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떨어지지 않는 총탄, 마치 즐겁게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쓰러지는 적들, 그리고 늘 대등하게 맞서 싸우다가도 갑자기 주인공의 동작에 맞춰 얻어맞기를 기다리는 적들. <람보>와 <코만도>, 그리고 <델타 포스>와 <유니버설 솔져> 등 80∼90년대를 풍미했던 ‘하드보디’ 전쟁물의 영웅들이 귀환했다.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 돌프 룬드그렌, 제이슨 스타뎀, 이연걸의 <익스펜더블>에 이어 고대해왔던 장 클로드 반담, 척 노리스가 가세했다. 맛난 불량식품을 향한 은밀한 욕망은 그렇게 업그레이드된 속편을 만들었다. 여기 한가닥했던 왕년의 사내들이 만나 ‘용병의 자격’ 그리고 ‘남자의 자격’에 대해 묻는다.
<뜨거운 녀석들>(2007)의 니콜라스(사이먼 페그)는 마을의 비밀을 알아내고 마을을 빠져나오다 DVD숍에서 우연히 액션영화 진열대를 보고는 눈이 ‘빡’ 돈다. 척 노리스의 <강력계의 영웅>(1988), 장 클로드 반담의 <지옥의 반담>(1990), 스티븐 시걸의 <복수무정2>(1991), 돌프 룬드그렌의 <펜타트론>(1994)을 보고는 갑자기 <코브라>(1986)의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영웅본색>(1986)의 주윤발처럼 입에 성냥개비를 문 채 <코만도>(1985)의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온몸을 중화기로 무장한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와 베트남전 영화들이 운을 다하고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들이 위세를 떨치기 직전의 80∼90년대, 바로 그 냉전시대에 전세계를 풍미했던 ‘하드보디’ 영웅들, 즉 전세계를 떠돌며 냉전시대의 찌꺼기를 처리하던 ‘소모품들’(익스펜더블)의 영화가 바로 거기 있다. 무엇보다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익스펜더블> 시리즈는 바로 그 시절을 향한 회고담이다. 지금은 낄낄거릴지 모르지만 다들 그때의 진한 땀 냄새, 화약 냄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냐며 말이다.
냉전시대 할리우드 흥행의 제왕들
터질 듯한 붉은색 폴로 티셔츠에 시가를 문 베테랑 용병이 정글을 찾아온다. 당연히 어색한 입담배로 연기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존 맥티어넌의 <프레데터>(1987)에서 CIA의 갑작스런 요청으로 중남미 정글 지대로 날아온 인질 구출의 대가 더치 소령(아놀드 슈워제네거)은 다섯 부하들과 함께 무사히 구출 작전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게릴라들의 본거지로 접근하던 중 살가죽이 완전히 벗겨진 채 거꾸로 매달린 시체들을 발견한다. 심지어 남겨진 군번을 통해 자신의 옛 동료도 있음을 알게 되자, 순간 CIA에 속았음을 눈치채고 무식한 ‘코난’과 뻣뻣한 ‘터미네이터’의 표정이 합쳐지며 울부짖는다. “빌어먹을, 우리가 소모품인 줄 아냐!” 소모품이라는 뜻의 <익스펜더블>이라는 제목은 <람보2>(1985)에도 등장한다. 복역 중인 람보(실베스터 스탤론)는 트로트먼 대령(리처드 크레나)의 요청으로 동남아로 떠나 미모의 현지 연락원 코 바오(줄리아 닉슨)를 만난다. 원래는 포로들의 동태를 확인하는 사진 정도만 찍는 거였지만 정의로운 용병 람보는 애초의 계획과 달리 동료를 구출해내려 한다. 괜한 일을 벌인 람보는 악당들과 무한 대결을 벌이고 총상까지 입는다. ‘이것이 용병의 슬픈 운명’이라는 표정으로 드러누운 람보를 향해 코 바오는 애정어린 눈빛으로 말한다. “당신은 소모품이 아니에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냉전시대의 할리우드는 이런 소모품들의 영화에 매진했다. 베트남전의 비애와 걸프전의 긍지가 이상하게 결합되어 당시에는 블록버스터라고 하면 당연히 슈퍼히어로들이나 첩보원이 아닌 중화기로 무장한 군사 용병들이 등장했다. 엄밀하게 분류하자면 슈퍼히어로 장르가 득세하기 전에 ‘슈퍼솔저’ 장르의 단란한 시절이 있었다. “야, 너 베를린하고 리비아에서 대단했다며?” “가만히 눈을 감으니 아프간이 떠오르는군.” “이 녀석, 네가 걸음마도 떼기 전에 나는 중동의 모래바람과 싸웠어.” “지옥이 따로 없군. 여기에 비하면 캄보디아는 천국이야.” 이렇게 007 시리즈 못지않게 화려한 해외 로케이션도 자랑했다. 이런 용병들의 영화가 첩보영화와 가지는 거대한 교집합이랄까. ‘람보’와 ‘록키’의 실베스터 스탤론, ‘코만도’와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그 레이건 시대를 지탱하던 거대한 두 ‘하드보디’였다. 그러다보니 <익스펜더블2>에서 ‘다이 하드’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그 두 사람이 기관총을 들고 ‘묻지마 난사’를 감행하는 장면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한때 둘이 함께하는 영화를 기대했던 팬들에게 이제야 보톡스를 맞고 돌아온 그들의 얼굴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익스펜더블>은 1편에서 전체적인 기획과 감독을 맡았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존재에서 보듯 과거 <람보> 시리즈의 스핀오프이자 후일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익스펜더블>에서 그의 이름은 ‘바니 로스’지만 앞서 만들어진 <람보4: 라스트 블러드>(2008)에서 람보는 오랜 해외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돌아왔었다. 영화에서 사라(줄리 벤즈)가 미얀마에 있는 람보에게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라고 물었고 람보는 “고향을 완전히 잊은 지 오래예요”라고 답했지만 결국 그는 작전을 끝마치고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왔었다.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람보4: 라스트 블러드>에서 유일하게 가슴 뭉클한 장면이라면 바로 그 ‘괴물’ 람보, 그러니까 1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울부짖던 람보를 2, 3편 내내 해외에서 굴려먹다 드디어 귀향을 허락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슈퍼솔저 장르의 부활이랄까. <람보>(1982)에 실베스터 스탤론이 공동 각본으로 참여하며 원작과 달리 람보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은 <람보4: 라스트 블러드>의 귀향에서 <익스펜더블2>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서사의 서막이다. 당초 람보를 지켜보고 조언하는 트로트먼 대령 역은 커크 더글러스가 연기할 예정이었고 이미 포스터까지 찍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커크 더글러스는 마지막에 가서 트로트먼이 만든 베트남전의 괴물 람보가 미국 전역을 들쑤시다 결국 원작대로 자기(트로트먼)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고 했고 실베스터 스탤론과 테드 코체프 감독은 결사반대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죽는 원작과 달리 ‘아무도 죽이지 말자’고 했고, <람보>에서 딱 한명 죽는 경찰은 실수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는 것으로 나온다. 커크 더글러스는 ‘예술’을 원했지만 실베스터 스탤론과 제작자 마리오 카사는 ‘흥행’을 원했다. 여전히 베트남전의 상처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람보의 죽음은 큰 분노를 일으킬 것이란 생각이었다.
1985년의 2편은 더 큰 흥행성적을 거뒀다. 1편의 성찰보다 대놓고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들고자 했던 2편에서 람보는 전편의 원칙과 달리 월맹군 기지로 잠입해 무려 58명을 사살한다. 타이 치앙마이 촬영이 불가능해지자 멕시코 아카풀코에 동남아식 계단식 논을 만들어 거대한 오픈세트로 활용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들였고, 애초에는 존 트래볼타까지 캐스팅해 우정의 드라마로 만들려고 했으나 원톱 액션영화로 급선회했다. 당시 <터미네이터>(1984)의 기운이 남아 있던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와 함께 써나가던 시나리오가 바로 <람보2>였기에 그럴 수도 있다. 말하자면 <람보>와 <터미네이터>는 결국 시제가 다른 한몸이다. 1988년의 3편에서는 그보다 더해 78명을 혼자 사살하여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그 두편의 엄청난 학살은 찰리 신의 <못 말리는 람보>(1993)에서 자막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 수를 세는 장면(나중에는 즐겁게 죽어나가는 악당들)으로 패러디되기도 했다. 베트남전의 상흔을 아로새긴 안티히어로에서 느닷없이 전쟁마초영웅으로 거듭나며 1985년 회교 시아파교도들에 의해 미국 TWA기의 납치사건이 일어나자 레이건 대통령이 “두번 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면 람보를 파견하겠다”는 말을 남길 만큼 요상한 존재가 돼버렸다. 사실 원작의 람보는 인디언의 설움이 밴 애리조나 출신의 실제 인디언 혼혈이다. 더구나 람보가 화살 쏘는 장면에서 보듯 실베스터 스탤론은 실제 오른손으로 글을 쓰는 왼손잡이다. <록키2>(1979)에서는 그를 이용해 오른손, 왼손 변칙기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나바호 인디언 전사의 피를 이어받은 왼손잡이 용병이라는 더없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안타깝게도 냉전시대의 소모품이 돼버린 것이다.
<익스펜더블2>에 합류한 척 노리스와 장 클로드 반담
<익스펜더블2>가 새로이 추가한 두 인물은 척 노리스와 장 클로드 반담이다. 무엇보다 ‘군인이 저렇게 수염을 기르면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척 노리스는 람보가 <람보2>로 변질되고 코만도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대특명>과 <델타 포스> 시리즈를 통해 적진으로 잠입해 미국인 포로를 구하고,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분이다. 물론 군인의 신분으로 한국 오산공군기지에도 거주하며 태권도도 익혀 <맹룡과강>(1972)에서 이소룡과 최후 대결을 벌이던 모습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대특명>(1984)에서 그는 이미 실종된 미군 병사들을 찾아 호찌민으로 떠났고, 말이 안 통하는 월맹 관리들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인질 구출에 나섰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타들어가는 건물 안으로 뛰어드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델타 포스>의 맥코이 소령(척 노리스)은 또 어떤가. <익스펜더블2>에서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내려오며 총을 난사하는 대원들의 모습은 이미 <델타 포스>에서 짧게나마 그가 몸소 보여줬다. 제리 골드스미스의 음울한 <람보> 음악과는 사뭇 다르게 흥겨운 디스코풍 음악에 맞춰 바주카포를 들고 모터사이클을 탄 채 적진으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은 미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온화한 표정의 다혈질’인 그를 향해 상사인 알렉산더 대령(리 마빈)이 하는 얘기라곤 두 가지 정도다. “테러리스트를 자극하지 마”(작전 떠나는 그를 향해), “기다리지 않을 거야”(기어이 부하를 구해서 돌아오겠다는 그를 향해).
미국 보훈청의 전직 대변인인 그는 군사시설과 미국재향군인병원을 방문하며 많은 시간을 군인들과 보냈고, 2007년에는 이라크의 두 주둔부대를 방문하기도 했으니 실제 미국을 대표하는 보수 우파 ‘어버이’이기도 하다. 역시 테러리스트들과 대결을 벌이는 <매트 헌터>(1985)에서 그가 바라보는 미국사회는 ‘지나친 자유 때문에 타락과 방종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다. 데이비드 캐러딘과 함께 출연한 <고독한 늑대>(1983)를 비롯해 TV시리즈 <텍사스 레인저>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굳혔으며 수많은 동영상 등으로 패러디되며(한국으로 치자면 ‘최불암 시리즈’ 혹은 ‘최민수 시리즈’) 최근 미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벤 스틸러 또한 그의 팬으로 <피구의 제왕>(2004)에 인상 좋은 피구 심사위원으로 우정 출연을 부탁하기도 했다. 현재는 헬스 관련 칼럼니스트이자 인기 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한국 비디오 출시 영화 중에서 최고로 압권인 카피는 <스트롱맨>(1991)의 “네 놈을 살려두긴 쌀이 아까워”이다. 더불어 그의 팬들이라면 <익스펜더블2>에서 원래 스타일과 달리 웬일로 합동작전을 벌이는 그를 향한 “당신은 고독한 늑대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가끔은 무리에도 끼어야지”라며 미소를 날리는 장면일 것이다.
아마도 “내 장기인 날아서 돌려차기를 2번 이상 하게 해준다면 악역도 마다하지 않을게”라고 실베스터 스탤론과 ‘쇼부쳤을’ 것 같은 장 클로드 반담 역시 1편부터 캐스팅을 바라 마지않았던 액션스타다. <매트릭스>(1999)의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하늘을 날아올라 경찰을 차버리는 플로모 기법의 원조처럼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그 돌려차기가 변함없는 장기이며 <익스펜더블2>에서도 실베스터 스탤론을 향해 정확히 2회 구사한다. 원규 감독의 <특명 어벤저>(1985)로 본격적인 액션배우의 길을 걸었으니 제이슨 스타뎀이 원규의 지도로 액션스타로 탈바꿈했던 걸 떠올려보면 뚜렷한 계보도가 그려진다. 이후 <투혼>(1987), <어벤저>(1989), <더블 반담>(1991) 등 ‘반담표 액션영화’라는 자기만의 장르를 만들었고 무엇보다 오우삼의 <하드 타겟>(1993), 임영동의 <맥시멈 리스크>(1996), 서극의 <더블 팀>(1997) 등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홍콩 감독들의 첫 영화에 차례로 출연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익스펜더블2>의 라스트 신은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영화들 중 하나인 <지옥의 반담>(Death Warrant, 1990)을 떠올리게 한다. 죄수로 위장해 교도소로 잠입한 경찰을 연기하며 온통 철창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죽여도 죽지 않는 초현실적인 악당 ‘샌드맨’과 싸웠다. 기어이 비교하자면, 샌드맨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라스 알굴(리암 니슨) 같은 존재인데 실제로 이 시리즈의 각본을 쓴 작가 겸 감독 데이비드 S. 고이어의 시나리오 입봉작이 바로 <지옥의 반담>이다. 말하자면 이런 소모품들의 영화에서 <터미네이터>도 나오고 <아바타>도 나오고 <다크 나이트>도 나왔다(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지금의 할리우드 키드들이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만 좋아하며 살았던 건 아니다. 밝히긴 쑥스러워도 그들의 길티 플레저에는 람보나 코만도, 그리고 척 노리스와 반담의 영화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