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듀얼리스트>로 데뷔한 뒤 호러와 SF가 혼재된 걸작 <에이리언>과 사이버펑크 SF의 신화가 된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판타지영화 <레전드>를 연달아 만든 이력 덕분에 리들리 스콧은 SF와 판타지 장르에 정통한 감독으로 평가된다. <BBC>에서 미술감독으로 일할 때 <닥터 후>에 참여했고, 슈퍼볼 하프타임 시간에 단 1회 방영된 조지 오웰의 <1984>를 패러디한 애플의 광고를 만들었다는 명성도 있다. 리들리 스콧은 대중문화의 하위 장르를 주류로 끌어올린 감독이었다.
그러나 최근 <와이어드>에 실린 기사는 리들리 스콧의 다른 면을 제시한다. <듀얼리스트>를 만들었던 리들리 스콧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감독하기로 계약한다. 그런데 한 친구가 말했다. “<스타워즈>란 영화를 봐. 사람들이 영화관에 엄청나게 줄 서 있어. 이렇게 대중이 흥분한 것은 처음 봐.” <스타워즈>를 본 리들리 스콧은 “도대체 내가 왜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고 있지? 세상은 변하고 있어. 제대로 일을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파기한 리들리 스콧은 6주 뒤 <에이리언>을 만들기로 계약했다.
대학 시절의 리들리 스콧은 문학에 푹 빠져들었다. 언젠가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영화로 만드는 꿈도 꾸었다.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듀얼리스트> <1492 콜럼버스>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을 만드는 등 역사에도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상업적인 광고 경력도 출중하다. 리들리 스콧이 관여한 CF는 거의 2700편에 이른다. <듀얼리스트>가 칸영화제에서 인정받았지만 흥행에서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었을 때 리들리 스콧은 <스타워즈>를 만났다. 광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리들리 스콧이었으니, 왜 대중이 열광하는지 정확하게 간파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은 시대 조류만 좇아다니는 부류가 아니었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에 기초한 <듀얼리스트>에 이어 <에이리언>의 우주선 이름 노스트로모도 그의 소설에서 가지고 왔다. H. P.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탁월한 이미지로 재현하는 H. R. 기거에게 ‘에일리언’의 디자인을 맡기고, 주인공 리플리에게 자립적이고 강인한 새로운 여성상을 투영했다. 리들리 스콧의 여성상은 <델마와 루이스> <지.아이.제인>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리들리 스콧은 <스타워즈>를 뛰어넘겠다는 야심찬 세계관을 <에이리언>의 배경에 깔아두었다. 그 지도의 일부가 지금 <프로메테우스>에서 공개되었다.
<블레이드 러너> <레전드>는 실패했지만 <블랙 레인> <델마와 루이스>로 신나게 달렸던 리들리 스콧은 <1492 콜럼버스> <화이트 스콜> <지.아이.제인>의 추락으로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의 성공으로 리들리 스콧은 말 그대로 ‘자유’를 얻었다.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대중적인 화법’을 익혔다고 말한 리들리 스콧은 오락영화의 거장인 동생 토니 스콧과 함께 제작사 ‘스콧 프리’를 설립하여 <블랙 호크 다운> <매치스틱 맨> <킹덤 오브 헤븐> <아메리칸 갱스터> <바디 오브 라이즈> 등을 만들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대중 친화적으로 유연하게 만들어낸 것이다.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을 만든 것은 마흔살 즈음이었다. 열린 감각으로 시대정신을 틀어쥐어 중년에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고, 일흔여섯살에 <에이리언>을 확장하는 <프로메테우스>를 만들었다. 이렇게나 야심찬 영화를, 과거에 만든 작품의 단순한 ‘부연’이 아니라 그 세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프리퀄을 만년에 만든 것이다. 마흔에도, 아니 일흔여섯에도 리들리 스콧은 너무나 젊다. 청춘이다. 그 유연한 정신, 활기찬 호기심이 리들리 스콧을 세월에 지치지 않는 거장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리들리 스콧에게 기대할 ‘미래의 영화’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