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하는 기억을 만들어드립니다.” <토탈 리콜>은 환상을 기억으로 만들어주는 ‘리콜’이라는 미래의 서비스를 주문한 남자가 그 서비스로 인해 봉인된 기억과 자신의 감춰진 정체를 알게 되며 펼쳐지는 액션스릴러다. 폴 버호벤 감독의 1990년작 <토탈 리콜>이 22년 만에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리메이크작의 메가폰을 잡을 감독이나,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샤론 스톤을 대신할 21세기의 캐스팅이 아니었다. 원작에서도 잠깐 등장하고 마는 ‘가슴 셋 달린 여자’가 리메이크에도 등장하는지가, 팬덤에서 <토탈 리콜>의 리메이크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관심사였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특수효과로 기억에 남을 장면도 많았지만, 20년이 넘도록 영화팬의 뇌리에 남겨진 매혹은, 가슴 셋 달린 여자처럼 대담하고 기괴한 유머였을지 모른다.
2012년, <언더월드> <언더월드2: 에볼루션> <다이하드4.0>을 만든 렌 와이즈먼 감독의 연출로 리메이크된 <토탈 리콜>은 오리지널의 굵직한 플롯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따른다. 영화는 주인공의 악몽에서 시작한다. 한 남자가 쫓기는 꿈을 꾼다. 악몽에서 깨어난 이 남자, 더글라스 퀘이드(콜린 파렐)는 아름다운 아내 로리(케이트 베킨세일)의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더글라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비루한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런 그에게 옥외전광판을 수놓은 ‘리콜’의 광고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더글라스는 ‘리콜’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꿈과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비밀요원으로서의 기억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간신히 집에 돌아와 아내를 찾지만, 아내가 사실은 자신을 감시하던 비밀요원이며, 이제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유도 모른 채 더글라스는 그의 앞에 던져지는 희박한 단서들을 좇으며 진짜 자신을 찾아 나선다.
리메이크와 오리지널 <토탈 리콜>이 비슷한 점은 여기까지다. 리메이크 역시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SF소설의 대부,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 바탕을 두지만,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의 더글라스가 꿈속에 등장하던 화성에서 진짜 자신을 찾았다면, 렌 와이즈먼의 <토탈 리콜>은 등장인물을 화성에 보내지 않고 지구에 묶어둔다. 제작자 토비 자페는 “필립 K. 딕의 원작에서 등장인물이 화성으로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리메이크에서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리메이크는 새로운 미래도시를 설계했다. 환경이 척박해짐에 따라 인간의 주거지역이 점점 줄어든 지구는 브리튼연방연합(United Federation of Britain, UFB)과 식민지로 구성된다. 오리지널에서는 더글라스가 지구에서 화성으로의 여행을 꿈꾸었지만, 리메이크에서 더글라스가 꿈꾸는 것은 답답한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다.
오리지널의 유명한 장면에 대한 오마주나 패러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리메이크의 재미라면, 오리지널의 아성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리메이크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다. 특히 리메이크 <토탈 리콜>은 이미 오리지널을 독파한 사람들에게는 아쉽게 느껴지는 면이 많을 수 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더글라스가 혼란에 빠질 때 관객은 이미 더글라스의 선택과 결말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오리지널만 한 긴장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수효과와 액션은 20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이 있는 만큼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달성했다. 매끄러운 컴퓨터그래픽 역시 음울한 미래도시의 정경에 현실성을 불어넣었다. 아마 이 영화는 원작을 경험한 적 없는 컴퓨터그래픽 세대를 위한 <토탈 리콜>인지도 모르겠다.
2012년 7월29일, <토탈 리콜>의 렌 와이즈먼 감독과 콜린 파렐, 케이트 베킨세일 등 출연진을 만났다. <언더월드> 시리즈에 이어 다시 한번 아내인 케이트 베킨세일을 액션 히로인으로 스크린에 세운 감독 렌 와이즈먼과의 인터뷰가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