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아직도 우아하게 마티니를 마신다고?
2012-10-30
글 : 송경원
제임스 본드는 어떻게 21세기를 살고 있는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본 시리즈와의 관계
<007 스카이폴>

대니얼 크레이그가 6대 본드가 된다는 소식이 처음으로 들려왔을 때 007 시리즈 팬들의 반대는 상상 이상이었다. 제작사로 협박전화를 하는가 하면 인터넷에 반대 사이트까지 만들면서 공식적인 반대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으니 거의 저항운동 수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대니얼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이질적이었다. 단순한 도상의 차원에서 금발의 본드란 점도 그렇거니와 기존의 신사적, 엘리트주의로 상징되던 본드의 이미지와는 달리 대니얼 크레이그의 본드는 어딘지 근육질의 공장 노동자 냄새가 났다. 시리즈 최악의 작품으로 기록될 20번째 작품 <어나더데이>(2002)의 기록적인 실패를 끝으로 본드는 새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고 결과적으로 007 시리즈는 21번째 작품 <카지노 로얄>(2006)을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제이슨 본처럼 굴러야 하는 본드

스파이 소재의 영화들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된다. 007 시리즈로 대표되는 매끈하고 판타지에 가까운 첩보영화와 이에 반발하며 등장한 에스피오나지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마틴리트 감독의 <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1965)는 “제임스 본드는 잊어라!”라는 과격한 문구를 내걸며 어둡고 실감나는 스타일 첩보물을 구축했다. 달리 말하자면 큰 그림에서 볼 때 ‘진짜 스파이’들의 이야기와 고뇌를 담아낸 에스피오나지 장르 역시 007 시리즈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낭만과 영웅주의로 점철된 007 시리즈와 서늘하고 건조한 에스피오나지 영화는 적어도 냉전시대에는 공존이 가능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면서 낭만의 시대도 함께 끝났고 더이상 스파이들이 필요없어진 시대는 낭만이든 리얼함이든 관계없이 첩보영화의 근간을 위협했다. 그렇게 새로운 적을 찾아 헤매던 이들이 결국 발견한 것은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적과 아군을 분간할 수 없다는 공포는 냉전시대의 잔해인 스파이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었고 거꾸로 스파이영화들은 여기서 활로를 찾는다. 자신들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생존했는지에 대한 기원을 좇으며 효과적으로 냉전시대를 반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밌는 건 이 과정에서 서로 반발하던 두 장르가 결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나 본 시리즈의 등장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장르는 시대에 맞춰서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변형시키고 융합하길 서슴지 않는다. 이들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서로를 불신한 끝에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에스피오나지 영화의 무거운 틀을 바탕으로 하되 상당 부분 판타지에 가까운 활극을 보여주는데 이는 프랜차이즈 영화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미덕, 이른바 시각적 스펙터클을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모티브의 중심에는 당연히 첩보영화의 교본 007 시리즈가 있었다.

제이슨 본과 이단 헌트 모두 007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판타지의 영역을 선보이는 이들이지만 그것을 구축하는 방식은 실로 고전적인 촬영과 편집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미션 임파서블>의 경우 좀더 판타지스러운 설정을 보여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시리즈 모두 액션과 편집의 힘에 근간을 두고 있다. 스파이로서의 고뇌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은 사실 007이 보여줬던 스파이영화들의 낭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쾌감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이는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액션이 모두 댄 브래들리 한 사람에게서 탄생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본 시리즈가 건조하고 사실적인 실전무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를 빠르면서도 우아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시퀀스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화장실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남녀를 통해 서스펜스를 자아낼 줄 아는 현장감 넘치는 액션의 조율자 댄 브래들리의 역량은 하루 40만명의 이용객으로 붐비는 런던의 워털루역에서부터 첩보영화 역사상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인 탕헤르의 액션 시퀀스까지 액션 그 자체를 영화의 존재 이유로 끌어올렸다. 요약하자면 관객의 눈높이는 이제 그가 선보이는 좁고 작고 빠르고 실감나는 액션장면에 맞춰져버렸다. 때문에 그의 경력은 비단 본 시리즈에 그치지 않고 <미션 임파서블>, 심지어 <카지노 로얄>과 <퀸텀 오브 솔러스>(2008)에까지 이어진다. 제임스 본드의 멋들어진 턱시도에서 더이상 낭만이 아닌 추억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더이상 본드도 우아하게 마티니를 흔들어 마시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총신 구멍 속으로 본드가 등장하여 정면을 향해 총질을 하는 전통적인 오프닝과 달리 뛰고 구르고 주먹질하고 피 흘리는 액션 시퀀스를 보여준 이후에야 겨우 007의 이름을 부여받는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처럼 댄 브래들리에 의해 본드도 드디어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왔다.

<본 얼티메이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냉전의 잔재, 스파이들의 고뇌

이제 스파이들은 우아하게 마티니 한잔을 마시며 최신 무기로 적을 위협하지 않는다. 제이슨 본처럼 옆에 놓인 A4용지를 말아 쥐고 추격자들을 상대하다 힘에 부치면 도주해야 하는, 뛰고 구르고 내달리는 인물들이다. 이는 비단 본 시리즈로 대표되는 새로운 경향의 에스피오나지 영화에 그치지 않고 종국엔 전통의 첩보영화 007 시리즈마저 뒤흔들어놓았다(정확히는 007마저 그 그늘 아래 편입시킨다). 대니얼 크레이그의 007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이 새로운 경향의 첩보영화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최근엔 007 시리즈의 전작들보다 차라리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같이 여타 최근의 첩보영화와 더욱 유사하다. 땀내 나고 인간적이며 저돌적인 6대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의 경쟁자는 전대 본드들이 아니라 제이슨 본과 이단 헌트다. 때문에 6대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는 자신의 후예인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와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으로부터 장르의 헤게모니를 되찾아오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질주 중이다.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선 제임스 본드라 할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카지노 로얄>에 이어 <퀸텀 오브 솔러스>에서도 역시 본드의 출발점이 된 원작의 스토리를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시리즈가 언제나 전편과 연계해야 하며 캐릭터의 진화는 반드시 시리즈 전편으로부터 이어진다는 건 착각 내지 환상에 불과하다. 동시다발적인 분쟁에 시달리는 탈냉전 시대, 냉전의 잔재인 스파이들 앞에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모방하는 합종연횡의 시대가 펼쳐져 있다. 1953년 출간된 이안 플레밍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로 원래는 시리즈의 제일 처음이 되어야 했을 <카지노 로얄>을 6대 본드의 첫출발로 삼은 것 자체가 자신이라는 유령을 좇아 기원을 찾아가는 본 시리즈의 기본 플롯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뿌리로의 회귀. ‘나는 누구인가’ 이후에 올 질문.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제 첩보영화 속 주인공들은 다른 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좀더 크고, 좀더 빠르고, 좀더 실감나는 액션과 장면을 구축하려 애쓴다. 대니얼 크레이그의 말마따나 “본드 영화라고 꼭 한정된 이야기만 들려줄 필요는 없는” 시점에서 관건은 누가 스파이 액션의 결정체를 더 순수하게 정제해낼 것인지에 달려 있다. 6대 제임스 본드의 뜀박질은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을 위해 익스트림 스포츠 ‘파쿠르’의 공동 창시자이기도 한 세바스천 푸칸을 직접 캐스팅할 정도로 정성스럽다. 파나마의 파나마 시티와 콜론,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이탈리아의 시에나, 카라라, 가르다호, 폰테블란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의 대극장, 멕시코의 산 펠리페로 이어지는 <퀸텀 오브 솔러스>의 화려한 로케이션은 또 어떤가. 물론 이러한 대규모 로케이션은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시리즈 속편의 첫 번째 공식이 ‘더 크고, 더 화려하게’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지만 이들 작품이 이토록 경쟁적으로 세계 각국 로케이션에 집착하는 건 거꾸로 그만큼 서로를 견제하고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새겨질 “본드, 제임스 본드”라는 인장의 무게감만큼은 결코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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