었다. 11월쯤 대본을 보냈고 이듬해 3월에 촬영이 시작됐다. 촬영 전에 저 친구는 체중을 늘리고 머리도 길렀다.

-원작자도 조지 클루니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던데 같은 생각이었나.
=조지 클루니_내 머리 색깔 때문이라고는 하지 말게.

알렉산더 페인_잘 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일해본 사람들은 전부 그가 유쾌하고 기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실을 확인해볼 좋은 기회였다. 외모도 하와이인 혈통이 약간 섞인 것처럼 보이지 않나.

-시나리오를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
=조지 클루니_오랜만에 읽어본 최고의 대본이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예고편을 봐도 뭐라 설명하기가 힘든데 줄거리가 천천히 전개돼서다. 대본 역시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다만 읽는 순간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완전히 빠져든다.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냈나.
=조지 클루니_내가 열흘 먼저 촬영장에 도착했거나 하와이 후손들과 직접 어울렸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일을 대본이 전부 해줬다. 감독에게 도움을 얻을 때는 ‘이 배역을 어떤 수준으로 연기하고 싶은가?’라고 물을 때였다.

알렉산더 페인_감독은 연기를 판단하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가는가?’라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 감독의 일이다. 나는 세트장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일했다.

-맷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설명한다면.
=조지 클루니_<디센던트>는 50살 남자가 철 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맷은 뜻하지 않은 아내의 사고로 일상이 통째로 흔들리게 되고 그동안 피해온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그동안 주로 루저들의 삶을 다뤄왔는데.
=알렉산더 페인_나는 지금껏 ‘루저’라는 단어를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저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은 나 같거나 당신 같거나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 <자전거 도둑>은 그럼 뭐냐.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은?

-실제로 누군가의 죽음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있었나.
=조지 클루니_나와 무척 가까웠던 조지 삼촌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난 죽음을 앞둔 삼촌의 손을 잡고 있었다. 삼촌이 세상을 떠난 순간부터 내가 근본적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그전에는 내키지 않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잘되지도 않을 게 뻔한 여자들과도 사귀었다. 내가 삼촌의 손을 잡고 있을 때 삼촌은 계속 “낭비야, 낭비”라고 말했다. 죽음이 주는 교훈은 살아내라는 것이라고 느꼈다.

알렉산더 페인_죽음을 처음으로 인식한 건 키우던 고양이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었을 때다. 한 가지 인정하게 된 건 내가 사람보다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 더 많이 운다는 사실이었다. (웃음) 몇 십년 동안 자책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러더라. 애완견이 죽었을 때는 엄청 많이 울었는데 아내가 죽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라고.

-차기작은 뭔가.
=알렉산더 페인_몬태나에서 네브래스카까지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올해 5월부터 찍을 예정이다. 대니얼 클로의 그래픽 노블 <윌슨>도 준비 중인데 아마 내년 초엔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인터뷰 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일부 문답은 <필름 코멘트> <인디 와이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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