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설렘, 기대, 조바심 그리고 큰 깨달음
2012-03-06
글 : 김중현 (영화감독)
<가시> 김중현 감독의 베를린국제영화제 참관기

총 5편의 한국영화가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다. 포럼부문에 초청된 김중현 감독의 <가시>가 이중 한편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채권자로부터 몸을 숨긴 엄마(길혜연) 때문에 아들 윤호(엄태구)가 혼자 남겨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균열이 생기는 가족을 그린 작품이다. <가시>의 베를린영화제 초청이 확정됐을 때 <씨네21>은 김중현 감독에게 참관기를 부탁했다.

2월9일

낮 12시.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 가까이 북서쪽 헬싱키로 향해 날아갔다. 함께 출발한 이진근 촬영감독과 박은지 PD, 그리고 단편경쟁에 초청된 <애드벌룬>의 이우정 감독, 배우 이민지씨는 오랜 비행과 낮으로 낮으로 이어지는 시차 때문인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헬싱키 공항에서 환승 비행기를 한 시간 반가량 기다린 뒤, 우리는 다시 베를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눈덮인 헬싱키 공항은 어느새 황홀한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을 펼쳐놓고 있었다. 이것이 북구의 공기일까.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1∼2분 남짓한 순간, 차갑지만 청량한 헬싱키의 공기는 피로했던 몸을 깨웠다. 그리고 피로함 때문에 잊었던 들끓음과 설렘이 다시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꿈같았다. 생각하는 모든 것이 백일몽 같던 시절이 있었다. 내게 영화는 백일몽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던 수많은 꿈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그 꿈자리 어느 구석에 있었던 모양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지지 않던 노을이 서서히 남물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우리는 베를린 상공을 날고 있었다.

2월10일

영화제 포럼 사무실에 있는 <가시> 포스터와 <가시> 엽서.

몸을 추스르고 영화제 배지를 받고 GV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베를린영화제 포럼 사무실을 찾아갔다. 벽돌같이 무거운 책자와 내 사진이 선명한 배지를 받자 슬슬 영화제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13일 프레스 시사를 시작으로 14일 공식 프리미어 상영, 17일을 제외한 5회 상영, 기자 시사를 제외한 4번의 일반 상영 모두 GV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포럼 관계자가 살짝 당황한 표정이다. 말을 해놓고 보니 나도 걱정은 된다. 워낙 말주변이 없고 말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스타일인데…. 첫 프리미어 시사는 연출자를 포함한 스탭도 표를 발권받아야 한단다. 발권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황금곰 로고와 그 옆에 새겨진 진하고 선명한 ‘kashi’. 진짜 여기서 상영하는구나.

2월11일

베를린 마켓에서 만난 영화진흥위원회 김의석(왼쪽에서 두 번째) 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마켓이 있는 ‘마틴 그루피우스 바우’를 찾았다. 부산국제영화제 때도 마켓에 가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 가지 못했다. 베를린영화제 마켓은 ‘마틴 그루피우스 바우’와 ‘메리어트 호텔’ 두 군데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웅장한 건축물의 규모도 규모지만 참여 업체 수도 어마어마했다. 마켓을 둘러보자 몇몇 익숙한 로고의 영화사가 보인다. 한참을 헤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부스를 찾았다. 마침 부스에 계시던 김의석 위원장님과 전찬일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두분께 막 인사를 하고 모니터를 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가시>의 예고편이 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민망하면서도 뿌듯한 감정.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괜히 한국에서 공수한 듯한 국산 봉지 커피를 만지작만지작거렸다.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 것도 같고.

저녁에는 김의석 위원장님께서 영화제에 초청된 감독과 배우, 스탭들에게 식사 자리를 마련하셨다. 이 자리에는 <바라나시>의 전규환 감독님과 최미애 PD님 그리고 배우 윤동환 선배가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참석하셨다(인천공항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셨는데 헬멧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들고 오셨단다. 윤동환 선배는 내내 헬멧을 착용하고 베를린 거리를 배회하셨다). 그리고 <마취>의 김석영 감독과 제작부로 참여한 친동생 김현선씨 그리고 <애드벌룬>의 이우정 감독, 배우 이민지씨와 정의영양이 참석했다. 한국 음식을 만나서 반갑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건 독일인 웨이트리스가 된장 뚝배기를 들고 오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먹는 한국 음식은 오히려 한국을 더 그립게 한다. 뭔가 아쉬운 느낌. 집밥이 그리워진다.

2월14일

공식 일반 상영 첫날. <가시>가 상영될 시네 스타 8관에 도착했을 때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사전 사운드 체크 때문에 텅 빈 극장으로 들어갔다. 극장의 규모와 시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마도 <가시>를 공개한 이후 가장 큰 스크리닝인 것 같다. 상영 전 간단한 감독 소개와 인사를 마치고 약속된 상영시간보다 10분 정도 지나 영화가 시작됐다. 커튼이 열리자 베를린영화제 공식 트레일러가 상영됐다. 그리고 암전. 몇개의 로고가 지나자 윤호와 세경이 사찰 계단을 내려온다. 팽팽하고 질긴 공기가 내 주변을 흐른다.

GV의 질문은 한국의 경제적 상황과 그로 인해 한국인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느냐, 그리고 한국식 의사소통 방법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특이했던 건 외국인 관객은 세경을 속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경이 윤호에게 아파트와 아우디를 요구해서 윤호가 일련의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세경이 원한 것은 윤호의 솔직한 마음이고 세경을 속물로 만든 건 오히려 윤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한 독일인 관객이 그럼 왜 세경은 윤호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때 이유를 말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머뭇거리던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로는 누구도 내게 왜 헤어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아마 세경도 그런 이유에서 말하지 않은 거다”라고 대답했다.

포럼 점심식사 자리에서 만난 필립 세프너(왼쪽) 감독.

포럼 점심식사 자리에서 만난 필립 셰프너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그는 내내 냉소가 가득 담긴 표정으로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작품은 1992년에 베를린에서 일어난 어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영화라고 했다.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 수줍었던지 처음으로 씩 웃는데 귀엽다. <가시>는 어떤 작품이냐고 묻기에 설명을 했다. 그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추가해서 설명했다. 그랬더니 계속 질문을 한다. 왜? 왜? 왜? 내가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웃으면서 다큐멘터리를 하다보니 집요해지고 질문이 많아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직업병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함부르크에서 살다가 베를린에 온 지 10년이 됐다고 했다. 그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젊은 예술가들이 많고 창조적인 도시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냐고 묻기에 수원에 산다고 했더니 어디냐고 물었고 설명하기 애매해서 서울과 가깝다고 했다. 대충 서울에 산다고 할걸. 첫인상과 달리 셰프너는 자상한 삼촌 같은 느낌. 언뜻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은 것도 같고.

2월15일

식사를 마치고 두 번째 상영이 있는 키노 아르세날 극장으로 갔다. 마치 작은 독립영화관 같은 분위기다. 첫 상영을 했던 시네 스타 8관의 3분의 1 정도의 규모다. 만석은 아니지만 많은 관객이 찾아주었다. 질문은 대체로 어제와 비슷했는데 가족 붕괴에 대한 질문과 한국에서 신성시되는 모성을 파괴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의도적으로 모성을 비틀거나 가족 붕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관객은 내가 한국의 사회문제와 균열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에 대한 내 답변은 이랬다. “나는 의도적으로 모성이라는 통념을 비틀려고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 불안한 감정을 소유한 부모가 많았을 뿐이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남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다만 어떤 개인이 어떻게든 살고자 하고, 버티고, 견디는 모습과 그리고 한 개인의 욕망을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몰랐던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망이 새롭게 보였던 거 같다.”

2월15일 저녁

김조광수(왼쪽) 대표와의 저녁식사.

김조광수 감독님과 저녁식사를 했다. 감독님은 첫 장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편집 중인데 6월로 예정되어 있는 퀴어영화제 초청 작품도 고르고 마켓에 나온 작품 중 수입할 만한 작품이 있나 둘러보려고 오셨다고 한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호프집에서 나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에 대해 넋두리를 했다. 이야기를 듣던 감독님은 내게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면 대체로 실패한다. 반면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관객과 소통이 되면 성공한다. 그런데 그게 우연히 되는 건 아니다. 힘들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 작품 정도 더 만들어라. 정말 어렵고 힘들겠지만. 그렇게 영화를 만들고 관객과 만나다보면 내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걸 개발하고 발전시키면 된다.” 돌이켜보면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그리고 여기 베를린까지 나는 내 이야기가 관객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지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때로는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하고 때로는 숨기고 싶어 전전긍긍했던, 아이처럼 내 마음 몰라준다고 징징거리는 꼴이라니. 그렇게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천박했을까. 그것이 모두 내게 보내는 신호들이었는데.

2월18일

마지막 GV라 그런지 마음이 차분했다. 연기 연출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어머니 희수 캐릭터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공식 행사가 끝나자 어떤 독일인 남자가 내게 다가와 <가시>가 한국에서 개봉을 하냐고 물었다. 3월8일에 개봉한다고 했더니 그가 축하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물었다. “개봉을 한다면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개봉하는가?” 나는 아쉽게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한참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너무 무거워서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올곧게 하려는 한국 감독이 많다.” 그가 위로하듯 내게 말했다.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관객이 미국 흥행작이나 가벼운 장르영화를 좋아한다. <가시>가 독일에서 개봉하게 된다면 아마도 독일 관객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다. 도대체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신념을 잃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어달라.” 그리고 뜨겁게 내 손을 잡았다.

나를 기다리던 또 다른 싱가포르 관객은 내게 말했다. “영화제를 보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베를린까지 왔다. <가시>를 보고 영화제에 온 보람을 얻었다. 내 여행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 울컥했다.

에필로그

함께 베를린에 간 영화 <마취> 상영 뒤 기념 촬영. <마취>의 김석영 감독, <애드벌룬>의 이후정 감독과 나(왼쪽부터).

수많은 비판도 있었고 과한 칭찬도 있었고 침묵도 있었다. 때로는 서운했고 때로는 허세를 부렸고 때로는 조바심을 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한국을 출발했을 때 느꼈던 설렘과 기대는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내가 기대했던 것은 화려한 그 무엇이었을 것이고 특정한 누군가의 관심이었을 것이다. 번지수를 잘못 찾고 헤매고 있다고 깨우쳐준 베를린에서 만난 모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사진 / 이진근 <가시>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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