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심장을 뛰게 하는 ‘미친 짓’을 저질러보고 싶다”
2012-07-26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우리 노래에 JYP 좀 넣지 마!” 얼마 전 <개그콘서트> ‘생활의 발견’ 코너에 출연한 원더걸스의 선예는 JYP의 박진영 프로듀서에게 이런 독설을 날렸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였다. 하지만 JYP 소속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JYP’라는 이니셜처럼, 프로듀서 박진영의 취향과 스타일이 JYP엔터테인먼트가 업계 ‘빅3’로 자리잡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90년대 중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비닐옷을 입고 나타나 대중의 관음증을 자극했던 장신의 가수는 이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대형 기획사의 얼굴이 됐다. 특유의 순발력있는 아이디어와 감각으로 여전히 대중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만능 엔터테이너 박진영에게 물었다. JYP에 대해. 그리고 아이돌 산업에 대해.

-올해 상반기 정신없이 바빴다. <일요일이 좋다-K팝 스타> 심사위원을 맡았고, <드림하이2>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으며 솔로 앨범을 냈고 영화 <5백만불의 사나이>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영화 출연은 처음인데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영화를 찍거나 찍지 않거나, 내 인생은 똑같이 바빴을 거다. 영화를 안 찍으면 그만큼 다른 일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바쁜 정도는 항상 같다. 하루에 16시간은 일을 하는데, 그 일부가 영화로 채워진다는 건 하루 일과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기에 굉장히 설렜다.

-영화가 어떤 즐거움을 주는 것 같나.
=음악과 똑같은 쾌감을 주더라. 어떤 상황이 있고 감정이 있는데, 내가 완전히 몰입해서 상황 안에 들어가 그 감정이 진짜라고 믿으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것을 믿게 하는 과정이 노래와 똑같은 것 같다. 예전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만든 god의 <거짓말>이나 <어머님께>를 들을 때마다 영상이 떠오른다고. 나 역시 곡을 쓸 때도 항상 악상보다 스토리가 먼저 떠오른다. 특정 상황 속에 들어가 곡을 쓰곤 한다. 음악을 이런 프로세스로 만들다 보니 대본을 보고 어떤 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게 나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5백만불의 사나이>는 JYP가 제작에 참여한 첫 영화다. JYP는 키이스트, CJ미디어와 함께 드라마 <드림하이> <드림하이2>를 공동제작하기도 했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로서 영상 제작에 직접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음악이든 영상이든 세상에 빨리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음악을 예로 들어보면 JYP가 제작부터 집행까지 적극적으로 관여할 때 훨씬 더 좋은 형태의 결과물이 나오더라. 영상 제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제작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면 좋은 콘텐츠가 있더라도 다른 회사의 제약을 받을 수 있고, 이 좋은 콘텐츠를 통해 우리가 보여주고자 했던 바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JYP의 영상 콘텐츠 제작은 우리와 대중 사이의 장애물을 없애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보면 된다. 우리 회사의 경우 대기업 마인드를 가지고 매출과 수익을 키워서 헤게모니를 쥐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보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JYP의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JYP의 취향과 스타일은 어떤 것일까.
=우리 회사 명함에 보면 ‘리더 앤드 엔터테인먼트’(leader & entertainment)라는 문구가 있다. 어떤 콘텐츠를 선택할지도 리더답게 판단하라는 거다. ‘이 작품 하면 돈 될 것 같아’가 아니라 ‘이 작품이 돈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멋지네’가 JYP 스타일이다. 멋진 배우, 멋진 작품에 투자하고 싶다. 영화를 예로 들면 주류 감성을 가졌으면서도 리듬감있고 스타일리시한 작품이 멋지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1편이 딱 그런 영화다. 스타일, 리듬, 영상, 색감, 스토리, 무엇 하나 놓치는 게 없잖나. <매트릭스> 1편 같은 스타를 키우고 음악을 만들고 싶다.

-최근 JYP 출신 아이돌 스타들이 영화, 드라마에 활발히 출연하고 있다. 특히 미쓰에이의 수지는 올해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빅> 등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JYP 소속 아티스트를 양성하는 커리큘럼 중 연기 수업도 일정 비중을 차지하나.
=그렇다. 내가 최고의 롤모델로 삼는 엔터테이너가 고(故) 공옥진 여사다. 그분의 공연을 보면 노래하다 연기하고, 감정 잡았다가 다시 노래하는 과정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나 역시 연기와 노래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두 가지가 함께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속 아티스트에게 먼저 연기를 권하는 경우도 있나. 수지의 경우는 어땠나.
=본인은 처음에 연기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지금은 연기가 재미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권한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맨 처음 수지가 JYP 사무실에 걸어들어오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세 글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윤.희. 배우 정윤희의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표정이 떠올라 수지를 뽑았다. 내가 <K팝 스타>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노래는 대충 부르는 것”이었다. 수지가 연기하는 걸 보면 대충하잖나. 그런데 그게 진짜 무서운 거다. 대충하는 연기는 무섭다.

-JYP의 커리큘럼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노래, 춤, 악기연주 등의 교육이 있고, 세부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70여 가지의 커리큘럼이 있다. 예를 들면 노래는 발성, 스타일, 트렌디한 느낌 등으로 구분해서 가르친다. 이외에도 독서 교육 등의 교양 교육, 학교 성적 관리, 상담 교육 등이 있다.

-이 수많은 커리큘럼 중 다른 기획사와 차별화되는 JYP만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거다. 수지나 택연이나 닉쿤이나, 앉아서 한번 얘기를 나눠보면 알 거다. 겸손함과 성실함과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아는 게 중요하다. 오히려 재능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연습생을 선발할 때도 재능이 최우선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강조하는 건 자연스러움이다. 방송에서 수많은 연예인들이 순간적으로 웃기려고 말실수를 하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한다. 우리 회사 아티스트가 그랬다간 난리가 날 거다. 차라리 못 웃기고 집에 돌아오는 편이 낫다. 나는 소희도 그렇고 비도 그렇고 god도 그랬듯,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다.

-JYP의 첫 가수 god가 데뷔한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다. JYP의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변화의 기점이 될 만한 사건들을 꼽는다면.
=두 가지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지역의 확대이고, 다른 하나는 업무의 확대다. 먼저 지역 확대는 3단계로 이뤄졌다. 비가 출연한 드라마 <풀하우스>(2004)의 흥행 덕을 톡톡히 본 중국시장 진출, 내가 프로듀서로 미국 음반계에 입성한 2004년의 미국 진출, 그리고 2PM을 앞세운 2010년 일본 진출이다. 업무적으로는 비의 <풀하우스>를 계기로 연기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배우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는 직원이 처음으로 생겼으며, 소희가 <뜨거운 것이 좋아>에 출연하는 등 소속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게 됐다. 영상 제작의 원년은 <드림하이>를 만든 2011년이다.

-중국, 미국, 일본이라는 큰 시장을 모두 경험해본 건데, 이 세 유형의 시장에 진입할 때 어떤 차별화된 전략을 사용했나.
=미국에선 원더걸스가 진출하기 이전 내가 작곡가로 먼저 진출해 크리에이티브적인 감각을 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중국의 경우는 한국에서 히트한 드라마나 음악을 발판으로 진출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일본은 가수의 상품성과 실력 및 노력, 현지에 적합한 시스템적인 교류가 가장 중요했다.

-미쓰에이(페이, 지아), 2PM(닉쿤)의 경우 해외 출신 멤버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캐스팅할 때 해외 진출에 대한 고려가 있었나.
=그렇다. 다음 한류는 한국인 스타, 한국어로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 현지 스타들과 현지의 언어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수출하는 일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우리의 시스템 자체가 현지의 자본, 플랫폼, 시스템 등과 협업, 교류하는 단계로 나가리라고 믿는다.

-일각에선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지역 확대, 사업 다각화가 1990년대 후반 음반시장의 침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
=음반시장의 침체도 분명 하나의 자극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더라도 결국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발전해왔을 것 같다. 결국 21세기의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매니지먼트 사업 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영상 콘텐츠 분야를 제외한) 현재 JYP의 관심은 어디에 머물러 있나.
=올해 초 뉴욕 맨해튼에 한식당 ‘크리스탈벨리’를 오픈했고, 미국의 헤드폰 업체인 몬스터사가 제작을 맡은 JYP 헤드폰을 런칭했다. 앞으로는 공연장 사업에도 관심을 둘 예정이다.

-JYP의 사업 다각화 과정을 보면 수장 박진영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업 전반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는 편인가. 사업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는 편은 아니고, 크리에이티브적인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분명한 건 JYP의 다음 행보가 무엇이든 나는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 있을 거란 점이다. 당장 매출이 올라가고 회사의 주가가 뛰는 건 내게 어떤 기쁨도 주지 못한다. 마치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자는 기분? 아무 설렘이 없다. 회사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심장을 뛰게 하는 ‘미친 짓’을 계속 저질러보고 싶다.

-90년대 가수로 출발해 프로듀서를 거쳐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수장이 됐다. 90년대와 지금의 연예 산업을 비교한다면, 어떤 점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나.
=헤게모니가 플랫폼에서 콘텐츠로 이동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킬러 콘텐츠’라 불리는, 대중이 원하는 고품질의 콘텐츠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콘텐츠를 공급하는 플랫폼이 셀 수 없이 늘어난 거다. 예를 들어보면 90년대만 해도 3대 스포츠지, 3대 방송국이 연예계를 좌지우지했다. 20대 중반의 PD가 50살 넘은 기획사 사장에게 반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방송국 임원진이 기획사 관계자들에게 밥을 사려고 애를 쓴다. 방송국만 있나. 신문사, 인터넷 언론까지 합치면 매체만 수백개일 거다. 그러다보니 헤게모니가 당연히 매체에서 기획사로 이동해온 거다.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축복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거지. 물론 좋은 음악과 좋은 스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콘텐츠를 전달하는 과정의 상당 부분에 기획사가 관여하기 시작했고, 훨씬 더 많은 전략과 고민들이 생겨났다는 점이 변화다.

-아이돌에 대한 팬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90년대만 해도 아이돌 팬문화는 이른바 ‘골수팬’이라고 불리는 특정 집단에 국한된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팬덤을 살펴보면 90년대 당시의 노골적인 열광은 줄어든 대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넓은 팬층을 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 놀 듯이 놀게 된 게 아닐까.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이제 기성 세대가 된 거다.

-넓은 팬층을 향유하고 있다는 건, 아이돌이 더이상 일시적인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연기자, MC 등 현재 음악과 병행하고 있는 아이돌의 다양한 활동은 그들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준 듯하다. 아이돌이라는 문화 콘텐츠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지만 당분간은 어린 나이부터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고 데뷔한 아이돌들이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현상은 지속되리라고 본다.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아이돌에 대한 과도한 열풍 때문에 수준 낮은 콘텐츠들이 쏟아질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결국 거품이 빠지면서 예상 밖의 피해자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이 걱정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