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비명 지를 준비 되셨나요?(1)
2012-07-17
글 : 김도훈
글 : 강병진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글 : 윤혜지
7월19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강력 추천작 25편

비명과 열광의 주간이 찾아왔다.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7월19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 발빠른 부천 마니아라면 이미 예매전쟁에 돌입했을 테지만 분명히 놓치고 지나친 영화가 있을 거다. <씨네21>이 꼼꼼하게 미리 챙겨보고 그중에서 25편의 강력 추천작을 건져냈다. 후회없는 선택을 위한 총력 가이드!

유려한 속도감의 카체이싱

<모터웨이> Motorway
소이청 / 홍콩, 중국 / 2012년 / 89분 / 부천 초이스
두기봉의 스타일로 카체이싱을 연출한다면? 두기봉사단의 수제자인 소이청의 <모터웨이>는 이 상상하기 힘든 화두를 극적으로 풀어낸다. 주인공은 경찰 교통과에 소속된 아상(여문락)이다. 그는 일반차량으로 위장한 경찰차를 운전하면서 과속 운전자와 차량으로 도주하는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아상은 과속 운전자를 검거하는데, 그는 경찰서에 들어가 갇혀 있던 범죄자를 탈옥시킨다. <모터웨이>의 카체이싱이 갖는 컨셉은 ‘빛’이다. 홍콩의 화려한 야경 대신 산속의 어두운 도로나 지하주차장을 무대로 삼은 영화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점등되고 소등되는 순간, 자동차와 운전자의 표정을 잡아낸다. 차의 움직임에 흔들리는 거리의 나뭇잎, 눈 대신 귀로 감지하는 도로의 느낌 등을 묘사하는 장면은 <참새>의 마지막 액션 시퀀스를 연상시킬 만큼 유려하고 아름답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속도감의 끝을 체험케 하는 카체이싱 영화들도 있지만 <모터웨이>는 그들보다 더 앞서 질주하고 있는 영화다.

꿈에 자꾸 어떤 여자가 나타나요

<벨렝구: 토끼 살인마> Belenggu
UPI / 인도네시아 / 2012년 / 100분 / 부천 초이스
엘렝은 꿈속에서 묘령의 여자와 토끼 탈을 쓴 사람, 그리고 아이와 여자의 시체를 목격한다. 꿈속의 시체들은 바로 옆집에 사는 모녀다. 어떤 신비한 기운이 자신에게 뭔가를 알리고 있다고 생각한 엘렝은 더 적극적으로 옆집 모녀를 보호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봤던 여자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엘렝에게 자신을 강간했던 남자들을 죽여달라고 간청한다.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온 <벨렝구: 토끼 살인마>의 묘미는 미스터리에 있지 않다. 오히려 <벨렝구: 토끼 살인마>는 미스터리와 초현실적인 분위기, 주술의 신비가 한데 엮여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관습과 동남아시아산 공포영화가 지닌 개성을 조합했다고 할까? 인도네시아 장르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고딕적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뱀파이어

<모스 다이어리> The Moth Diaries
메리 해론 / 캐나다, 아일랜드 / 2011년 / 82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아버지의 자살로 트라우마를 가진 레베카(사라 볼거)는 2학년이 되면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생활을 꿈꾼다. 학교에 신비한 소녀 아넷사(릴리 콜)가 전학 온 뒤로 레베카는 단짝친구 루시(사라 가돈)가 자신을 멀리하는 것을 느낀다. 레베카는 학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아넷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레이첼 클레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모스 다이어리>는 보통의 뱀파이어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배우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제 힘을 발휘한 영화다. 고딕적인 아름다움이 스민 릴리 콜의 독특한 외모는 뱀파이어 역할을 소화하는 데 있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아역배우 출신인 사라 볼거의 청순한 외모와 섬세한 연기 또한 소녀들의 서글픈 괴담 안에서 눈부시게 빛난다. 젊고 잘생긴 남자 교사가 존재하긴 하지만 정작 묘한 감정적 화학 작용은 소녀들끼리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소원은 한번만 ‘해보는 것’

<숫호구> Super Virgin
백승기 / 한국 / 2012년 / 105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이 남자, 다른 설명 필요없이 그냥 최악이다. 나이 서른, 백수, 싱글에 못난 외모까지 가진 원준은 숫총각이다. MT를 가도 다른 남자들이 얼굴에 낙서를 당할 때, 낙서조차 받지 못하는 그는 인기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려는 남자다. 한 가지 원하는 게 있다면 한번이라도 ‘해보는 것’. 어느 날, 한 생명공학 박사가 다가와 영혼이동으로 몸을 바꾸는 생체실험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한다. 새로운 얼굴과 몸으로 태어난 원준은 몇 마디 말과 표정만으로도 여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마성의 남자로 거듭난다. <숫호구>는 섹스뿐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향한 원준의 소동극이자, SF적인 상상력이 더해진 판타지영화다. 저예산 독립영화인 이상 완벽한 스케일 대신 아예 비루한 유머들로 묘사한 SF라는 점이 의외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숫호구>는 원준의 캐릭터 때문에라도 묘한 정감이 생기는 영화다. 백승기 감독이 직접 연기한 원준의 여정은 찌질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전한다.

자비 없는 소년들의 공포

<시타델> Citadel
키이란 포이 / 아일랜드 / 2012년 / 84분 / 부천 초이스
부랑자 소년들의 잔인한 공격으로 아내를 잃은 토미 카울리(애너린 바나드)는 이후 광장공포증에 시달린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과거의 환각에 괴로워하며 끔찍한 나날을 보내던 카울리는 부랑자 소년들에게 딸마저 빼앗기게 된다. 카울리는 딸을 구하기 위해 신부와 신부가 기르는 아이 대니의 도움을 받아 부랑자 소년들의 본거지인 시타델로 향한다. 이야기는 단조롭지만 애너린 바나드의 그늘진 얼굴과 커다란 눈은 그 자체로 영화에 진한 인상을 남긴다. 형체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카울리의 감정은 가까이서 그의 표정을 잡는 카메라 덕에 섬세하게 관찰된다. 카울리가 공포증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제법 긴장감있게 전개된다. 밝은 색채를 쓰지 않은 화면은 영화에 스산함을 더하며 흡사 악귀처럼 보이는 무자비한 소년들이 주는 공포는 생각보다 파장이 크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황량한 공간 속을 헤매던 애너린 바나드의 히스테릭한 얼굴은 쉬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러 간다

<나쁜 피> Dirty Blood
강효진 / 한국 / 2011년 / 130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펀치 레이디> <육혈포 강도단> 등을 만든 강효진 감독의 신작이다. 주인공 인선은 어느 날, 엄마에게 자신이 강간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듣는다. 분노한 인선은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생각에 태어나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를 찾아나선다. 이혼 뒤, 펜션을 경영하며 저속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아버지는 한눈에 봐도 ‘진상’이다. <나쁜 피>의 긴장감은 둘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한 기운과 흔들리는 인선의 마음에 있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온갖 장비를 준비했던 인선은 말투는 차가워도 자기에게 밥을 차려주는 아버지를 보며 혼란을 느낀다. 인선의 엄마, 남자친구, 인선이 만났던 강화도 포장마차 주인의 경찰서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는 영화의 구조는 마지막에 이르러 뜻밖의 반전을 내놓는다.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임대일의 연기를 눈여겨보게 될 작품이다.

휴대전화가 포착한 세르비아의 현실

<클립> Clip
마야 밀로스 / 세르비아 / 2012년 / 102분 / 금지구역
세르비아는 어떤 나라인가. 만약 2010년 부천에서 <세르비안 필름>을 본 이들이 <클립>을 본다면, 다시 한번 이 질문에 봉착할 것이다. <클립>은 세르비안 소년 소녀들의 방황을 묘사하는 영화다. 10대 소녀인 재스나는 휴대폰으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걸 즐긴다. 가족과의 갈등, 친구들과의 파티,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섹스. 영화는 재스나가 한 소년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전개시키는 한편, 재스나의 가족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는다. 포르노에 가까운 행위들이 휴대폰 영상으로 보여지는 등 표현 수위는 상식을 벗어나 있지만, <클립>이 단지 세르비아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는 영화는 아니다. 재스나의 휴대폰에는 자신의 사랑뿐만 아니라 잔인한 사회현실과 그로부터 위안을 받으려는 안간힘까지 다양한 영상이 촬영돼 있다. 휴대폰 영상으로 보던 상황을 다시 휴대폰 밖의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 연출은 그들의 잔인한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

괴물과 술에 취한 인간의 대결

<그래버> Grabbers
존 라이트 / 영국, 아일랜드 / 2012년 / 94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요즘 세상에 누가 B급 괴물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가. <그렘린> <크리터스>처럼 작은 괴물들이 작은 마을에서 난동을 부리는 B급 괴물 코미디 영화들은 198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이후 숨이 좀 죽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끊임없이 할리우드의 장르들을 재해석하며 재기발랄한 수작들을 쏟아내는 영국이라면? <그래버>는 외계 생물의 침공을 다루는 신명나는 장르영화다. 한적한 아일랜드의 섬마을에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 주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괴물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알코올을 섭취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때부터 괴물들의 무차별 공격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마을 주민들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영국 장르영화 팬이라면 <그래버>가 어떤 영화일지 지금쯤 감이 딱 올 거다. 조 라이트와 에드거 라이트에 이어 등장한 또 다른 영국 신성 존 라이트는 늑대인간이 소재인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바야흐로 라이트 형제들의 시대다.

프랑스식 서정 고어

<리비드> Livide
알렉상드르 뷔스티요, 줄리앙 모리 / 프랑스 / 2011년 / 88분 / 부천 초이스
호러영화 마니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공포의 국가는 프랑스다. 알렉상드르 아야의 <익스텐션>, 파스칼 로지에의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알렉상드르 뷔스티요와 줄리앙 모리의 <인사이드>는 고어와 폭력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구경거리들이었다. 올해 부천을 찾는 골수 호러 마니아들이라면 알렉상드르 뷔스티요, 줄리앙 모리의 <리비드>를 이미 리스트의 첫 번째 줄에 올려놨을 것이 틀림없다. 미리 힌트를 조금 남기자면 <리비드>는 <인사이드>와는 꽤 다른 영화적 경험이다. 간호사 루시는 혼수상태에 빠진 부인이 거대한 저택에 보물을 숨겨놨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명의 남자친구와 저택으로 숨어든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고전적인 유령의 집 호러 장르와 뱀파이어 장르 등을 마구 버무리며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나아간다. <리비드>는 끝내주는 고어로 관객을 몰아가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여기에는 거의 아트하우스영화로 보일 만큼 몽환적인 서정이 있다.

믿고 보는 북유럽산 장르영화

<베이비콜> Babycall
팔 슬레타우네 / 노르웨이, 독일, 스웨덴 / 2011년 / 96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지난 몇년간 북유럽 장르영화들은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새로운 장르적 에너지를 전세계에 공급해왔다. <렛미인>이나 <밀레니엄> 시리즈를 제외하고 21세기 장르영화를 이야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베이비콜>은 덴마크산 스릴러 <나보에르>(Naboer)의 감독 팔 슬레타우네의 신작이다. 주인공 안나는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아들 안데스와 함께 새 아파트로 이주한다. 남편이 찾아올 거라는 공포에 시달리는 그녀는 아이의 목소리를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워키토키 ‘베이비콜’을 구입하는데, 밤마다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안나는 종종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세에 시달린다. 베이비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혹시 그녀의 환상에 불과한 걸까? 이를테면 <베이비콜>은 관객의 시각보다는 상상력과 정면승부를 하는 스릴러영화다. 이건 이야기에 구멍이 조금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밀레니엄> 시리즈와 <프로메테우스>의 주인공 노미 라파스의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연기가 구멍을 근사하게 메워준다.

북미 인디 호러 감독 총출동

<V/H/S> V/H/S
데이비드 브룩크너, 타이 웨스트 등 / 미국 / 2012년 / 93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북미 인디 호러영화계의 스타급 감독들이 모조리 참여한 옴니버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 올해 선댄스에서 공개된 직후 관객이 졸도하거나 구토를 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호러영화 마니아 사이에서 꽤 하이프를 얻었던 작품이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누군가의 제의를 받고 빈집으로 들어가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들을 수거한다. 그들이 수상쩍은 비디오테이프를 틀면서부터 각각의 감독들이 연출한 파운드 푸티지 단편들이 이어진다. 모든 에피소드들의 완성도가 일괄적으로 뛰어나진 않다. 타이 웨스트(<하우스 오브 데블>)의 에피소드가 조금 실망스러운 데 반해 좀비영화 <시그널>의 데이비드 브루크너, 신성 맷 베테닐리 올핀이 연출한 두 에피소드가 돋보인다. 특히 맷 베테닐리 올핀의 <10/31/98>은 유령의 집 장르와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장점을 잘 활용한 비명의 롤러코스터다. 장르팬이라면 어떤 에피소드가 베스트인지를 한번 꼽아서 비교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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