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김옥빈] 사람이 그리워요
2012-03-26
글 : 이화정
김옥빈

“동화는 옥빈이다.” <시체가 돌아왔다>의 반항기 가득한 소녀 동화를 두고, 제작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곧장 김옥빈을 떠올렸다고 한다. 데뷔작 <여고괴담> 때부터 김옥빈과 작업했던 그의 말을 듣노라면 정말 동화는 옥빈이 되는 공식이 명쾌해진다. 이른바 ‘뼛속까지 다크’하다는 이 소녀는 떼인 아르바이트비 78만7천원을 받아내기 위해 편의점 사장의 결혼식장을 찾아가 주례 옆에 선 채 압박을 가하는 행동파이자, 잘해주는 남자에겐 대뜸 “아저씨, 나 좋아해요?”라고 물어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저돌적 캐릭터다. 동화에 김옥빈을 포개본다. 합기도와 태권도 연마자, IQ 141로 대본을 단숨에 암기하고, 컴퓨터 같은 테크쪽에 능통하다는 예의 그 믿기지 않는 ‘초’능력들. 이 비범한 능력으로 인기를 유지하기는커녕 자유자재의 발언으로 일시에 비호감이 되기 일쑤인 그녀다.

“동화의 모습에 되레 애착이 가고 정이 느껴졌어요.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이기도 하고. 그래서 낯설지 않았어요. 저 정말 좀 그렇게 살았어요. (웃음) 그런 아이들이 독특한 차림을 하는 것도 반항심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해요.” 동화의 반항심을 표현한 건 단연 핑크색 짧은 단발머리다. 촬영이 있던 지난여름 내내 김옥빈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었던 그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말이다. “감독님이 어느 날 <이터널 선샤인>의 케이트 윈슬럿 이미지를 가지고 오셨어요. 이런 걸 할 수 있겠냐고.” 핑크색 머리가 나오는 공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8∼9차례 탈색을 해야 했다. 그런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촬영 기간 동안 그 컬러를 유지하자면 3일에 한번은 매니큐어를 해야 했다. “직접 머리에 약을 바르고 관리했어요. 일종의 셀프 매니큐어죠.” 시체를 훔치고, 시체가 사라지고, 시체를 쫓는 막강한 해프닝의 연속에서 동화의 반항기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고 사건을 추진한다. “동화를 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제 나이를 찾은 것 같아요.”

김옥빈은 <시체가 돌아왔다> 같은 소동극을 두고 “귀여운 영화예요!” 하고 사랑스럽게 표현하는 여자다. 지난해 <고지전>에서 맡은 작은 역할인 ‘2초’도, 그리고 <다세포소녀> 이후 <여배우들>과 올해 옴니버스영화 <시네노트>로 함께하는 이재용 감독과의 독특한 작업도 모두 그녀에겐 즐거운 작업이다. “제가 즐거운 일을 하려고 해요. 작품을 선택할 때 똑같은 작품도 어떤 날은 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기 싫기도 해요. 그런 나이, 그런 마음, 그런 계절, 그런 상태가 있어요.” 이 모호한 기준 탓일까. 김옥빈의 작품 생산량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또래 배우들이, 영화를 하지 않을 땐 드라마로 인기를 축적하고 영화에 적용하는 전례화된 과정에서 김옥빈은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있다. “1년에 한 작품 정도 했어요. 여태까지는 느긋했는데, 문득 돌아보니 제 필모그래피가 너무 없는 거예요. 영화인이라고 하기에 좀 무색할 정도로. 다른 선배들을 보면 부럽죠. 저도 제 이름의 DVD 컬렉션도 갖고 싶고, 좋은 감독, 배우들을 많이 만나고 싶고 그래요.”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그녀는 요즘 들어 부쩍 외롭다.

“사람이 그리워요.” 이 외로움의 치료책이 한 가지라니, 반갑다. 배우로서 그녀가 더 많은 다짐을 하고 행동하는 시기라는 뜻이 될 테니 말이다. 선택마다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들쭉날쭉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박쥐> 이후 그녀의 선택은 늘 ‘배우로서의 떳떳함’이었다. “사람들 모두 제가 그런 역할을 하니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컸던 것 같아요. 스스로는, 아 이제 내가 진짜 배우가 됐구나 하는 마음이, 안정이 들더라고요. 모든 게 명쾌해졌죠. 나에게 믿음이 생기니까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달랐다. “연기하면서 항상 저 스스로 자질을 의심했어요. 신인이었고 스타성을 위해서 원하지 않는 작품에 출연해야 하니까요. MC를 하고, 연예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면서 고민도 많았고 반항도 많이 했어요. 다들 즐기라고 하는데 내성적인 탓에 그것도 힘들었어요. 배우가 되는 것과 연예인이 되는 건 다른 일이잖아요.” 따지고 보면 연기는 늘 그녀에게 잡히지 않는 무엇이었다. “신기하게도 전 초·중·고 모두 연극반이었는데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어요.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친구들에겐 꿈이 경찰이 되는 거라고 했어요. 마음속으론 배우가 되고 싶으면서 말이죠.” 배우가 되고 싶은 걸 도대체 언제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걸까. 되짚어 올라가던 와중에 김옥빈이 말한다. “이건 정말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데요. 누구도 저한테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어릴 때 엄마 아빠가 홍콩영화를 무지 좋아하셨어요. 여섯살 때인가 TV에서 장만옥과 임청하가 나오는 걸 보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될 거야!’라고 결심했어요. 어린 눈에 하늘하늘한 것이 아른거리는데 브라운관 앞에 가서 화면을 만지면서 그 세계에 빠진 거예요.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매섭기도 하고. 그 존재가 사람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한점 의심없는 배우의 나날들. 그렇다고 김옥빈에게 거창한 도전은 없다. “그렇다면 <박쥐> 이후에 센 역할만 했겠죠. 전 여전히 들쭉날쭉할 거예요. 나이가 들면서 기준이 바뀔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젠 흔들리지 않을 거고. 그래서 활동도 더 하려고 해요. 그런데 우리 <시체가 돌아왔다> 얘기, 더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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