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날 따라할 게 없어서 별걸 다 따라한다. 그래, 가수들 실컷 만나보렴.”
막역한 선배 배우 윤여정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은 꿋꿋이 다시 음악인을 맞은편 소파에 청했다. 지난해 11월 솔로 6집 《KimdongYULE》을 발표한 김동률이 그녀의 초대를 수락했다. 두 사람의 일정을 맞추고 자리를 준비하는 며칠 동안 1994년 ‘전람회’ 1집부터 차곡차곡 쌓인 김동률의 음악으로 양쪽 귀를 푹 감싸고 겨울 거리를 걸어다녔다. 우단 같은 목소리가 손바닥으로 쓸면 이리로 일어나고 저리로 누우며 다른 색을 냈다. <해변의 여인>을 찍을 무렵 홍상수 감독이 고현정을 가리켜 감정의 다발이 두터운 배우라고 묘사했던 말이 불쑥 기억났다. 어딘지 비슷한 ‘촉감’이다.
간혹 김동률의 노래는 혼자 부르는데도 합창처럼 들린다. 도타운 음색 때문인지 오페라적인 전개 덕분인지, 목소리만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루고 뮤지컬의 한 장(章)을 머릿속에 연출하는 극적인 데가 있다. 연기가 내내 잔잔히 흐르기보다는 “반전이든 감정이든 뭐 하나 확실한 것이 딱 있기를” 바라는 고현정이 그의 음악을 꾸준히 애청해왔다는 사실은 그래서 자연스럽다고 여겨졌다. 더불어 두 사람은 정작 땅 밑을 흐르던 물이 분출하고 불꽃이 작렬하는 순간에 다다르기까지 포석이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각자의 분야에서 간파하고 있다. 자리를 함께한 횟수는 많지 않으나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김동률은 “그냥 흘려듣고 정보 몇개로 제 앞에서 당신 음악 알아요, 라고 인사치레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귀기울여 들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라고 고현정의 인상을 말했다. 그렇지만 “김동률씨는 왜 이렇게 있어 보여요?”라는 고현정 특유의 직설적 감탄에는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고현정은 승복하지 않는다. “자기 몸통으로 소리를 내는 일인데 그걸 어떻게 가려요? 본인이 있어 보이고 싶은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죠.”
김동률과 고현정은 똑같이 물고기자리에 태어난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책임감을 몽고반점처럼 지닌 맏이이기도 하다. 표출하는 형태는 다르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따라서 타인에게도 같은 행동을 기대한다. 《KimdongYULE》 앨범을 둘러싼 이야기로 집중력을 높여가던 대화는 창작과 표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윤리’에 관한 공감으로 흘렀다. 고현정은 누군가가 실수를 범하고 바로잡는 일보다 변명을 서두를 때, 작은 일을 해놓고 크게 생색낼 때 현장의 흥이 깨진다고 토로했다. 한편 김동률의 엄격함은, 무엇보다 성실한 준비의 힘을 신뢰하고 견고히 짜인 체계 안에서 임의로운 해석을 할 때 비로소 음악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과 취향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벗해온 피아노를 각별히 사랑하는 까닭도, 다른 악기에 비해 표현의 스펙트럼이 제한된 가운데 독창적 해석을 가하는 작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는 공연 연습 보름 전에 완벽한 악보와 음원을 모두에게 보내고 그날그날 연습할 곡목까지 전달해요. 가뜩이나 짧은 기간에 낯선 사람끼리 모여 제 음악을 저의 머릿속에 정한 완성도까지 구축해야 하므로 낭비의 가능성을 최대한 제거해두고 싶거든요. 제 딴엔 배려인데 숨 막히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고현정이 곧장 끄덕이며 매섭게 지적한다. “소라도 잡을 듯 시작해서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인 것이 대부분 우리네 작업의 실상인데 갑자기 앞뒤가 맞으니 당황하는 걸 수도 있죠.” 이날 옆자리에서 얻은 교훈은 심플했다. 취중진담(醉中眞談)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가능하다.
고현정_새 앨범 《KimdongYULE》(YULE은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고어다.-편집자) 열심히 들어봤어요. 제가 크리스마스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앨범을 만들다보니 우연히 시기적으로 맞은 건가요? 처음부터 크리스마스 컨셉 앨범을 계획한 건가요?
김동률_일반적인 캐럴 음반이 아닌 크리스마스 음악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십수년 전부터 곡을 모으고 새로 쓰기도 했어요. 또 하나의 의도는 제가 20대였던 90년대에 대한 향수를 담는 거였어요. 크리스마스 컨셉을 빌려 90년대 스타일의 음악을 해보고 싶었던 거죠. 겨울이고 크리스마스라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니까.
고현정_저 역시 그 세대라서인지 이승환씨의 <크리스마스에는> 같은 곡이 캐럴처럼 들리곤 해요. 그래서 비슷한 느낌일까 열심히 들어봤는데 역시 김동률은 김동률이었어!
김동률_(웃음) 무슨 뜻이에요?
고현정_찬란하게 슬픈 느낌? 동률씨 목소리를 들으면 신성한 분위기가 돼요. 좀 웃긴 표현이지만 만약 우리나라 가수 중 신 앞에 가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면 당연 김동률을 데려가야지, 하는 생각이 있어요. (좌중 폭소)
김동률_기본적으로는 큰 칭찬이라 감사한데 배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좀더 목소리가 도화지 같다면 음악에 맞춰 선입견없이 감성을 표현하고 확확 변할 수 있으니 좋을 텐데 하는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목소리만 듣고도 “아, 그 사람 신곡이 나왔네”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음성을 가진 건 역시 중요하고 감사한 일이죠.
고현정_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동률_음이 높은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많이 질러야 하잖아요? 한데 지르는 감정이란 굉장히 다이렉트하기 마련이라 청자에게 세뇌까진 아니어도 “나 지금 지르니까 울어요”라고 사인을 보내는 면이 있어요. 저는 그 절정에 이르기까지 앞부분의 표현이 가수마다 다양할 수 있고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지르는 노래보다 김민기 선생님의 <봉우리>나 제이미 컬럼의 <그랜 토리노> 주제가 같은 곡을 들을 때 눈물이 차올라요. 연륜과 해탈, 모든 것을 감싸안는 느낌이 아무래도 굵은 목소리가 갖는 힘이겠죠.
고현정_그런데 이번 앨범을 주의깊게 듣다보니 못 듣던 발성을 시도한 대목도 있던데요. 깜짝 놀랐어요.
김동률_물론 저도 나름대로는 곡마다 어울리는 창법을 시도하죠. 프로듀서적 입장에서 보컬인 자신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귀기울여 들어주시는 분들은 알아차리지만, 단순히 “김동률이 부르면 다 슬프다”라는 관점을 가진 분들은 모르고 넘어가죠.
고현정_김동률씨 목소리는 원래부터 굵었나요?
김동률_변성기 이후로는. 변성이 오기 전엔 낭랑했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 별명이 남궁옥분이었어요. (좌중 폭소)
고현정_음악을 만들고 녹음하는 순서가 궁금해요.
김동률_노래는 거의 마지막에 불러요. 요즘 아이돌 가수들은 그 순서를 역행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가사도 반주가 거의 완성이 될 즈음에 써요. (고현정이 놀라자) 물론 내 곡이니 처음부터 어떤 이야기가 될 거라는 윤곽은 있지만, 편곡이 하나하나 입혀지면서 막연했던 내용이 세부적 형태를 갖춰가고 그제야 비로소 이런 가사를 쓸 수밖에 없다고 좁혀져요. 여전히 음악은 가사와 멜로디가 제일 중요하다고는 믿지만 편곡이란 것이 묘해서 어떤 그림을 입느냐에 따라 감정의 온도가 달라지거든요. 예컨대 음악인들 표현으로 ‘웨트’(wet)하게 한다고 리버브를 많이 넣을 수도 있고 바로 옆에서 부르는 것처럼 소박하게 할 수도 있죠. 가사도 그런 사운드 컨셉에 따라 편곡이 화려하면 스케일있는 가사가, 어떤 음향에는 내면적 이야기가 어울려요.
고현정_어떤 가사를 쓸 때 확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나요? 가사를 쓸 때 버릇이 있나요? 한곳에서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집에서 안 나온다거나?
김동률_계속 데모를 들으면서 흥얼거리며 무아지경으로 마루를 빙빙 돌아요. 그래서 집에 반드시 거실이 있어야 하죠. (웃음) 어떤 사람들은 카페나 야외에서 가사를 쓴다는데 전 그렇게 안돼요. 가사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 직접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입장이니까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어감도 중요하거든요. 이를테면 어떤 발음이 붙느냐에 따라 고음을 잘 부를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지죠. 베란다 프로젝트 앨범에는 삼바풍의 곡이 있었는데 데모 단계에서 흥얼거린 어감에서 나온 극적 재미가 중요했어요. 그러니까 뱅뱅 돌면서 부르며 확인해봐야 하는 거예요. 때로는 난데없이 한 단어가 확 튀어나오고 그걸 중심으로 가사가 지어지기도 해요. 《KimdongYULE》의 타이틀곡 <Replay>에서 “와르르 무너질까”라는 대목이 그런 예예요. 의견이 분분해요. 좋다는 사람, 촌스럽다는 사람.
고현정_전 너무 좋던데요. 서두에 이번 앨범이 90년대 음악 양식을 재현했다고 했는데 김동률씨한테 90년대는 어떤 시기로 기억돼나요?
김동률_여러 가지로 황금시대여서 붕 들떠 있었던 것 같아요. 90년대에는 음악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음악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런 시도는 어떨까 상의하기도 하고 서로의 앨범에서 솔깃한 부분을 어떻게 만들었나 묻기도 하고 칭찬도 했어요. 이 친구가 다음에는 어떤 음악으로 나를 놀라게 해줄까 하는 기대도 컸어요. 지금은 상대적으로 그런 대화가 많이 줄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