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톰 하디, 크리스 파인] 실존적 스파이와 플레이보이
2012-02-27
글 : 이주현
<디스 민즈 워>의 톰 하디와 크리스 파인
톰 하디, 크리스 파인(왼쪽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비밀요원들의 이름을 빌려 터크(톰 하디)와 프랭클린(크리스 파인)을 설명해보자. 맥지 감독은 <디스 민즈 워>를 “<오션스 일레븐>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를 만났을 때”라고 요약한 바 있다. “만약 세계여행을 함께 다닐 정도로 친한 두 친구, 이단 헌트와 제임스 본드가 크로아티아의 슈퍼모델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결국 한 여자 때문에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디스 민즈 워> 제작진의 최대 과제는 이단 헌트나 제임스 본드만큼 매력적인 두 남자배우를 캐스팅하는 일이었다.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 닉 놀테와 에디 머피,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의 조합은 클래식 버디무비의 패러다임이다.” 30대의 신선한 남자배우 조합이 필요했던 맥지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인셉션>의 임스, 톰 하디와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커크, 크리스 파인이었다. 맥지 감독은 “이 역할에 톰과 크리스 말고는 그 누구도 떠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크리스 파인이 연기하는 프랭클린은 멋있는 정장을 빼입고 스포츠카를 몰고 여자한테 수시로 작업을 거는 인물이다. “활기차고 즐거운, 제임스 본드의 14살짜리 동생”이라고 크리스 파인은 정리했는데, “전통적인 플레이보이들의 모습을 섞어놓은 캐릭터”라는 상대배우 톰 하디의 말이 어째 더 정확해 보인다. 톰 하디가 연기하는 터크는 “전 지구적으로 흥청망청하는” 프랭클린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톰 하디는 터크가 “스파이로서의 삶보다는 평범한 삶을 원하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크리스 파인의 해석에 따르면 “실존주의적 스파이”쯤 되겠다.

터크와 프랭클린을 설명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국적이다. 실제로 톰 하디는 영국 런던 태생이고, 크리스 파인은 미국 LA 태생이다. 영화에서도 그 국적을 그대로 따른다. 여기서 재밌는 유머가 하나 튀어나온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로렌(위즈 리더스푼)에게, 로렌의 친구가 그들의 단점을 말해보라고 부추긴다. “음… 프랭클린은 소녀처럼 조막손이고, 터크는 영국인이야.” 대화를 도청하던 터크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갸웃해하는 사이, 로렌의 친구가 비수를 꽂는 한마디를 던진다. “영국 남자들 거시기가 작다니까 무승부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 속 농담이다.

현실과 영화는 구분지을 필요가 있지만 두 배우에게서 캐릭터의 모습을 찾는 재미도 크다. 크리스 파인은 말한다. “영화에서처럼 한 여자를 두고 다툰 적은 없지만 만약 사랑에 빠졌다면, 라이벌이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이기려 들 것 같다. 팔씨름, 탁구, 가위바위보를 해서라도 말이다.” 여성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누가 더 잘할까. 크리스 파인은 톰 하디를 두고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고 무척 잘생긴 데다 화가 날 만큼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치켜세운 뒤 일격을 가한다. “하이힐을 신은 아름다운 여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남자로서, 나는 하이힐에 관해서는 내 몫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톰은 하이힐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거기에 나와 톰의 큰 차이가 있다.”

재밌는 건 여자에 관해 모든 것을 아는 톰 하디가 로맨틱코미디는 찍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워리어> <인셉션>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 등 그가 비중있게 출연한 작품 대부분은 무겁고 진지했다. 톰 하디는 “코미디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로맨틱코미디의 여왕과 함께 로맨틱코미디를 찍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감사할 일이다.” 크리스 파인은 <프린세스 다이어리2> <행운을 돌려줘> 같은 로맨스영화를 찍은 경험이 있지만 <디스 민즈 워>는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안겨줬다고 말한다. “매일매일 다른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 로맨틱코미디였다가 갑자기 진지하게 긴장을 끝까지 올려 액션을 펼쳐야 할 때가 온다. 그래서 슛 들어갈 때마다 적당한 톤을 찾는 게 어려웠다.”

두 배우가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방식도 사뭇 다르다. 톰 하디는 최근 어떻게 시간을 쪼개 쓰는지,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강의라도 듣고 싶을 만큼 큼직큼직한 작품을 잇따라 찍고 있다. 그는 7월 개봉예정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무려 <배트맨> 시리즈의 최강 악당 중 하나인 ‘베인’으로 출연한다. 또 존 힐콧 감독의 <웨티스트 카운티>,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4>, 알 카포네의 삶을 다룬 <Cisero> 등 차기작 목록이 줄줄이 이어진다. 반면 크리스 파인은 믿기 힘들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8개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 “내게 그 8개월은 그냥 쉬는 시간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탐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로 여행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고, 그리스에도 갔다. 배우의 직업 특성상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길어질 수도 있는데, 그럴 때 가능하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해 나를 채우려고 한다.” 물론 그를 스타로 만든 <스타트렉> 시리즈의 새로운 시퀄과 <웰컴 투 피플> 등으로 곧 돌아올 테니, 그의 ‘쉬는 시간’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당장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톰 하디와 크리스 파인 중 누구의 사랑을 응원하며 <디스 민즈 워>를 볼 것이냐다. 톰 하디 VS. 크리스 파인. 정말 어려운 승부이지 않은가.

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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