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박희순] 이 남자 희한하네
2012-04-02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사진 : 최성열
박희순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의 박희순은 마치 20피스짜리 퍼즐 같다. 그가 이제까지 맡아온 20여개의 캐릭터를 조각모음하면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의 형사 강선우라는 그림이 완성된다. 간통 현장을 잡으러 다니다가 수진(박시연)에게 홀려 살인죄를 뒤집어쓸 위기에 처하는 “2% 부족한 가제트 형사” 강선우를 분해하면 나오는 가장 큰 조각은 아무래도 <세븐 데이즈>의, 구시렁거리는 게 매력이었던 날라리 형사 김성열일 것이다. 조수 기풍이(이광수)를 구박할 때면 열쇠 수리공에게 “직업의식이 없다”며 면박을 주던 성열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런가 하면 본업에서의 특기를 살려 사업체를 차린다는 설정이나 다른 형사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맨발의 꿈>에서 ‘랑숭랑숭’ 패스를 받아내는 연기를 받아줬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이자 현 동티모르 유일 축구화 리스업자 김영광을 똑 닮았다. 또 ‘저한테 왜 이러세요’ 컨셉은 <우리집에 왜 왔니>의 자살병에 걸린 병희가 남긴 것이다. 진지함과 ‘똘끼’를 적당한 비율로 섞는 비법은 <2001 이매진>에서 스스로를 존 레넌이라고 믿었던 ‘나’에게서 전수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 동안은 똑같은 것은 피하고 새로운 것만 찾아다녔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니 18번을 아껴두기보단 제대로 써먹을 줄 아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더라. 그래서 이번엔 그동안 해왔던 연기의 18번만 모아보자 싶었다.”

배우 박희순이 걸어온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비포장도로다. 전형적 모델이 없어 배우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자유방임형 캐릭터들이 활보하는 길. <2001 이매진>의 ‘나’, <러브토크>의 지석,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재문, <우리집에 왜 왔니>의 병희, <맨발의 꿈>의 김영광이 모두 그 길로 걸어갔다. 반대로 포장도로로 들어서면 전형적 모델이 뚜렷해 운신의 폭이 좁은 교과서형 캐릭터들과 마주치게 된다. <귀여워>의 조폭 막내, <가족>의 조직보스 창원, <작전>의 전직 조폭 황종구, <10억>의 복수심만 남은 장민철 PD, <의뢰인>의 안민호 검사, <가비>의 고종이 모두 그런 부류다.

박희순은 작품의 흥망을 떠나 고른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에게는 전자가 어울리는 편이다. 남들이 입혀주는 옷을 입지 않고 자신이 직접 옷을 골라 입을 때 그는 비상한 활기를 발휘했고, 평단이나 대중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후자에 속하는 작품들에서는 장르적 상투형에 짓눌려 그 자신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 중간에서 답을 찾은 경우가 <세븐 데이즈>의 김성열이었다. 형사라는 틀에 정교하게 계산한 애드리브로 숨구멍을 뚫는 연기를 보여준 것이 흥행으로 이어졌다.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에서 그가 구사한 전략도 비슷하다.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는 강선우가 혼자만 심각한 형사로 그려져 있었는데 주변 인물들과 잘 섞이려면 코믹한 면을 살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상황극도 만들어서 제안해보고 그랬다.” 절충의 묘를 아는 그는 코미디와 스릴러 사이에서 영화 전체의 균형을 잡아준 든든한 버팀목이다.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에서 절충의 묘의 핵심은 배우 박희순의 장기 중 하나인 절묘한 애드리브에 있다. 연극에서 출발해 연기의 일회성을 믿는 그에게 애드리브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딱 한번 질렀을 때 재밌는 것이다. 애드리브를 칠 때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디지털이 대세가 되고 카메라를 두대씩 쓰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애드리브를 똑같이 반복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근데 그러다보면 스탭들도 재미없어하고, 나도 감이 떨어진다.”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에서는 그가 즉석요리식으로 선보였던 애드리브의 현장 반응이 좋았다고. “기풍이가 삽으로 후배 형사를 처치해줄 때 ‘와주었구나’라고 말한 거나 가정부한테 5만원씩 찔러주는 건 현장에서 갑자기 나온 건데 빵 터져서 기분 좋았다.”

강선우 같은 인물을 살리는 재미도 그러나 한번으로 족하다. “내가 잘하는 것만 하면 실패가 덜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나도 지치고 관객도 지치지 않겠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도전해보는 게 서로에게 재밌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이너한 취향의 영화도 해보고,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작품도 해보고 있다.” “남들이 회사 다니듯이 월화수목금 연기하러 나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그럴 수 있어 즐겁다”는 그는 연기의 본질을 예술과 노동의 교집합에서 찾는 배우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그를 나르샤의 <삐리빠빠> 뮤직비디오 같은 데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는 배우 박희순이 다음에 또 어떤 희한한 캐릭터를 찾아 모험심을 불태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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