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클로즈 업] 시스템을 바꿔야만 한다
2012-06-19
글 : 강병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복직과 함께 집행위원장 등 5인 사퇴 요구한 유운성 프로그래머

전주국제영화제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은 유운성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씨네21>은 이미 858호에서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을 전한 바 있지만, 사안의 속내가 나날이 업데이트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12일 화요일 오후에 전주국제영화제 서울사무소가 있는 동대입구역 근처에서 그를 기다렸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도착하자마자 “패닉에 빠져 있다가 샤워를 한번 하고 간신히 원상회복됐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구에게 전화를 받은 건가.
=어느 독립영화감독이다. 내 동료 한명이 전화를 해서 지난해 우리 세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내가 한 폭언에 대해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더라. 그런 걸 모으고 있는 사람이 함께 일한 동료라는 점에 마음이 아팠던 거다. 조직하고 싸울 때, 사람을 제일 힘들게 만드는 게 주변을 회유해서 그와 싸우게 만드는 거다. 민병록 집행위원장은 처음에는 지역 언론들의 압박이 문제라고 해놓고, 공식적으로는 나의 성격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내 동료를 회유해 내 발언에 관한 사례들을 수집해서 공식적으로 밝힐 해임사유를 만들고 있는 듯 보인다.

-전주국제영화제는 “13회 영화제 기간 내내 보여준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독단적인 태도나 행동은 조직의 화합과 운영에 중대한 과실을 초래하였다”고 했다.
=나도 내가 뭘 가지고 그렇게 싸웠던가 생각해봤다. 하나는 영화제 기간 동안 지역 신문들이 영화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에 대해 트위터에서 발언한 것 때문인 것 같다.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가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올린 거였다. 그에 대해서는 집행위원장님이 나를 불러서 올리지 말라고 했고, 그에 대해 알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삭제는 안 하겠다고 했었다. 잘못한 건 아니니까. 다만 나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힘들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것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 왔다는 건가.
=또 있다. 크게 부딪힌 게 2개 정도 있더라. 영화제 기간 동안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다. 이번에는 영화제 이벤트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 입구에서 했다. 현 시장이 올해는 일체 양보를 안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민병록 집행위원장과 김건 부집행위원장을 시청으로 불러서 “어떤 방식이 됐건, 빨리 그곳에 영화제 컨테이너를 설치하라”고 했다. 김건 부집행위원장이 돌아와서 팀장과 프로그래머들을 불렀다. 지금 스탭들과 자원봉사요원들을 데리고 가서 몸싸움을 벌여서라도 컨테이너를 설치해야겠다더라. 내가 크게 반대했다. 우리 스탭과 자원봉사자들이 용역은 아니지 않나. 정말 엄청 심하게 싸웠다. 결국 시장님께 엄청 깨졌다고 하더라.

-또 하나의 갈등은 무엇이었나.
=게스트들의 상영관 입장을 놓고 계획한 게 있었다. 흔히 보면 매진된 영화들도 자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게스트 패스 소지자들은 원칙적으로 티켓을 끊어야 하는데, 올해는 매진 때문에 티켓을 끊지 못한 게스트의 경우 극장에서 대기를 하다가 빈자리가 생기면 선착순으로 입장을 시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사무국장과 논의를 했는데, 안되겠다고 하더라. 그때 논쟁을 벌였는데, 결국 한국영화를 보려는 해외 게스트들에 한해서만 하는 걸로 결정했다. 그런데 다음날 사무국장이 전화를 해서는 못하겠다고 하더라. 팀장들의 의견을 수렴했는데, 안되겠다고 했다는 거다. 내가 크게 반발했다.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팀장들을 불러서 논의를 해야 했던 거 아닌가. 무엇보다 사무국장과 프로그래머가 같은 직급에서 합의한 사안이었으면, 아래 직급의 사람들과 다시 논의를 해서 가부를 결정할 필요가 없는 거다. 이렇게 결정했는데, 어떤 게 문제가 될 것 같고 사전에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할 것 같은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때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조직이냐고 논쟁을 벌였다. 그때 집행위원장과 부집행위원장이 왔었다. 100% 사무국장 잘못이라고 했다. 이런 일들 외에 굳이 따지자면, 결산기자회견 때의 발언 정도? 그런데 기자회견 끝나고 아무 이야기 없이 헤어졌으니 싸울 일도 없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주장한 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영화제의 조직위원회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 것 같다.
=다른 영화제는 모르겠다. 전주영화제의 집행위원회는 사실상 집행위원장과 부집행위원장으로만 되어 있다. 집행위원은 명예직에 가까우니까. 집행위원회는 의결권이 없다. 예산과 인사에 관한 의결권은 조직위원회가 갖는다. 초기에는 조직위원이 많았다. 20명쯤 됐다. 지역의 유지들은 거의 다 들어갔다. 지금은 10명 정도다. 그중 두분은 해외 출타 중인데, 내가 알아보니 나머지 여덟분 중에 이번 인사위원회 개최 여부를 알고 있는 분은 두분밖에 없더라. 노학기 전주시 신성장산업본부장과 이영호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이다. 김은정 <전북일보> 콘텐츠기획실장은 전화로 내 해임에 대한 의견이 어떠냐고 물어왔다더라. 지금 민병록 집행위원장은 지역 언론의 압박이 없었다고 하는데, 몇명의 조직위원들과만 인사위원회를 열면서 지역의 유력한 일간지 책임자에게 의견을 물어봤다는 건 뭘까. 그건 언론과 관계가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가 분리되어야 하나.
=나도 물어봤다. 일단 전주국제영화제는 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어서 이사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런데 영화전문가가 몇명 없다. 영화제 운영에 대해 제대로 논의할 만한 사람은 오히려 집행위원이다. 물론 지금 조직위원 분들 중에도 열린 분들이 있다. 영화제 운영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갖는 분도 있다. 사실 조직위원회는 그렇지 않은 몇 사람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거다.

-조직위원들이 조직위원회를 통해 얻을 게 있다면 무엇일까.
=아까도 말했지만, 어떤 분들은 뭘 얻겠다기보다는 애정이 있기 때문에 참여하고 있다. 한승룡 전주대 교수 같은 분이 대표적이다. 나머지 분들은 잘 모르겠다. 지역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조직위원은 한명의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어떤 네트워크가 들어온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복직과 함께 인사위원회에 참여한 민병록 집행위원장 이하 4인의 사퇴를 요구했다.
=내가 복직이 안돼서 다른 프로그래머가 들어간다고 해도 지금 같은 구조면 같은 사건이 반복될 것이다. 영화제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이사회를 지역의 토호 세력들이 이끌게 해서는 안된다. 지역에 한정짓지 말고 전국구로 활동하는 영화 전문 인력들이 참여해야 한다. 프로그래머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조직위원이 10명이라면 3명 정도는 지역에서, 4명은 영화 전문 인력이, 나머지는 집행위원장, 부집행위원장, 프로그래머 이렇게 구성돼야 맞다고 본다. 이사회를 운영할 때 정관에 명시된 대로 하는지도 확인해야 할 거다. 몇명이 참여해서 어느 정도가 합의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규정을 통해 제대로 이사회를 열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전주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국제영화제들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역 인사를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거다. 게다가 조직위원회의 수장이 시장이다.
=지역인사에 대한 배려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분들을 조직위원이 아닌 집행위원으로 두는 거다. 아니면 자문위원이라든가. 실제로 자문위원회를 열면 된다. 다만 운영에 관한 의결권이 주어진 이사회의 경우는 투명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거다.

-전주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제에서도 이러한 사건은 있어왔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어떤 것 같은가.
=상대적으로 나는 괜찮은 편이다. 과거에 그분들은 뭉쳐도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나는 해임소식을 듣자마자 트위터에 올렸더니 쫙 퍼졌다. 다행히 8년을 일하며 쌓은 인적 네트워크가 있고, 그래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트위터도 없었고, 잘린 분들이 대부분 1, 2년 일하고 쫓겨난 경우였다. 그나마 나은 상황에 있는 내가 여기서 꺾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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