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제 0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2012-09-25
정리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백종헌
9월11일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

김기덕 감독은 원래 곧장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 아니었다.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이 결정됐고 이를 축하하는 국내 기자회견이 마련되면서 급히 발길을 돌리게 됐다. 참석자는 김기덕, 조민수, 이정진. 물론 많은 취재진이 모였다. 9월11일 베니스 수상 기념 기자 회견장, 주인공들은 수상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사회자_수상 소감을 부탁한다.
=김기덕_좋은 일이다. 내가 받은 상이지만 9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한국의 좋은 영화들이 꾸준히 국제무대에 소개되고 그 결과가 누적되어서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온 것이다. 결국은 한국 영화계에 준 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민수_바로 이 자리에서 출국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때보다 더 많이 찾아준 것 같아 감사하다. 현지에서 내가 느꼈던 걸 여기서 다 전달 못해 아쉽다. 감독님, 그리고 한국영화, 대단했다.
이정진_사실은 낯선 광경이다, 이런 환영이.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한민국 대표로 받은 것 같아 기쁘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영광이다.
김기덕_내가 외국에 나가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당신 영화는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고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에서만 인기가 있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것이다. 그때마다 한국에도 프랑스, 러시아, 미국만큼 내 영화를 지지해주고 아껴주는 팬들이 있다고 말한다. 진심이다.

-질문_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는데.
=김기덕_극단적 자본주의에 관한 영화라고 말한 적 있다. 가족, 복수, 그외에도 믿음 같은 다양한 주제를 깔고 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 자체가 돈 때문에 파괴되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돈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지금 <피에타>가 걸려 있는 극장이 많지 않다는 거다. 늘 멀티플럭스 폐해를 주장하는 김기덕이 두관씩 차지하는 건 말도 안된다. 한관이라도 계속 상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교차상영이다. 관수가 아니라 횟수가 문제다. <피에타>의 좌석점유율은 45%에서 65%다. 이 정도 되면 관을 늘리거나 회차를 늘리는 게 극장 상도의다. 그런데 좌석점유율이 15% 미만인데도 천만의 체험을 주기 위해 여전히 안 빠져나가는 영화들이 있다. 그게 오히려 도둑들 아닌가 싶다. (장내 웃음) 이런 말 하는 게 편하진 않다. 하지만 돈이 다가 아니다. 일대일로 싸워서 지면 정당하게 지겠는데… 내가 아무리 착해도 이건 화가 난다. 이 정도만 하겠다. (웃음)

-질문_관객 친화적으로 바뀐 계기는 뭔가.
=김기덕_어떤 과정을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는 나도 일기장을 돌아봐야 알 것 같다. <비몽> 이후에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대부분 관계에 대한 것들이었다. 미련, 욕심, 애정이라는 불씨들이 나를 시험한 것 같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약이었다. 외신기자들에게 <피에타>가 대중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만들고 보니 대중적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많이 변했나 보다 이런 생각도 했다. 다음 영화도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것도 대중적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오락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제작하는 게 목적이다. 내가 만드는 영화도 일년에 한편씩은 나오겠지만 내가 제작하는 영화로는 <신의 선물> 촬영이 끝났고, <붉은 가족>이라고 10월에 촬영이 들어가는 영화가 있다.

-질문_트로피 받는 순간에 머리에 떠오른 사람은.
=김기덕_청계천에서 무거운 구리 박스를 지고 다니던 15살의 내 모습이다.

-질문_엔딩장면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김기덕_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의 다른 표현이다.

-질문_시상식장에서 <아리랑>을 부른 이유는.
=김기덕_지난해 칸영화제 끝나고 영화제 10여곳을 다녔는데 늘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은 부르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데, 한국인의 기쁨과 아픔과 슬픔의 표현이라고 말해준다.

-질문_베니스영화제 전후에 문재인 후보에 대해 계속 언급하고 있다. 어떤 관계인가. 문 후보쪽의 선거 운동에 참여할 계획이 있나. (장내 폭소)
=김기덕_음, 무슨 관계냐 하면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관계다. 그분은 공수부대를 나왔고 나는 해병대를 나왔다. 그분이 기수가 조금 빠르다. 알다시피 공수부대와 해병대는 치열한 경쟁관계다. 휴가 가서 만나면 안 싸울 수가 없는 관계다. 그런데 그분하고는 절대 싸우고 싶지 않다. 내 인생에서 배움 주시는 분으로 이창동 감독님, 손석희 교수님, 문재인님을 거론한 적 있다. 그런데 내가 수상하고 나서 문재인님이 장문의 편지를 주셨다. 그런데 편지 받고 답변 안 하면 버릇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내 진심을 넣어서 답장했다. 그런데 여기까지인 것 같다. 내가 훌륭한 삶을 살지 못해서 그분의 캠프에 가면 그분께 폐가 갈 것 같다. 이 정도까지만 하고 나는 멀리서 기도할 거다.

-질문_여우주연상 못 타서 섭섭하지 않나.
=조민수_솔직히 섭섭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눈빛으로 건네받은 그 따뜻함으로도 충분하다. 나, 멋지게 지내다 왔다.
김기덕_영화제 끝나고 파티에서 심사위원들이 말하기를 (조민수의) 여우주연상 수상에 전부 동의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작품에 그랑프리를 주어야 해서 상을 더 줄 수 없었다고 했다(베니스영화제에는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그 밖의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각본상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하더라. 몇몇 미국 외신기사는 나도 들어 알고 있다(원래 심사위원들이 황금사자상을 주고 싶어 한 건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더 마스터>였으나 이 영화에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둘 다 안기고 싶었기에 결과적으로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이라는 외신기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우리도 부문별 상들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이정진_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라이벌이 있어야 좋은 성적이 나지 않겠나. 상대 팀은 득점왕과 MVP를 가져간 거다. 그리고 우리는 우승을 한 거다. (옆에 있던 김기덕 감독이 작게 박수)

-질문_그간의 투자 및 제작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기대를 말해준다면.
=김기덕_결국은 아무도 제작비를 대주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따라서 훈련을 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메이저 투자를 받은 건 딱 한번이다. <풍산개> <영화는 영화다>는 해외 수익금으로 만들었다. <피에타>는 <풍산개> 수익금 중 1억3천만원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게 가능했던 건 배우와 스탭들 덕이다. 스탭들과는 수익이 나면 그걸 나누는 걸로 계약한다. <풍산개>는 극장 수익이 10억원 정도 나서 5억원 정도를 스탭들과 나눴다. 그걸 나누니까 개개인별로 볼 때 금액이 적지 않았다. 이런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다. <피에타>도 모든 스탭이 그렇게 계약되어 있다. <풍산개> 수익금으로 <피에타>를 제작한 거고, <신의 선물> <붉은 가족>을 제작할 거다. 대기업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앞으로 영화인들이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본다. <피에타>가 모델이 되고 싶다.

-질문_수상한 다음 달라진 게 있는지.
=김기덕_<피에타>는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이고 이제 소화가 되었고 배설된 똥이다. 이제 <피에타>는 <피에타>의 길이 따로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언론 노출을 자제하고 다음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0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