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슈퍼히어로가 당신 하나라고 생각하나요? 스타크씨, 당신은 지금 막 더 큰 세상의 일부분이 된 겁니다. 아직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죠.” 마블 스튜디오가 지금껏 만들어온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빠짐없이 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아이언맨>의 히든 영상에서 “내가 아이언맨이다”라고 폭탄선언을 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어둠 속에서 ‘쉴드’(국제평화유지첩보기구)의 국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 닉 퓨리(새뮤얼 L. 잭슨)가 남겼던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말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한마디는 마블 스튜디오가 그 뒤 야심차게 건설해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닉 퓨리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고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마블 스튜디오는 그 뒤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맨2> <토르: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로 이어진 슈퍼히어로 시리즈에 토니 스타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울버린 등을 영화 중간에 등장시켜 슈퍼히어로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자연스럽게 했고, 히든 영상에서 ‘어벤져스 작전’에 대해 실마리를 흘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4월, 닉 퓨리가 예고했던 ‘더 큰 세상’은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등 마블의 대표급 슈퍼히어로들이 스크린 하나에 모이게 된 것이다.
거대한 액션 사이에 웃음폭탄을 ★
1963년 스탠 리와 잭 커비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뒤 거의 50년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코믹스 시리즈인 <어벤져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어벤져스>는, 지금까지 마블 스튜디오를 통해서 소개된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이 한자리에 공존할 수 있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70년간의 동면에서 깨어난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는 아직도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중이고, ‘헐크’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는 분노로 인해 녹색괴물로 변하는 것을 억누르기 위해 세상과 단절된 곳에 숨어 지내고 있다. 이때 신계인 ‘아스가르드’에서 버림받은 왕자 로키(톰 히들스턴)가 캡틴 아메리카가 레드 스컬로부터 지켜낸 큐브 형태의 에너지원 ‘테세랙트’를 쉴드에게서 훔쳐내면서 세상은 위험에 빠진다. 그리고 그 위험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 ‘쉴드’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슈퍼히어로들을 불러들이고, 닉 퓨리의 지휘 아래 슈퍼히어로 연합군인 ‘어벤져스’가 탄생한다. 하지만 예상했다시피 이 슈퍼히어로팀이 하나가 되어 임무를 수행하기까지의 과정이 쉬울 리 없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만큼 그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고, 그로 인한 불협화음은 정해진 순서라도 되는 양 찾아온다. 티격태격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이어지지만 결국 화해하고 대의를 위해 협동한다.
다행스럽게도 <어벤져스>는 관객의 예상에 어긋나지 않게 그 모든 과정을 담아내는 동시에, 기대를 뛰어넘는 액션과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캐릭터가 너무 많아 영화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마블 코믹스의 팬이며 각각의 슈퍼히어로들의 팬이었다면 당연한 우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가 코믹스 장르의 열정적인 팬이며, 오랫동안 장르 안에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창조해온 감독 조스 웨던은 이런 걱정들을 기우로 만들어버렸다. 슈퍼히어로 하나하나에 주어진 시간과 비중은 공평하고, 불협화음이 화음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거대한 규모의 액션장면 사이 굵직한 웃음폭탄과 자잘한 유머를 심어놓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을 한데 몰아넣으면서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말이 안된다. 관객이 영화 속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웃을 때, 사람들은 왜 이들이 망토를 두르고 스판덱스를 입어야 하는지 쉽게 받아들인다.”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파이어플라이> <돌하우스> 등의 TV시리즈를 만들어온 조스 웨던은 <어벤져스>를 원작 코믹스의 팬들은 물론이고 코믹스에 정통하지 않은 일반 영화 관객에게도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영화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마블 스튜디오가 만든 영화를 모두 보지 않았다고 해도 <어벤져스>를 즐기는 데 무리가 없다는 말이다. 또 감독은 장르의 특성상 실사영화인데도 만화처럼 보일 수 있는 현실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데도 솜씨를 발휘했다. 스탠 리가 카메오로 출연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현실과 장르를 연금술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2012년 4월11일, <어벤져스>의 월드 프리미어가 할리우드에서 열렸다. 할리우드 대로의 두개 구간을 막고 레드카펫으로 뒤덮은 탓에 교통정체가 심각해졌고, 그 때문에 영화의 상영은 예정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 하지만 극장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는 레드카펫에 <어벤져스>의 배우들이 하나씩 나타나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이같은 열정은 영화 상영 중에도 계속됐다. 슈퍼히어로 캐릭터가 각각 스크린에 첫 등장하는 장면은 물론이고,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만들어질 때면, 박수와 환호는 약속한 것처럼 터져나왔다. 특히 초토화된 뉴욕시에서 최후의 전투를 펼치려는 6명의 주인공들을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며 스크린에 담아낸 순간은, 다소 유치하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만 흡사 스포츠 경기에서 득점한 플레이어가 세리머니를 펼칠 때와 같은 감동마저 있었다.
박수와 환호, 스포츠 관전하듯 ★
다음날인 4월12일, 감독 조스 웨던과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영화 제작자인 케빈 파이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크 러팔로,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 에반스, 제레미 레너, 톰 히들스턴, 클라크 그렉, 코비 스멀더스 등 <어벤져스> 출연진과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통해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조스 웨던 감독과 나눈 인터뷰에 더해, 웃음이 계속된 기자회견장에서 각각의 배우들이 남긴 일문일답들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