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고현정의 '쪽' - 유통기한을 넘어 숨쉬기
2012-03-01
글 : 김혜리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고현정, 조인성과 함께 타블로를 만나러 가다

“날 울렸어요.” 고현정은 좋은 음악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인사를 그렇게 했다. “죄송합니다.” 타블로는 귀기울여주어 감사하다는 답례를 그렇게 했다. 옆자리에서 못내 신나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훤칠한 청년은 배우 조인성이다. 참으로 그악스러웠던, 학벌을 겨냥한 시비를 치르고 이해할 만한 침묵의 시간 끝에 지난해 10월 발표된 타블로의 첫 솔로 앨범 ≪열꽃≫을 고현정에게 들려준 장본인이 조인성이었다. 왜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친구와 이슥하도록 수다를 떨다가 “참, 너 이 노래 한번 들어볼래?” 하며 이어폰을 건네, 요즘 하루에도 열번 넘게 돌려 듣는 음악을 전도해야 직성이 풀리는 날. 친구가 탄성을 지르며 공감을 표할 때의 조촐하지만 짜릿한 행복의 기운. 조인성은 그 유쾌한 흥분이 채 가시기 전에 고현정을 대신해, 언젠가 인사 나눈 인연이 있는 타블로에게 “우리 다같이 만날까요?” 조심스러운 초대를 타전했고 흔쾌한 승낙으로 세 사람의 회동은 성사됐다.

이제 와 말이지만 <씨네21>은 2011년 초여름의 며칠을 타블로와 함께 보냈다. <씨네21> 디지털 매거진 바이럴 필름을 연출한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당시 뭇사람들의 시선 밖에서 지내고 있던 타블로에게 도움을 청한 결과였다. 오달수 배우를 위한 랩 메이킹부터 그의 소관이 아니었던 강아지 연기 지도에 이르기까지, 녹음 스튜디오와 촬영현장에서 만난 타블로는 밝고 열심이었다. 엷게나마 그늘이 깃든 곳이라곤,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묘한 침착성을 유지했던 예의 잔잔한 그의 눈동자뿐이었다. 몇달 뒤 ≪열꽃≫을 들은 뒤에야 당시 그의 내면을 비로소 가늠할 수 있었다. 슬픔이 급기야 집이 될 지경으로 친숙해진 그의 마음을(<집>), 촬영 뒤풀이가 끝나고 귀가하는 택시 안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어루만졌을지를(<Airbag>). ≪열꽃≫은 “음악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힙합답지 못한 부족함이 나의 색깔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자평하는 타블로의 개성이 불의의 악조건과 맞닥뜨려 앞뒤 잴 겨를 없이 활짝 피워낸 붉은 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면(裏面)을 본 사람의 노래다. 가사가 토로하듯 숨쉬는 이유가 숨을 막는 재갈이 될 수 있음을, 사랑을 받는다고 갖는 게 아님을, 낚싯바늘은 피했으나 어차피 어항 안에 살고 있음을 알아버린 자의 쓸쓸함과 그것을 무릅쓴 희망을 적어 내려간 편지다. “때론 영화음악을 만들고 있는 마음이었어요.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비우고 싶은 장면들이 수두룩했던 시기라. 누가 영화음악으로 써준다면 고맙겠어요.”

진짜배기 멜로드라마에 민감하고, 세련된 형식에 담긴 에두르지 않은 진실을 선호하는 고현정이 타블로의 새 음악에 뜨겁게 감응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YG엔터테인먼트 작업실에서 진행된 그녀의 인터뷰는 힘든 시기를 통과한 동료 아티스트에 대한 격려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신의 음악에 위안받고 행복했다는 고백의 자리였고, ≪열꽃≫으로 인해 솟아난 감정이 식기 전에 쏟아내는 파티에 가까웠다. 고현정과 조인성은 8년째에 접어든 친분을 증명하는 호흡으로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고, ‘동업상련’(同業相憐)의 교감으로 흥겨워진 대화는 해질 무렵 타블로의 반려인 강혜정 배우의 합류로 웃음소리를 높였다. ≪열꽃≫의 마지막 트랙 <유통기한>은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 텅 빈 객석 앞에서 공회전하는 필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노래했지만, 네 사람은 실체 없는 세상의 통념이 그들에게 강요하는 두려움에 지지 않고 잘 사는 법을 명랑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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