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박시연] 연기, ‘열심히’ 말고 ‘잘’
2012-04-02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박시연

남자를 파멸시키는 위험한 여자. 170cm의 큰 키가 매력적인 황금비율의 신체조건, 특유의 큰 눈동자와 함께 이것은 배우 박시연 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떠올려보자. 그는 <사랑> (2007)에서 주현과 주진모 사이를, <마린보이>에서 조재현과 김강우 사이를 오가며 남자들을 본의 아니게, 혹은 의도적으로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던가. 드라마는 또 어떤가. 최근의 KBS <드라마 스페셜: 빨강사탕>에서 박시연은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는 서점 직원을 연기했다. 물론 ‘털털한 매력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은 드라마 <커피하우스>(2010)는 잠깐 옆으로 치워놓자. 그런데 <마린보이> 이후 거의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그가 또 위험한 여자가 되어 돌아왔다.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의 박시연은 극중 살인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쥔 여인 ‘수진’을 맡았다. 어떤 사건(?)으로 남편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수진은 우연히 사건 현장에서 만난 간통 전문 형사 선우(박희순)와 함께 경찰의 용의선상을 묘하게 오가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선우와 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캐릭터의 설정만 보면 수진은 팜므파탈의 요소를 고루 갖춘 인물인 게 분명한데, 박시연은 수진이마냥 위험한 여자로 규정되어지는 것이 섭섭한 모양이다. “흔히 팜므파탈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어두운 분위기로 묘사되곤 하지 않나. 그러나 수진은 나름의 합당한 이유와 사연을 가진 캐릭터다. 수진이 한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매력이 느껴졌다.” 그 점에서 시나리오가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박시연은 수진을 온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다. “공감이 된 건 아니었다. 수진이 겪은 고통을 실제로 경험하긴 힘들다. 감독님의 지인인 정신과 의사에게 캐릭터의 심리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수진의 행동을 하나씩 알아갈 수 있었다.” 캐릭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거리를 둔 채 접근했던 방식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극중 다른 인물과 부딪히며 조금씩 다른 톤을 선보였던 박희순과 달리 박시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된 상태의 톤만 유지해야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른 배우들처럼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역할만 하나의 톤으로 밀고 가야 했다. 그 톤을 유지하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쉬운 작업이기도 했다.” 맞다. 쉽진 않았겠지만 하나만 집중하면 되는 일이니까.

앞에서 언급한 최근 출연작에서 그가 맡은 여자들은 저마다 다른 인물이긴 하나 팜므파탈이라는 하나의 큰 범주로 묶을 수 있다. 그것은 배우가 필모그래피를 쌓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한 선택이기도 하고, 그와 작업했던 감독들이 박시연의 그런 면모만 골라 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시연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다른 역할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시나리오가 안 들어왔다. 감독님들께서 모험을 잘 안 하시나보다. (웃음) 그나마 밝았던 캐릭터가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일부러 필모그래피를 관리하는 건 아니다. 관리를 했다면 이번에는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의 수진이 아닌 <커피하우스> 같은 귀여운 캐릭터를 선택했겠지. 꽂히는 대로 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시나리오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결혼하면서 ‘품절녀’가 된 박시연은 잘 안다. 성적인 매력을 앞세워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역할을 더이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결혼하고 나서 작품을 고른 적이 없어서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작품을 결정하진 못할 것 같다(<간통을 기다리는 남자>는 결혼 전 선택한 작품이다). 사소한 것도 남편과 논의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남편이 내 결정을 반대하거나 싫어하진 않을 것 같다. 든든한 지지자니까. 분명한 건 결혼하고 나서 연기가 더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거다.” 차기작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내심 하고 싶은 역할은 있다. “어렸을 때 <사랑>을 찍었는데, 되돌아보면 멋모르고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도 들었고, 이젠 눈물 콧물 모두 짜낼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구미호 가족>(2006)으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1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는 할 줄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조금씩 알아가나보다. “뿌듯하냐고? 뿌듯한데, 더 잘해야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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